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7·3전당 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문재인 정권은 주사파 운동권 정부이기 때문에 오래 못 간다”고 한 데 대해, 바른정당의 하태경 의원이 “언제까지 빨갱이 장사를 해서 보수의 수명을 연장할 거냐. 한물간 종북몰이 카드는 그만두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중앙일보 6월 20일 자).
이제 막 출범을 한 정부를 향해 협력은커녕 저주에 가까운 저질 색깔공세, 종북몰이에 오만 정이 떨어진다. 하기는 얼마 전 그가 한국당의 대선후보로 나섰을 때도 자신의 정책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문재인 후보를 좌경 종북으로 모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국당의 표밭이라 할 서울의 강남 3구에서조차 철저히 외면당함으로써 더 이상 종북몰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과 그 정권을 상대로 종북몰이를 계속하고 있는 행태는 우리를 절망케 하고 또 슬프게 한다. 적폐 중의 적폐, ‘종북몰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고질적인 폐단을 적폐라고 한다면, 정부수립 이래 보수세력에 의해 시도 때도 없이 자행되어 온 ‘종북몰이 빨갱이 장사’야말로 적폐 중의 적폐요, 시급히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악성의 적폐라고 말할 수 있다. 이승만의 백색 독재와 30여 년에 걸친 군사정치 문화 아래서 집권세력이 그 비판세력 탄압에 전가의 보도로 활용한 수단이 좌경 용공조작과 음해였음을 우리는 지겹도록 경험해 왔다. 정치적 위기에 몰릴 때마다 집권세력은 간첩사건을 조작 발표하거나 학생운동을 비롯한 반대세력을 용공좌경으로 몰아 탄압해 왔다. 북쪽의 세습독재 권력과 남쪽의 군사독재 권력이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같은 조작간첩 사건으로 죽어갔던가. 이 같은 편 가르기 식 용공몰이는 국가공동체 내부를 분열시켜 국민통합을 가로막고 갈라진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대한 염원마저 움츠러들게 하는 망국적 자해행위에 다름 아니었고, 그것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생전 내내는 물론, 자손 대대로 이어지는 아픈 상처가 되었다.
“빈곤과 질병으로 인한 열등감과 좌절감 때문에 사회에 불만을 품게 되었고, 이러저러한 좌경 책을 읽으면서 북한 또는 국외공산계열의 노선에 동조하는 공산주의자가 되었다”는 내용의 공소장이 너무 자주, 너무 쉽게 만들어졌다.
정치권력의 이러한 용공조작 수법에 대해 1975년 김지하는 그의 옥중 양심선언에서 “어제오늘에 시작된 것이 아닌 이 지긋지긋한 반공법 제4조의 상투적, 견강부회적, 무차별적, 모략적 적용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정신적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질곡이며, 우리 민중으로부터 말의 자유를 빼앗아 숨 막히는 암흑과 침묵의 문화를 보급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부패특권의 압제권력을 유지해 온 최대 억압의 무기이다. 나는 이에 대하여 자유의 이름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 떨리는 분노로 항의한다. 나는 나에게 들씌워진 이 더러운 질곡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썼다. 지긋지긋했던 용공조작과 음해 박정희 정권 때는 최종길 교수를 고문치사 시킨 뒤 간첩으로 조작 발표하고, 1975년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여 8명을 사형대에 올렸던 중앙정보부가, 전두환 5공 군부정권 때는 박종철 군을 물고문으로 죽인 저 유명한 치안본부 대공분실이 용공조작의 본산이자 지휘부였다. 보안사령부는 재일교포간첩단 사건을 수시로 조작 발표하였다.
1980년대 초반 이른바 국보시대(반정부 사범을 국가보안법으로 규율 하던 시대)에는 서울에서 학림사건(전민노련사건), 부산에서 부림사건, 대전에서 아람회, 한울회 사건, 공주에서 금강회 사건, 전주에서 오송회 사건 등 비슷한 형태의 용공조작 사건이 고문을 통해 만들어졌다. 사건을 만들어 용공조작을 하는 수사기관 사람들에게는 1계급 특진의 혜택과 훈장과 표창이 주어졌으며, 검찰과 법원은 다만 이들 조작 사건들을 확인, 추인해 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국가보안법 사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형식적이지만 증거가 있어야 했다. 표적이 된 사람의 집을 기습적으로 수색, 문제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서적을 압수하여 증거로 삼았다. 이렇게 압수된 책을 불온서적이라고 감정해 주는 맞춤 연구소와 전문감정인도 있었다. 일본육군성의 첩자양성학교인 나가노(中野)출신에 홍지영, 홍성문 등 다섯 가지 이을 번갈아 쓰던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은 빨갱이를 이렇게 만들어 냈다.
형이 확정되면 이들은 또 전향공작의 대상이 되었다. 처음부터 공산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향서를 쓸 수 없다고 거부하면, 사회안전법에 의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징역을 살아야 했다. 서준식은 7년 징역을 마치고도 10년을 더 보안감호처분으로 감옥에 있었고, 강용주는 전향거부 투쟁 속에 14년의 징역을 살고 나와서도 18년을 보안관찰처분 대상으로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다. 용공조작의 피해는 이렇듯 일생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한 인간을 피폐하게 하고 있다.
이제 제발, 지긋지긋한 종북몰이, 빨갱이 장사는 걷어치우자. 우리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그 아프고 슬픈 상처를 더 이상 만들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