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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사설] 역사적인 탄핵 심판정에 역사적 장면은 없었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2. 28. 04:08

[사설] 역사적인 탄핵 심판정에 역사적 장면은 없었다

                
      
어제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사건 최종변론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렸다. 국회가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지 81일 만이다. 헌정사에 남을 탄핵 사건의 마지막 17차 재판이다. 국회 소추위원단이 먼저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 대통령 권한 남용, 세월호 구조 실패에 따른 생명권 보호 위반 등 다섯 가지 사유를 들어 대통령 탄핵을 인용해 달라고 호소했다.

최후 변론도 서면 대체한 대통령
헌재 재판관 8명에게 달린 운명
법치주의에 따라 모두 승복해야


이후 대통령 대리인단 변호사로 제일 먼저 나선 이동흡(전 헌법재판관) 변호사가 준비한 변론을 마치더니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에게 “박 대통령이 손수 쓴 최후의 변이 있는데 낭독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장내가 일순 술렁였다. 재판관들도 놀란 표정이었다. 이 권한대행이 허락하자 이 변호사가 20여 분간 최후 진술문을 읽어내려갔다.

요지는 탄핵소추의 근거가 된 최순실 국정 농단 방조나 국가 기밀 문건 전달 지시, 중소기업 이권 개입, 공무원 인사권 남용, 사기업 인사 관여 등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거였다. 탄핵 요건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배, 국민의 신임을 배반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박 대통령은 “주변을 살피고 관리하지 못한 불찰로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준 점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박 대통령이 최종 변론을 대리인을 통한 최후 진술서 낭독으로 대체한 것은 재판관들의 질의와 소추위원들의 추궁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자칫 말실수라도 할까봐 우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후 변론에까지 직접 출석 대신 서면 진술서로 대체한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대통령은 그동안 검찰·특검 조사는 물론 탄핵심판의 최종변론까지 수사나 재판에 협조한 게 없었다. 지난 신정 때 청와대 기자실을 찾아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우파 인터넷방송과 인터뷰한 것이 전부다. 이러니 부처 장관들로부터 서면 보고만 받더니 마지막까지 서면 진술 대체냐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다. 어제 역사적 심판정에서 정작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박 대통령이 나오지 않아 역사적 장면을 지켜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이날 헌재 분위기는 무거워 보였다. 최근 대통령 대리인단이 헌재의 절차적 공정성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나선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헌재 심판 막판에 투입된 김평우 변호사는 탄핵 인용을 전제로 “내란” “아스팔트에 피” “우리가 노예인가” 등의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불복 가능성을 높이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촛불과 태극기집회로 상징되는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이제 양측의 치열한 법리 공방은 끝났다. 모든 결정은 8인 재판관의 손에 맡겨졌다. 헌재는 오로지 법과 양심, 역사의 명령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헌재 결정에 무조건 승복해야 나라가 산다. 대선후보들도 거리 집회에 나가 헌재를 압박하거나 법치주의를 짓밟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벼랑끝 위기다. 탄핵이 인용되면 내란, 기각되면 혁명이라는 말까지 나도는 현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헌재 대심판정에서>


[출처: 중앙일보] [사설] 역사적인 탄핵 심판정에 역사적 장면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