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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범죄 책임능력과 정치적 권리 보장 / 정용주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9. 26. 01:22

[세상 읽기] 범죄 책임능력과 정치적 권리 보장 / 정용주

등록 :2017-09-25 18:13수정 :2017-09-25 19:05

 

정용주
염경초교 교사,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강릉 여중생 폭행 사건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소년법 개정이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청소년 범죄의 난폭함과 악랄함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소년법 폐지청원에 수십만명이 참여했고, 정치권에서도 소년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무 부처인 교육부에서는 유사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연말까지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했다.

청소년 범죄에 대한 대응 양상은 항상 두 가지 패턴을 반복해 왔다. 먼저 청소년 범죄가 흉포화, 지능화, 조직화, 저연령화되고 있다는 현실인식에서 소년법을 개정해 형사 미성년의 연령을 낮추자는 흐름이 있다. 다른 하나는 단순 처벌 강화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적 조치를 통한 청소년 범죄의 예방과 교화 같은 비응보적 대책이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는 흐름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인권, 합당한 처벌, 가해 청소년의 사회 복귀라는 면에서 두 흐름은 함께 가야 한다.

특히 이번에는 형사 미성년 연령을 낮추는 것이 논란이 됐다. 현행 형법은 14살 미만 미성년자는 지적·도덕적·성격적 발육상태와 별개로 변별능력과 행동통제능력이 부족하다는 전제하에 형사책임 능력을 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책임능력 차이를 이유로 성인범과 소년범의 처벌 수위를 다르게 설정하는 세계적 흐름을 받아들여,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이 규정을 도입했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교육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형사 미성년자의 연령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입법정책의 문제인 것이다. 달리 말해, 형사 미성년의 절대적 연령은 존재하지 않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연령 조정은 가능하다.

1953년 이후 반세기가 넘게 흘렀다. 그 기간 동안 한국 사회는 복잡다단해졌고, 청소년의 정신적·신체적 성숙도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달라졌다. 청소년 범죄가 갈수록 저연령화되면서 형사처벌 연령을 낮추고, 청소년 강력범죄에 대해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미 형사처벌 연령을 낮춘 나라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런데 청소년들이 정신적·신체적으로 성숙해졌다는 것은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형사사건에 대한 책임능력뿐만 아니라, 자기결정권과 정치적 능력도 동시에 성숙해졌다는 의미다. 달리 말해 청소년이 성숙해 형벌에서 성인과 동등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면 민주주의에서도 핵심인 선거권을 포함해 다양한 정치참여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더 나아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성인과 동등한 자유와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청소년에게도 무거운 범죄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선거권의 하향 조정, 성적 자기결정권을 포함한 학생인권의 문제에 대해선 거꾸로 말한다. 변별능력과 행동통제능력 등 책임능력의 미비를 이유로 현행 선거연령을 유지하거나 성적 자기결정, 사회참여 연령을 오히려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이들은 청소년을 형사범죄 영역에서는 성인과 같이 인정하지만, 정치적 권리와 성적 자기결정권에서는 어린아이 취급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년법 개정 논란은 단순히 형사책임 무능력 연령을 그대로 둘 것인가, 하향 조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책임을 부과하는 만큼, 청소년의 참정권과 자기결정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논의로 이어져야 하는 의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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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2462.html?_fr=mt5#csidx35f4ebb191a2541b232b8b0543cdc5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