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가까이 지내던 선배님의 부음을 들은 것이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빈소가 마련된 병원의 영안실에 도착해 조문을 하는데 수척해 있는 형수님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늘 밝은 모습이었는데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가 고인과 통화를 한 것은 불과 보름 전이었습니다.
늘 쾌활하고 목소리가 밝은 분이었는데 그날만은 달랐습니다. 힘이 없는 목소리로 괜찮다고 했고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찾아뵙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이번 주말에 찾아뵈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런 부음을 들었고 그분의 마지막 모습을 뵙지 못했습니다.
한 달여 전에 찾아뵈었을 때는 오랜 항암 치료 때문에 머리가 다 빠지고 뼈만 앙상한 모습이었습니다. 줄레줄레 달린 주삿바늘도 그랬지만 퀭한 눈으로 천정을 바라보는 선배님의 눈빛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저리도 깊이 할까, 당사자 외에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절대 고독과 공포 속에서 그 선배님은 몇 개월을 버텼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분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암 선고를 받기 전까지 그분의 삶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습니다. 그리고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어디 서나 당당했고 재미있고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고 주변사람들이나 가족에게도 참 잘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랬던 분도 병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작아지고 초라해지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도 얼핏 보였습니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 지 않았음을 알고 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 만난 어느 중년 여인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얼마 전에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그 암을 일찍 발견해서 병을 잘 치료할 수 있었지만 그 경험을 한 다음부터는 지금까지 했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죽음이 남의 얘기였고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암 선고를 받은 뒤부터는 죽음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으면서 어쩌면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남은 가족을 생각하게 되고 남은 아이들을 생각하니 그것이 죽음보다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병원 신세를 지면서 그동안 남편이 진급을 못하는 것,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것, 돈 때문에 걱정하며 사는 것, 위층에서 조금 시끄럽게 하는 것, 이렇게 그동안 마음이 쓰던 많은 것들이 그리 중요한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불평보다는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아침마다 가족들의 밥을 해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말썽꾸러기 자녀들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남편이 곁에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심지어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는 것조차도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누구라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몇 달 전만 해도 그렇게 건강했던 선배가 이렇게 허망하게 갈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제가 아는 그 여인처럼 자신도 모르게 자신 안에 암 덩어리가 자라고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는 자신의 삶 앞에서 참으로 겸손해야 하겠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치고 어떤 사람도 ‘더 일했어야 했는데, 돈을 조금 더 모았어야 했는데,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갔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죽음을 앞에 둔 많은 사람들이 ’가족에게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다른 사람들을 좀 더 배려했어야 했는데, 더 많은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마음을 썼어야 했는데...‘하는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그 순간이 되면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더 많은 일을 하지 못한 것이나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사랑을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 후회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지금부터라도 더 많은 사랑을 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누군가 나를 조금 서운하게 한다 할지라도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가족에게, 내 동료에게, 내 친구에게, 그리고 나와 인연을 맺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따뜻한 마음을 주어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차분한 장맛비가 내리고 있는 금요일 오후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대원(大原)
박완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