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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앙의 성격과 인식에 대한 이해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3. 20. 06:29

 신앙의 성격과 인식에 대한 이해

 


 

  삶이란 무엇인가 ? 나는 내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 아주 머-언 어느 훗날에, "나의 삶은 후회없는 인생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 지금 나는 하루하루 만족하며 살고 있는가 ? 지금의 나는 행복한가? 앞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까 ?

   다시 묻건대,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행복한 삶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곧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그 행복의 요소들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 요소들 가운데에 "신앙"이란 것도 포함이 될까?

   그렇다면, "신앙이란 무엇인가?".... 자신에게 "신앙"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신앙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혹 있으신가요? 사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기억도 안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거부해본 적도 없으며, 그런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껴본 적도 없었습니다.

   오늘의 이 글은 그런 종교나 신앙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입니다. 논문이나 페이퍼로 준비한 것이 아니며 내용도 그리 길지 않고 어렵지 않으므로, 한번쯤 읽어두기에도 좋을 것 입니다.

   아래와 같이 관심이 있을 분들을 위하여, 한 면에 펼쳐 싣고 보니, 각주를 단 내용들은 함께 실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차 바로 아래에 한글파일로도 붙여 실었으므로, 필요하신 분들은 다운받아 읽어보시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간단히 요약하여 소개, 설명을 드리면, 신앙이란 무엇인지, 그 신앙을 교육하고, 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그 신앙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되는지, 그 신앙의 인식은 어떤 방법으로 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신앙을 인식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지에 대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     목     차    ═

    Ⅰ. 신앙의 성격과 인식에 대한 이해 / 1

           1) 신앙 교육

           2) 신앙의 성격

     2 . 인식에 대한 이해 / 3

           1) 신앙과 인식

           2) 신앙의 인식 방법

          3) 신앙의 영적 인식을 위한 조건








   1. 신앙의 성격 


      1) 신앙 교육


   기독교교육은 일반 세속교육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종교교육입니다. 그런데 종교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개인 인격체의 경건성입니다. 둘째, 신조들이나 행위들이나 가치들, 혹은 그 밖의 어떤 외적 체계입니다. 셋째, 유(類)개념적 총칭으로서의 종교, 즉 종교일반입니다. 첫 번째 의미는 한 종교를 다른 종교로부터 구별해줍니다. 세 번째 의미는 종교를 예술이나 경제와 같은 삶의 다른 영역들로부터 구별해줍니다.1)

   이와 같은 종교의 의미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항목은 첫 번째입니다. 이 경우의 종교는 인격적 차원에서 볼 때, 두 차원으로 분류됩니다. 한 차원은 신적 차원으로 섬김의 대상이며, 다른 한 차원은 인간적 차원으로, 섬기는 자입니다.

   그 두 차원 사이에 경건이 있습니다. 개인 인격체의 경건성으로서의 종교를
인간적 차원에서 보면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교육을 세속교육과 구별하여 종교교육이라고 할 때, 그 종교교육은 신앙교육이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교육이라고 할 때 신앙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인지 묻게 됩니다. 신앙의 교육 가능성은 신앙의 성격에 좌우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성격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2) 신앙의 성격


   신앙을 가르친다는 것은 신앙에 대해(about) 가르치는 것과는 다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교육학자들은 신앙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가능하다고 봅니다.2) 그러나 신앙을 가르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를 보입니다.

   그런데 신앙을 가르치는 문제는 신앙을 넣어주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통제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르치는 문제를 교육적 상황에서 신앙이 성장하느냐라는 문제로 바꾸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교육적 상황에서의 신앙의 성장에 대해서는 기독교교육학자들의 다양한 분야와 성향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일치를 보입니다.3)

   이 때 신앙이 가르치는 가운데 성장하는 것은 신앙이 교육적 성격에 부합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성격은 두 차원으로 하나는 과정적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구성적 차원입니다.

