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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욱의 증상과 정상] 탄핵은 당연하지만 판결은 불복한다 / 한겨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3. 13. 06:27

[이승욱의 증상과 정상] 탄핵은 당연하지만 판결은 불복한다

한겨레 등록 :2017-03-12 16:47수정 :2017-03-12 18:59

 

이승욱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대표


세월호 참사 1060일째 되는 날 오전 11시.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박근혜가 세월호에 대해 아무것도 안 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판결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더니, 결국 아무것도 안 했던 책임자와 최고 사법기관은 아이들과 우리를 두 번 죽여 버렸다.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판결을 듣고 잠시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 불쾌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여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3월9일치 <경향신문> 김용민 화백의 지난 만평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행여나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내 하찮은 눈물로 스스로를 위안하고 조금이라도 면죄부를 줄까 봐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3년간 수없이 눈물이 솟구쳤지만, 소리 내 울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텔레비전 앞에 구명조끼를 입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평결을 기다리는 아이들 그림을 보는 순간,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그 법 제도와 그를 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직접 현장 구조를 하는 것이 대통령 임무는 아니므로 이는 탄핵 사유가 안 된다는 취지의 평결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수많은 사고와 사건의 현장에 대통령이 반드시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직접 현장에 나가서 구조했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누가 있나. 하지만 연가나 월차 또는 생리휴가를 낸 것도 아닌 상황에서 그날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서 무엇을 했는지조차 알 수 없으니 이것은 직무태만이 아닌가. 아무것도 안 한 것이 왜 죄가 안 된다는 말인가?

팽목항에는 아직도 미수습자 가족들이 거센 남해 바람을 견디며 아이들과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다. 유가족들은 아이들의 시신을 찾고 장례라도 치렀지만, 이분들은 차가운 바닷속에서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만날 날을 3년이나 견디고 있다. 지난 2월 미수습자 가족들을 뵈었을 때, 인양이 목전에 다다랐고 아이들을 볼 날이 멀지 않았음에 조금이나마 기력을 회복한 듯 보였다. 인양이 예상되는 4월의 날씨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도 부탁했다. 하지만 헌재의 이번 평결을 보고 또다시 실망하고 분노한다고 했다.

참사 당일, 수많은 공무원들은 조직적 태만을 행했고 구할 수 있었던 300여명의 목숨을 수장시켰다. 옛 속담에 정수리에 부은 물이 발뒤꿈치까지 내려간다는 말이 있다. 근무태만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었고, 그 모든 책임의 꼭짓점은 대통령이다.

아내가 목숨을 걸고 고통을 견디며 출산할 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거나 낚시나 골프를 가버린 남편들도 있다. 이런 남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내가 할 게 없었다고. 남편의 임무는 가족을 돌보는 것이다. 남편의 책임은 가족의 고통을 짊어지는 것이다. 남편의 태만이 아내에게는 정서적 이혼 사유가 된다.

대통령의 임무는 국민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데 있다. 이것이 가장 기본이다. 대통령의 책임은 국민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짊어지는 것이다. 임무도 책임도 다하지 않은 대통령에게 파면의 책임을 묻지 않는 헌법재판부 당신들도 임무도 책임도 다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들의 판결에 불복한다. 내 마음은 당신들도 탄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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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6155.html?_fr=sr1#csidx16b5d1ba910624a87fcdceab93e830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