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박상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65)는 2003년 연세대 법과대학 학장 시절 장학금을 ‘성적’ 순이 아닌 ‘경제 형편’에 따라 지급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작고한 김남주 시인이 지은 <옛 마을을 지나며>라는 시를 소개했다. 사회운동가로 1970~80년대 독재 반대운동을 벌인 김남주 시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겨진 홍시’에는 ‘까치밥’으로 상징되는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2일 연대 졸업생들에 따르면 박 후보자는 2003년 8월3일 법대 학생 전원에게 e메일을 보내 그해부터 달라진 장학금 수혜자 선정 기준을 설명했다. 그는 “학업성적이 우수하면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학생은 어려운 학우들에게 장학금을 양보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희망이 있다”면서 “대신 이런 학생에게는 성적과 선행에 대한 표창을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성적 위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게 원칙이였기 때문에 당시 결정은 학생들 사이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박 후보자는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교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될 학생들도 있다”면서 “성적이 조금 부족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학우에게 양보하고 돕는 미덕이 바로 우리 법대생에게 필요한 덕목 아닐까요”라면서 양해를 구했다. 대신 성적 우수자들은 교수식당으로 불러 함께 식사한 뒤 개별적으로 표창장을 수여했다.
박 후보자는 장학금 문제와 관련해 학생들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사회에 눈을 뜬 법학도로서의 자세를 강조했다. 그는 e메일에서 “사법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지만 개인적 목표 달성과 함께 사회에 대한 관심도 언제나 간직해 주기를 부탁한다”면서 “법에 따라 사회가 정의로워 질 수도 있는 반면 현실을 왜곡시키는 기능도 할 수 있음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모든 법이 정의롭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타협의 산물인 현실의 법”이라면서 “우리 사회에 인간도 모르고, 사회도 모르면서 오로지 법 적용만 능숙하게 할 줄 아는 법 기능인이 많아져서는 안된다”고 부연했다. 박 후보자는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을 지낸 안경환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69)와 함께 대표적인 사회참여형 법학교수로 불린다.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그는 최근까지 경제정의실천연합 공동대표를 맡았다.
박 후보자는 학장이 되기 전에도 고학생(苦學生)들을 돕는 일에 적극 나섰다. 1990년 입학한 박대규 헌법재판소 연구관(46)은 부모님과 함께 상경해 구로구에 있는 단칸방에 살았다. 그해 여름 박 후보자는 법대 교학과장 사무실로 박 연구관을 불러 “많이 어렵지? 기업에서 만든 장학재단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추천할테니 공부 열심히 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큰 사람이 되도록 하게”라고 말했다.
1997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박 연구관은 검사로 10년간 근무하다가 2011년 헌재로 자리를 옮겼다. 박 연구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김이수 헌재 소장 후보자(64)가 헌재 재판관으로 근무할 때 전속 연구관으로 일한 인연으로 지난달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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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7021344001&code=940202#csidxcc7647fbb2ae9d89758de0b7bbafe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