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吾等)은 자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기미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기독교, 천도교, 불교에서 각 16, 15, 2명이 참가했다. 이들이 종교 지역 이념을 따지며 적전분열(敵前分裂) 했다면 그날의 독립선언은 없었을 것이다. 대의(大義)를 위해 함께 뭉쳤기에 거사가 가능했다. 대의를 위해 소아(小我)를 희생하는 정신이 지금처럼 절실한 때도 없을 것이다.
탄핵 찬성 측과 반대 측은 이달 4일과 11일에도 주말집회를 이어간다고 한다. 탄핵이 기각될 경우 민주노총은 총파업, 농민단체는 농기계 시위, 학생들은 동맹휴업 등 강력한 항의행동을 예고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자유청년연합 대표라는 사람은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의 집주소를 공개하고 단골 미용실과 슈퍼까지 언급해 테러를 선동하는 듯한 행위를 했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반민주적 폭력 기도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대선 주자들과 정치권, 사회 원로들은 탄핵심판 이후의 대한민국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미국이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헌법주의와 법치주의가 있었다. 2000년 대통령선거에서 사실상 이기고도 패배를 선언한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결단은 헌법주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어 가능했고, 이를 통해 국민적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어제 태극기와 촛불시위가 입증하듯 국민의식은 정치인들의 의식보다 한 수 위다. 탄핵심판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가 흔들릴 이유는 되지 못한다. 정치권과 각계 지도자들이 만나 탄핵심판 이후에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 나라를 위해 큰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