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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김이택 칼럼] 그래서 가랑이 밑을 기어야 했나 / 한겨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9. 26. 01:45

[김이택 칼럼] 그래서 가랑이 밑을 기어야 했나

등록 :2017-09-25 18:25수정 :2017-09-25 22:54

 

김이택


트럼프의 ‘전면 파괴’ 발언에 김정은이 ‘불로 다스릴 것’이라고 맞받더니 말폭탄 대결이 무력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미 공군 전략폭격기(B-1B)가 사상 처음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공해상으로 위협 비행에 나섰다. 북의 반격을 앞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다. 이대로 가다 무슨 일 나는 게 아니냐고 걱정들 하지만 해법은 엇갈린다. 아니 누구도 자신하지 못한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객관적 상황부터 정리해보자. 북의 핵탄두는 10~60개로 추정되지만 실전 배치까지 가능한 단계는 아직 아니다. 그러나 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보 시간 등을 고려해도 최종 배치까지 길어야 1~2년 남았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시간이 없는데 트럼프 정부는 기약없는 ‘최고의 압박’에 매달린다. 미 의회에선 지역구민들의 성화에 무관심하던 의원들까지 조사국(CRS)에 북핵 자료 주문을 쏟아내고 있다고 한다. 의회 전문가들은 해상봉쇄 등 준군사적 옵션은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의 제재에 발맞추면서도 베를린 선언에 이어 유엔 연설에서도 대화 불씨를 살리려 애쓰는 모양새다. 그러나 사드 전격 배치나 한·미·일 안보·방위 협력 선언은 ‘한·미·일 대 중·러’ 대결 구도를 굳혀놓았다. 미국에 바짝 붙어 서는 바람에 국면을 타개할 지렛대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해법은 무엇인가. 제재가 북핵을 포기시킬 것으로 보는 이는 드물다. 북한과 접촉해봤거나 북 사정에 정통한 한·미의 전문가들일수록 강도 높은 제재는 더 센 도발을 부를 뿐이라고 진단한다. 국내 일각에선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강력하다. 그러나 애초 전술핵 철수가 미-소 협상에서 이뤄졌듯이 재배치도 핵강국 러시아 변수가 우선 고려 사항이다. 미 정부는 생각도 않고 있고 당장 배치 가능한 전술핵도 없다는 게 미 조야의 공통된 분석이다. 선제타격도 90년대 얘기일 뿐 흩어진 핵을 단기간에 모두 찾아내 파괴한다는 보장도 없는 지금은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해상봉쇄 등 준군사적 옵션 역시 자칫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어 함부로 쓰기 힘들다.

북핵 문제를 잘 아는 전문가일수록 ‘대화와 협상으로 풀 수밖에 없다’며, 지금의 무력시위도 결국 유리한 협상 고지를 선점하려는 힘겨루기 측면이 짙다고 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북의 핵능력이 고도화하고 그에 반비례해 상대방의 협상력이 약화한다는 건 상식이다. 비핵화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든다.

지금 상황에선 우선 북의 핵능력을 조금이라도 빨리 동결시키는 게 최우선 과제다. 이 대목에서 아쉬운 게 문정인 대통령 특보의 ‘북 핵·미사일 시험 중단과 한-미 군사훈련 축소’ 맞교환 카드다. 지난 6월 방미 길에 거론했으나 청와대의 부인과 보수진영의 과도한 공세로 유효한 카드 하나가 사라졌다.

전격적인 사드 배치 강행은 아직도 의문이다. 왜 그랬을까. 그 배경에 “주한미군을 빼겠다”는 트럼프의 ‘협박’이 있었다는 얘기가 유력하게 나돈다. 사드 전격 배치와 최첨단 무기 구입 표명에 이어, 트럼프의 ‘완전 파괴’ 망발에까지 맞장구쳐주며 가랑이 밑을 기어야 하는 사정이 그것이라면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

김정은과 트럼프
김정은과 트럼프
  
트럼프가 김정은을 미치광이(mad man)라 비난했지만 그 자신도 남 탓할 처지가 못 된다. 이들에게 한반도 운전대를 내주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23일 밤 미 전략폭격기 단독비행 사건은 그런 우려를 확인시켜주는 사례다. 당장 급한 북 핵·미사일 동결을 위해선 문정인식 해법이 더 설득력 있다. 그런데 국내외 여론 지형은 ‘대화론’이 발붙일 틈새가 없다. 심각한 문제다. 국민들부터 진실을 알아야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온다.

문 대통령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최근 방미 길에 만난 미국 정부 인사의 말은 단서를 제공한다. 북핵 담당 관계자는 “한국에서 일어난 성과를 생각하면 목이 메고… 민주적 과정을 지켜내고 문재인을 당선되게 한 저력에 숙연해진다”며 “내가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인간인 것이 자랑스러웠을 정도였다”고 촛불시위를 극찬했다. 문 대통령도 세계시민상을 받고는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대통령”임을 재확인했다. 여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촛불시위는 트럼프도 무시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위대한 성과다. 모든 상황과 대안을 촛불시민들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거기서 대화·협상의 계기를 찾자. 집단지성의 지혜를 모아 ‘촛불정부’다운 방식으로 풀자.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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