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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싸워보기나 했습니까? / 이병준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4. 18. 16:25
제대로 싸워보기나 했습니까?
이병준 대표(파란 Re-born)

안녕하십니까? 부부 Fun더하기 이병준입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어떻게 저렇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주변 환경이 너무 그 사람을 힘겹게 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최근엔 상담자로서 허탈하거나 긴 한숨을 내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몇 년 전부터 생겨나는 현상이라 왜 그럴까를 궁금해 하던 차원에서 요즘은 더 심해져 걱정해야할 상황입니다. 저 스스로가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신혼부부의 상담

몇 개월 전에 신혼부부가 상담을 왔습니다. 피차 아직 아이가 없을 때 갈라서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을 한 상태였습니다. 주변 분들이 그 모습을 보고 그래도 상담은 꼭 받아보라고 권유해서 보낸 사례였습니다. 불편한 것을 이야기 보라고 했더니 남편이 대뜸 분노에 가득 찬 표정을 짓더니 자신의 잘못을 일거수일투족 일러바치는 아내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사연을 좀 더 들어보니 결혼하고 이래저래 1년을 지내왔는데 처가에 갔더니 아내가 자기 흉을 얼마나 봤는지 둘 사이에 있었던 소소한 일을 처가식구들이 다 알고 있더란 것이었습니다. 자기 잘못을 다 일러바치는 그런 여자와 어떻게 평생을 살 수 있냐는 항변이었습니다.
이렇게 신혼부부가 상담을 오면 감정적으로는 죽일 듯한 분노상태이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제대로 싸워본 적이 전무한 부부들이 많습니다. 그저 감정에 묶여 서로를 비난하고 원망하다 상처만 남기는 싸움, 둘 다 루저(loser)가 되는 싸움만 반복한다는 뜻입니다. 피차 에너지만 낭비하는 싸움만 반복하다 자식 낳아 키우고 집 마련하고 먹고 살기 바빠 그냥 그렇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 다음 단계로 올라서지 못하면 평생을 그렇게 살다 죽게 됩니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전문가’의 말이라면 들을 의도는 있다는 점입니다. 


피차 예의부터 지키자.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혹, 남편 분 매일 아침 용변을 보시나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 “당연하죠, 그거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라고 답합니다. “용변은 어디에서 처리하나요?” “화장실요” “왜 굳이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나요. 그냥 아무데나 마려운대로 그냥 싸면 되지?” 잠시 남편의 표정이 황당함을 넘어 짜증까지 더해집니다. “부부싸움을 했다면 분노라는 분뇨가 꽉 찬 게 아닐까요? 그러면 아내 분은 어디 가서 그것을 처리해야할까요? 아내에게 가장 편한 화장실은 어디일까요?” 그러자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럴 땐 참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혹, 아내분 동족방뇨(凍足放尿)라는 말 들어본 적 있습니까?” “아니오, 고사성어는 잘 몰라서...” “언 발에 오줌누기라는 고사성어입니다. 남편의 잘못을 시시콜콜 친정에 일러바치는 것은 그런 거와 같습니다. 한 순간은 잠시 언 발이 녹는 것 같겠지만, 그로 인한 손해는 더 큽니다. 아내가 그렇게 행동하면 남편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남편의 잘못이나 험담은 다른 통로를 통해서 푸시고 친정에 가시면 좋은 점을 이야기 해 주십시오.”


도움이 되는 부부싸움을 하라

두 사람이 제가 전해 주는 말을 잘 듣고 수긍하고 실천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굳이 상담사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변에 어른들이 계시면 얼마든 타이를 수 있는 것인데 가르칠 것을 너무 가르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두 사람에게는 감정의 화장실로 ‘글쓰기’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감정처리를 각자가 한 후에 문제를 풀어갈 때는 이성적으로 대처하라고 말입니다. 건강한 부부싸움은 부부를 보다 더 깊은 관계로 결속시킵니다. 중년기 이상의 부부가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다고 표현하는 말은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많은 부부전문가들은 중년기의 결혼만족도가 신혼기보다 월등하게 높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U자형 곡선 또는 S자형 곡선이라고 합니다. 결국 사랑은 감정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이성과 의지를 동원해서 하는 것이요, 결혼의 행복이란 피차의 노력을 동반한 매일 매일의 창조행위란 점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넷향기 가족 여러분!
사랑하며 살기에도 짧디 짧은 인생이라는데, 우린 너무 사소한 일에 목숨 거는 것 아닐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