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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근신하여 깨어 있으라 (마26:36-46, 벧전4:7-11) / 호현낙선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4. 1. 21:43

근신하여 깨어 있으라. 마26:36-46, 벧전4:7-11

현대선교의 문을 연 윌리엄 캐리는 세계가 선교에 대해 아직 눈 뜨지 않았을 때, 인도 선교사로 자원해서 갑니다. 42년 동안 활동하면서 수많은 고초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죽음의 유혹도 받았습니다. 부인은 거의 정신병자가 될 정도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재정난에 허덕이면서 곧 주저앉을 것 같은 일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 사람과 함께 숙원사업이던 인도 45개 방언으로 말씀을 번역해 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잠자던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 가슴을 선교사역의 열정으로 뜨겁게 한 사람입니다.

사역을 마무리할 즈음에 한 사람이 찾아가 "당신은 지치고 힘든 고난 가운데에서도 어떻게 이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 때, "저는요, 하나님 뜻 그 이하도 이상도 없었습니다. 나는 내 삶 속에서 하나님 뜻만 바라보았습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나를 이곳에 보낸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도록 내 육체와 환경이 주는 소리와 싸워 이기고 하나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 뜻만 바라보았습니다." 순간마다 육체가 주는 소리를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한 윌리엄 캐리, 그는 고난이 많은 인생이었지만 마침내 하나님 무대에 아름다운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복음서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앞두시고 깊은 고뇌의 시간을 가지신 후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며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고난 앞에 육체의 소리를 듣고 절망하지 말고 나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뜻을 알려 주실 것이고 그 뜻을 감당 할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근신하여 깨어 있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성도는 바른 종말관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너무 살기가 힘들면, "에이 죽어버리자, 죽으면 그만이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분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죽으면 그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육체의 죽음은 영적 세계의 시작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는 내 맘대로 살았지만 이제 오는 세상에는 하나님이 그 세상의 주인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어떤 종교를 선택하여 믿든지, 아무 것도 믿지 않고 무신론자로 살든지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하고, 자신이 삶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결과를 따라서 그의 영원한 삶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육신적인 삶의 모습에 대해서 "먹고 마시며, 사고팔며, 시집가고 장가가며...."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의 일상생활입니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인 삶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요, 일반적인 삶만이 자신의 전부의 삶이 되어서 먹고 마시는 것, 팔고 사는 것,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 연락 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인생의 전부가 되어서 그 중에 하나님이 있을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 기도, 진리, 하늘의 소망, 천국, 영생, 하나님의 뜻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도, 관심도 없이 산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일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 육신적인 연락에만 온 마음을 쏟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종말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 가르침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죽음 후에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히 9:27에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했습니다. 주님의 비유 가운데 우편의 양과 좌편 염소의 비유를 보면 그들은 분명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도 죽음후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육의 일에만 치심 하며 살았던 부자는 고통 받는 지옥에, 거지 나사로는 천국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은 진지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공경하게 될 것이며, 죽음 이후의 삶을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다음에 죽음을 자고 쉰다는 것으로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죽음을 잠잔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주님은 죽은 것이 아니고 잔다고 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었지만 예수께서는 나사로를 잠잔다 하시면서 깨우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로마의 공동묘지 중 초대교회 시대의 순교자들의 무덤에는 한결같이 "잠들다"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예수 안에서 잠들다", "한 아이가 예수 안에서 잠들다" 남편이나 아내나 모두 "예수 안에서 잠들다"라고 써 붙이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수고를 하다가 이제 모든 것 내려놓고 잠자고 쉬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죽은 사람은 다시는 고통이 없고 잠자고 안식 하는 것이기에 복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계 14:13에서 “또 나는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렇게 기록해라.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안식할 것이다. 이는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죽음 후에는 영원한 삶이 열린다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 영원한 삶은 천국이나 지옥 둘 중에 하나입니다. 죽음으로 영원한 삶이 열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의 씨앗이 죽음으로써만 열매가 되고 꽃이 피게 되기도 합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아무런 형체도 나올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죽으면 영원한 세계가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육신의 삶을 청산하게 하고 영원한 영혼의 삶을 시작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아야겠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사모하며 천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성도들이 됩시다.

2.성도는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죄로 얼룩진 지구 역사는 시작과 함께 종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종말은 완전한 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향한 관문이요,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임을 가리킵니다.

성경에는 종말에 대한 징조들을 여러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딤후 3:1-5을 보면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실로 우리는 주님 오실 때가 매우 가까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신서 본문 벧전 4:7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했습니다. 여기 정신을 차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말세에 정신을 차려야 할 첫 번째 이유는 세상에는 거짓 교훈이 만연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종말의 때가 되면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 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 미혹하는 자들이 상투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종말론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었으니 여기 와야 구원이 있다고 그럴듯하게 성경을 짜 맞추어 사람들을 미혹 합니다. 주님 재림 날짜를 지정하여 미혹하기도 하고, 장소를 지정하여 거기 가야 재림 주를 만날 수 있다고 미혹합니다. 이 모든 배후에 사단이 있습니다.