  
첫째, 신앙의 과정적 차원입니다. 신앙은 이미 형성된 지식이나 가치, 즉 결정된 어떤 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동적인 과정입니다.4) 파울러는 신앙은 계속적인 중심의 재설정과 하나님과의 파트너쉽의 깊이를 더해가며 결단하는 계속적인 과정이라고 합니다.5) 웨스터호프는 역시 신앙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의 순례로 말하고 있습니다.6) 해리스는 신앙을 삶의 과정을 통해 변해가고 성숙해 가는 춤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7)

   이 같은 내용은 신앙을 교육의 결과로 생각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신앙은 교육과 따로 분리된 실재가 아닙니다. 즉 교육의 결과, 교육이 끝난 뒤에 남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교육의 과정 중에 있는 것이지 교육과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교육의 과정 중에 그 참여자들에게 신앙이 형성됩니다.8)

   둘째, 신앙의 다른 차원은 구성적 차원입니다. 신앙이 과정적 성격에 부합한다는 사실은 신앙이 하나의 기능으로서 작용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 말은 신앙이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 부합될 수 있다는 결과적인 차원에서의 성격을 말합니다. 그 성격이 무엇인지 규명하는 일은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입니다. 보는 사람마다(신학, 심리학, 사회학 등) 관점이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9)

   그렇다고 해서 신앙의 성격을 전혀 알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에 대한 연구의 결과들은 신앙이 전인과 관계된다는 면에서 신앙이 다차원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데 합의합니다. 그 신앙은 파울러에게서 볼 수 있는 추상적 수준에서의 차원이 아니라 삶과 연결된
경험 차원에서의 성격입니다.10) 신앙을 전인으로서 볼 경우 신앙의 차원에 대해 글록(Charles Y. Glock)은 경험적 연구를 바탕으로 다섯 가지 차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이데올로기적 차원, 즉 신앙의 신념, 제의적 차원, 즉 신앙의 실제, 경험적 차원, 즉 신앙의 정서, 지적 차원, 즉 신앙의 지식, 그리고 결과적 차원, 즉 신앙의 효과이다. 신앙발달 이론가들 역시 신앙을
이지적인 앎이나 정서적인 신뢰, 행위적 차원의 어느 한 가지에 국한시켜 이해하지 않고 전인적으로 이해합니다.

   웨스터호프는 신앙의 형성에 있어서, 인간의 지적인 차원과 관련된 창조성, 호기심, 정서적 성격의 직관과 감정, 상상, 그리고 신앙의 외적 표현으로서의 행위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그룸 역시 신앙은 전인격적인 존재와 관련된 것으로서 믿음의 확신, 신뢰하는 관계성, 아가페적인 삶이라고 정의합니다.
신앙의 이와 같은 지, 정, 의적 차원의 전인적 성격은 신앙을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의 단서가 됩니다.



2. 신앙의 인식에 대한 이해


      1) 신앙과 인식


   신앙이 교육과 관련되려면 인식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교육을 신앙교육이라고 했을 때 만일 신앙교육에서 인식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을 교육이라고 할 수 없고, 신앙교육이라는 단초를 통해 기독교교육학의 정체성을 규명하려는 과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인간의 인식은 제한된 몇 가지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살아있는
전체, 즉 몸,11) 정신, 영혼을 통해 인식합니다. 인간은 특정한 여러 가지 인식의 도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도구, 즉 그의 전인(the whole person)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은 지적인 작용만이 아니라, 지, 정, 의, 곧 전인이 함께 작용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인식에 대해 밝혀진 이 같은 사실들은 신앙의 전인적 성격과 조화를 이룰 것으로 예상되어 신앙 교육의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신앙에 대한 인식은 정서적, 행위적 차원을 고려한 인식론이 될 것입니다. 인지적 차원에서는 대화와 교류의 인식을, 정서적 차원에서는 사랑과 공감의 인식을, 행위적 차원에서는 참여적 인식에 대해 고려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엄격하게 분리되는 것은 아니며, 서로 중첩이 되고 또 그렇게 될 때,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2) 신앙의 인식 방법


