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의 관건은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 인정 여부였다. 박 전 대통령은 언론에서 거론된 삼성의 승계 작업을 인식했다 하더라도 이 부회장의 경우 언제 정유라에 대한 지원 사실을 알게 됐는지 재판부는 주로 정황으로 판단하고 있다. 인지 시점과 묵시적 청탁 시점 사이의 관계도 명확하지 않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청탁하고 뇌물을 공여했다기보다 박 전 대통령의 적극적인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이라고 밝혔다. 묵시적 청탁도 청탁이니만큼 명시적 청탁만큼은 아닐지라도 뇌물 요구를 받은 측의 적극성이 어느 정도는 요구된다. 그러나 삼성 승계 작업이 정말 중요하고, 이를 위해 승마 지원이 필요한 일이었다면 훨씬 능동적으로 나섰을 텐데도 이 부회장은 승마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아 박 전 대통령의 질책을 받았다. 게다가 이 부회장이 세 차례 대통령과 독대할 때 경영권 승계에 대해 구체적인 청탁을 한 적이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특검과 삼성 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의사를 밝혔다. 항소심에서 어떤 판단이 내려질지 주목된다.
재판부는 특검이 기소한 449억 원 중 정유라 승마 지원금 등 89억 원만을 뇌물로 인정했다. 삼성의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220억 원은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근거로 제시한 안종범 전 청와대경제수석의 업무수첩, 대통령 말씀자료 등의 증거력을 모두 부인했다. 특검 기소에 무리한 면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은 여론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정치적 사법 절차라지만 탄핵 이후의 형사 절차는 훨씬 더 엄격해야 한다. 재판부의 판단은 뇌물죄에 대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으로서 존중해야 하나 아직 항소심과 상고심이 남아 있다. 상급심에서 더 엄밀한 법리에 의한 판단이 이뤄져 ‘글로벌 대기업에 대한 세기의 재판’에 걸맞은 판결이 내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