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訴訟]=자유 평등 정의

안종범 수첩 ‘직접증거’ 불발에도 특검이 웃는 이유 / 한겨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7. 8. 00:21

안종범 수첩 ‘직접증거’ 불발에도 특검이 웃는 이유

등록 :2017-07-07 15:55수정 :2017-07-07 16:45

 

변호인단 “위법한 수집” 등 주장 증거채택 반대
이재용 사건 재판부, 간접증거로 채택
특검 “직접증거라고 주장한 적 없다…간접증거로 충분”
과거 기업 총수 사건 때 간접증거로 유죄 입증 사례 많아

그래픽 강민진 디자이너
그래픽 강민진 디자이너

뇌물 공여 혐의 등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둘러싸고 특검과 삼성 쪽 변호인단의 ‘장외 여론전’이 뜨겁다. 대통령의 지시·전달 사항이 촘촘하게 적혀있는 이 수첩은 올해 초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헌법재판관들이 ‘국정농단’의 전모를 드러내 준 핵심 증거로 꼽을 만큼 파괴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이 부회장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는 지난 6일 새벽까지 이어진 이 부회장의 공판에서 이 수첩을 직접증거가 아닌 ‘정황증거’ 즉 간접증거로 채택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과 삼성 쪽 변호인단은 ‘재판부가 직접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특검이 불리한 처지에 몰렸다’, ‘특검이 이 부회장의 혐의 입증을 위한 추가 증거와 진술을 내놓아야 한다’고 분위기를 잡고 있다.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주장을 상당 부분 수용했기 때문에 특검이 불리해졌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정작 특검 쪽 분위기는 이와 사뭇 다르다. 재판부의 선택을 성토하거나 불만을 드러내는 볼멘소리도 나오지 않고, 내부적인 위기감도 없다. ‘특검이 위기에 몰렸다’는 언론 보도에 섭섭함을 표시하고 있을 뿐, 공판 진행과 관련해서는 여유마저 느껴진다. 왜일까? 재판 과정을 잘 아는 한 법조계 인사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증거는 형식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 두 가지로 봐야 한다. 형식적 측면에선, ‘증거능력이 있느냐’는 것이고, 내용적 측면에선 그 증거가 어떤 가치가 있고 어떤 의미가 있느냐, 즉 ‘직접증거인지, 간접증거인지, 간접증거라도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우선 형식적인 측면에서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특검 쪽 주장을 100% 수용했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재판 때 지속해서 ‘수첩이 위법하게 수집됐다’며 증거로 채택하지 말아 달라고 주장해왔다.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내용적 측면에선 어떨까? 특검 관계자는 “우리는 재판에서 수첩을 직접증거로 채택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를 녹음한 파일이라거나, 대통령 또는 이 부회장 당사자의 진술이라면 직접증거가 될 수 있지만, 그런 건 애초에 없었다. 간접증거, 정황증거가 될 줄 알았고, 중요한 건 어떤 식이든 수첩이 증거로 채택돼서 증거능력을 갖게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수첩은 대통령과 안 전 수석 사이의 일에 대해서는 직접증거이고,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의 일에 대해서는 간접증거가 맞다. 특검이 입증하려는 것은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의 일이니, 수첩은 직접 입증은 하지 못하고 둘 사이에 일어난 일을 추단하게 해주는 근거가 될 뿐이다.”

단지 추단의 근거인데 왜 특검은 초조해 하지 않는 것일까? 우선 수첩과 관련한 안 전 수석의 진술이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전 수석은 다른 사안들에 대해 진술을 많이 바꾸고 있지만, 대통령의 지시와 전달사항을 수첩에 기재했다는 점만큼은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기업 총수와 독대한 뒤 대통령이 수석에게 전달한 말은 거짓일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간접증거라고 하더라도 증거로서의 가치는 매우 높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과거 기업 총수들의 뇌물 사건에서도 직접증거가 있었던 적은 별로 없다. 누구든 회장이 직접 지시했다고 진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아래 임원이나 직원들의 행동들(간접증거)을 모으면 총수가 지시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추단이 가능하고, 그 때문에 총수가 유죄를 받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헌법재판관들이 한 차례 판단했듯이, 수첩은 몇 단계를 거친 간접증거가 아닌 대통령과 총수의 독대 이후 한 단계만 거쳐 작성된 증거라서는 점에서 단순한 간접증거로 평가절하할 수 없다”고 짚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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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01905.html?_fr=mb3#csidxc81df2cc73ea390839cccac0aedd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