   첫째, 대화12)는 진리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데, 우선 대화는 인식의 왜곡을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이 됩니다. 소크라테스(Socretes)는 대화(문답법)을 통하여 존재의 자기 모순이나 무지를 폭로하였습니다. 대화가 비판적 기능을 행하여 왜곡된 인식을 수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에 있어서 대화의 상대자는 교사와 학습자입니다. 그런데, 이 양자는 주체로서 대화에 참여하지만, 기독교교육에 있어서는 교사와 학생이 대화의 제 3의 당사자인 성령과 더불어 자아가 교류되는 운동이 있을 때,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인식이 보다 용이하게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둘째, 신앙에 대한 인식은 사랑할 때 일어납니다. 무엇을 인식한다고 할 때, 가장 완전한 인식은 인식 대상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요한일서 4:16) 사랑 외에는 그를 참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결국 사랑할 때 알게 되며, 아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입니다. 즉 사랑의 인식은 재구성하는 인식으로 사랑할 때 다른 관점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고 이해하지 못하던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 같은 일은 상대방의 현실 안으로 들어가고 또한 상대방이 내 안으로 들어오도록 허락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단순한 정서적 차원이 아니라 책임을 지고 희생을 할 각오를 포함하는 것이며, 관계 짓기, 상호성, 그리고 엄숙한 책임감 등의 형식으로 현실과 대면합니다.

   셋째, 공감(compassion) 역시 인식과 관계가 있습니다. 공감은 감정이입(empathy)이나 동정(sympathy)과는 다른 감정입니다. 공감은 타인의 마음이나 느낌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인 감정이입의 인지적 차원의 심리활동과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의 정서에 대한 공유적 심리를 지칭하는 개념인 동정의 정서적 차원을 선행조건으로 삼는 실천적 차원의 행동이나 경험을 의미합니다. 이 공감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이해이며,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인간이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는 타인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사용됩니다.


   넷째, 성령은 무엇보다도 구약에서의 인식의 기원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그 선물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신약의 성령은 사람들에게 지시하고(눅 13:2, 6:6, 21:11 참조) 안내합니다(행 10:29, 10:19, 11:12, 13:2).

   특히 성령을 부활한 예수와 강하게 연관시킵니다(행 16:6-7, 18:9).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합니다(고전 2:9-12). 즉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직접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성령의 활동은 계시의 수용을 위해 필요하며, 성령은 진정한 인식의 매개자입니다.


   기독교적 앎(인식)은 머리로 아는 추상적인 앎이 아니며, 몸 전체로 참여하여 아는 앎입니다. 그러므로 교사와 학습자가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 함께 참여할 때 보다 잘 일어납니다. 보통 인식은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일어납니다.

   그러나 참여와 비교할 때 언어에 의한 인식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체험을 동반하지 않는 한 어떤 매체도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는 이러한 인식은 폴라니(Polanyi)의 “우리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알 수 있다”는 말로 함축적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즉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속 깊이 알고 있는 지식의 암묵적(暗黙的)인 차원을 부각시켰습니다.

   신앙은 비언어적 속성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철학도 아니고 관념으로 짜여진 체계도 아니며, 개념에 의해 전개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분석적, 추론적, 이성적, 점진적, 목적론적인 것을 거부하고 직접적, 즉각적, 통합적, 구체적, 사실적, 궁극적인 것을 지향합니다.13)

   신앙의 체험 그 자체를 직접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신앙의 체험을 외현적으로 드러내어 나눌 수 있는 방편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언어가 사용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그 자체를 설명하기 위해 언어에 호소하는 순간, 그것은 모든 부자유와 억압, 그리고 언어에 근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온갖 모순에 의해 즉각 희생당하고 맙니다.14)
 

   전체적으로 신앙은 참여에 의해 획득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 관찰해서 생기는 앎이 아니라, 경험에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참여함으로 생깁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앙에 대한 인식의 차원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며, 대화적, 교류적 차원에서 주체로서의 대화에, 즉 사랑과 공감의 차원에 참여해야 합니다.

 

      3) 신앙의 영적 인식을 위한 조건


   첫째, 대화적, 교류적 차원에서 주체로서 대화에 참여하여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 들음은 상대의 말이나 몸짓 이상에 대한 것이며, 그 표현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전체 세계와 그 사람을 듣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향한 집중이 있어야 한다. 집중이란 사고를 인단 정지시키고 거기에 대상이 침투할 수 있도록 어떠한 편견도 없이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인이 중심이 되고 그의 흥미가 나의 것이 되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집중에는 두 차원, 즉
비움과 기다림이 있습니다. 비움이 공간적 차원이라면 기다림은 시간적 차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우고 기다림을 통해 대상인 하나님과 하나가 됨을 이루게 되며, 이 순간에 신앙이 나타나고 인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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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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