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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운전.../ 박완규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7. 8. 00:52

초보운전...

                         보낸사람

박완규 <pawg3000@naver.com> 보낸날짜 : 17.07.07 13:11                

   



 

 


 




 

초보운전...


 

 




운전면허증을 딴 뒤에 3년 동안 장롱 안에 고이 모셔두었던 아내가 이제 운전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운전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는 아예 손사래를 칩니다. 남편에게 운전 배우다가 속이 뒤집어진 아내가 한둘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학원보다 더 친절하게 가르쳐 주겠다고. 하지만 아내는 서로 좋은 관계를 운전 때문에 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며 집과 가까운 자동차 학원에 등록을 해서 정식으로 도로연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열심히 운전을 배우더니만 아내는 자신이 운전에 천부적인 소질을 갖고 있다며 자신있어 했습니다. 운전을 가르치는 강사가 그랬더나 어쨌다나. 그것이 바로 엊그제였습니다.


아내는 어제 의기양양하게 혼자서 자동차를 몰고 집을 나섰습니다.


부족한 주차 연습을 더 하겠다며 집 위에 있는 안심산 온천의 넓은 주차장으로 가서 주차 연습을 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을 나서자마자 3분도 되지 않아서 동네 골목 어귀에서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외제차인 아우디를 박았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가 평소에 간이 큰 줄은 알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세게 나갈 줄은 몰랐습니다. 아내로부터 사고가 났다는 소식과 함께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서 괜찮으니 보험회사에 연락해서 보험처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은 현장으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급한 회의가 연이어 있어서 현장에 나가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상대방 운전자가 아주 친절하게 대해줬다고 합니다. 어차피 아내가 모두 변상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상대 운전자의 친절한 대응에 아내는 그나마 위안을 받은 것 같습니다. 누구인 줄은 모르겠지만 참 고마운 배려였습니다.


아내는 그 사고 이후에 겁이 나서 운전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고. 처음에는 원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사람이 다치지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사람을 다치게 하면 당신이 감옥에 가야 하는데 감옥은 내가 대신 갈 수가 없으니 사람만 다치게 하지 말라고. 그 나머지는 내가 얼마든지 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 말이라도 이렇게 해줘야 아내가 용기를 갖고 다시 운전대를 잡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 사연을 몇 분에게 말씀드렸더니 어느 분은 자신의 아내가 처음으로 운전을 하고 나갔다가 경찰차를 뒤에서 박아버렸다고 합니다. 그 이후부터 그분의 아내는 지금까지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는 우스갯 소리도 들었습니다.


처음이란 늘 이렇게 서툴고 어색한 법입니다. 초보운전인 아내가 이 사고에 기 죽지 않고 다시 용기를 내서 운전대를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선배님의 부음을 들은 것이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빈소가 마련된 병원의 영안실에 도착해 조문을 하는데 수척해 있는 형수님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늘 밝은 모습이었는데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가 고인과 통화를 한 것은 불과 보름 전이었습니다.


늘 쾌활하고 목소리가 밝은 분이었는데 그날만은 달랐습니다. 힘이 없는 목소리로 괜찮다고 했고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찾아뵙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이번 주말에 찾아뵈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런 부음을 들었고 그분의 마지막 모습을 뵙지 못했습니다.


한 달여 전에 찾아뵈었을 때는 오랜 항암 치료 때문에 머리가 다 빠지고 뼈만 앙상한 모습이었습니다. 줄레줄레 달린 주삿바늘도 그랬지만 퀭한 눈으로 천정을 바라보는 선배님의 눈빛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저리도 깊이 할까, 당사자 외에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절대 고독과 공포 속에서 그 선배님은 몇 개월을 버텼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분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암 선고를 받기 전까지 그분의 삶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습니다. 그리고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어디 서나 당당했고 재미있고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고 주변사람들이나 가족에게도 참 잘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랬던 분도 병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작아지고 초라해지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도 얼핏 보였습니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 지 않았음을 알고 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 만난 어느 중년 여인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얼마 전에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그 암을 일찍 발견해서 병을 잘 치료할 수 있었지만 그 경험을 한 다음부터는 지금까지 했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죽음이 남의 얘기였고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암 선고를 받은 뒤부터는 죽음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으면서 어쩌면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남은 가족을 생각하게 되고 남은 아이들을 생각하니 그것이 죽음보다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병원 신세를 지면서 그동안 남편이 진급을 못하는 것,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것, 돈 때문에 걱정하며 사는 것, 위층에서 조금 시끄럽게 하는 것, 이렇게 그동안 마음이 쓰던 많은 것들이 그리 중요한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불평보다는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아침마다 가족들의 밥을 해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말썽꾸러기 자녀들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남편이 곁에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심지어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는 것조차도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누구라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몇 달 전만 해도 그렇게 건강했던 선배가 이렇게 허망하게 갈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제가 아는 그 여인처럼 자신도 모르게 자신 안에 암 덩어리가 자라고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는 자신의 삶 앞에서 참으로 겸손해야 하겠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치고 어떤 사람도 ‘더 일했어야 했는데, 돈을 조금 더 모았어야 했는데,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갔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죽음을 앞에 둔 많은 사람들이 ’가족에게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다른 사람들을 좀 더 배려했어야 했는데, 더 많은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마음을 썼어야 했는데...‘하는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그 순간이 되면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더 많은 일을 하지 못한 것이나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사랑을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 후회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지금부터라도 더 많은 사랑을 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누군가 나를 조금 서운하게 한다 할지라도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가족에게, 내 동료에게, 내 친구에게, 그리고 나와 인연을 맺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따뜻한 마음을 주어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차분한 장맛비가 내리고 있는 금요일 오후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대원(大原)
박완규  올림





 오늘 사진은 김영완 작가님이

담아온 여수산단 야경과 포근한 묘도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