이단의 특징을 보면 *지나친 종말론 강조하여 불안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요한계시록이나 에스겔서, 다니엘서 등의 예언적인 내용을 유독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묶어 맹종하도록 노예처럼 만듭니다. *특정인의 가르침 강조합니다. 살아있는 누군가를 절대적인 존재인 것처럼 강조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통일교에서는 문선명을,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안상홍, 장길자를, 국제크리스천 연합에서는 정명석을, 신천지에서는 이만희를 등 등 사람을 신격화 하여 교묘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 맹종하여 따르게 합니다. *기성 교회를 지나치게 비판합니다. 적반하장 격으로 저들은 사단의 무리고 자기들은 구원 받을 집단이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합니다. *지나치게 헌금을 강조하며, 질서와 권위 체계를 강조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 말고 다른 무언가(책자나 교리)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 책자는 사람들의 마음을 교묘하게 미혹하는 수단에 불과 합니다. 그 교리를 통해서 그들이 신봉하고 따르는 교주가 왜 필요한가를 가르치고 그 교주를 따르게 하기 위해 만들어 졌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정신 차리지 아니하면 사기 당하고 늦게 땅을 치고 통곡한들 이미 늦게 됩니다. 돈 사기는 큰 것 아닙니다. 영혼 사기는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형벌로 이어지게 됩니다.

또한 마지막 때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사람들이 쾌락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육신에 빠져 사는 시대가 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의 행복을 증진하는 어떤 일이 아니라, 더 잘 먹고 마시고 입는 일에 집중되어 있으며, 나아가서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켜주는 일에 과도히 열심을 내는 어리석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TV 연예 오락 프로에 나오는 연예인들도 과도한 노출과 색시 한 동작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끕니다.

지역마다 대형 술집, 룸살롱, 단란주점, 퇴폐호텔, 카지노 등등이 휘황찬란하게 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추구하는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미혹을 받아 그러한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정신 차리지 않으면 세상 풍조에 빠져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진리를 바로 알아 분별력을 가지고 바른 믿음의 길을 걷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성도는 종말을 잘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다가오는 종말을 잘 준비하며 살까요? 먼저 근신하여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서신서 본문 벧전4:7에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복음서 본문에 보면 주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나와 함께 깨어 기도할 것을 부탁하시고 따로 떨어져 간절한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졸고 잤습니다. 깨어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못했던 그들은 주님이 잡혀가실 때 자기들만 살겠다고 도망치고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서두에서 캐리 선교사에 대한 말씀을 드렸는데, 윌리엄 캐리의 전기를 쓴 작가는 어떻게 윌리엄 캐리가 열정을 가지고 이 사역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를 조사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한 가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윌리엄 캐리에겐 몸 약한 누나가 있었습니다. 누나는 인도를 떠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윌리엄, 나는 네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구나. 나는 병상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몸이라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밖에 없구나." 전기 작가는 윌리엄 캐리의 위대한 사역 배후에 있는 '기도밖에 할 수 없는 한 여인,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여인, 기도 외에는 자기존재를 발견할 수 없는 여인'에게로 초점을 맞췄습니다. 누나의 기도 속에 윌리엄 캐리가 사역을 이루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음을 전기 작가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윌리엄 캐리의 누나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 앞에서 자기가 왜 나약한 모습으로 일평생 누워 지내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근신하여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 너무 소중함을 알고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에 서로 사랑하는 일로 준비해야 합니다. 본문 디벧전 4:8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했습니다. 말세에는 불법이 성행하므로 사랑이 식어진다고 했습니다(마24:12).

그러나 신자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여기 '무엇보다도'는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요긴한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은 곧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서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전심으로 뜨겁게 사랑하며 삽시다.

그리고 서로 대접하고 봉사하는 생활로 준비해야 합니다. 본문 벧전 4:9-10에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구체적인 표현이 '대접'과 '봉사'로 나타납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 하고, 병든 자와 갇힌 자를 위문하고, 나그네를 위해 성도들이 열심히 대접하고 봉사 하다 보면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고, 주님을 대접하는 일이 됩니다. 여기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자요, 주인의 뜻대로 일하는 자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헌신과 수고가 결코 주안에서 헛되지 않음을 깨닫고(고전15:58) 힘을 다하여 봉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준비하며 사는 자들은 언제 죽음을 맞게 되든지,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게 됩니다. 정리^^

오늘은 “근신하여 깨어 있으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성도는 바른 종말관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는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성도는 종말을 잘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2017. 4. 2. 성산 교회.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호현낙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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