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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이시구로의 예술적 양분, 과학 그리고 음악 / 한겨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0. 7. 05:27

노벨문학상 이시구로의 예술적 양분, 과학 그리고 음악

등록 :2017-10-05 22:18수정 :2017-10-06 11:08

 

5세때 이민 일본계 영국인…도스토옙스키 영향
‘남아 있는 나날’ ‘나를 보내지 마’ 등 대표작
대부분 1인칭 시점 자신의 얘기 들려주는 형식
고은, 수상 확률 4위였으나 올해도 비껴가

가즈오 이시구로
가즈오 이시구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는 1954년생, 일본계 영국 작가다. 국내에도 <남아 있는 나날> <나를 보내지 마> <우리가 고아였을 때> 같은 그의 대표작들이 번역 출간되어 있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 때문인지 노벨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는 않았다.

대부분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는 이시구로의 소설은 절제된 표현으로 화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는데, 그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자신의 과오가 은연중에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는 연민을 느끼는 한편 그의 처지에 공감하게 되기도 한다. 이시구로는 도스토옙스키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별다른 친연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시구로는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1960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켄트대학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첫 장편 <창백한 언덕 풍경>을 펴내면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첫 소설과 두번째 소설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가>(1986)에서 2차대전이 끝난 지 몇해 뒤의 일본을 배경으로 삼아 전쟁과 그 결과를 둘러싼 신구 세대의 갈등과 윤리의식을 다루었다
.

이시구로는 불과 다섯살 나이에 일본을 떠났고 그로부터 거의 30년 뒤인 1989년에야 다시 일본을 방문했기 때문에 이 작품들에서 그려진 일본의 모습은 거의 전적으로 상상에 힘입은 것이었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와 인터뷰에서 이시구로는 이와 관련해 “저는 제가 매우 강한 감정적 끈을 지닌 이 다른 나라(=일본)에 관해 매우 강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지니고 있었고 (…) 영국에서도 이렇게 상상한 일본에 관한 그림을 항상 그리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영국 귀족의 장원을 자신의 세상 전부로 여기고 살아온 한 남자의 인생과 가치관의 대혼란이 나타난 1930년대 영국의 격동기를 묘사한 소설 <남아 있는 나날>(1989)은 그에게 맨부커상을 안겨주었으며 앤서니 홉킨스와 에마 톰슨 주연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2005년작인 <나를 보내지 마>에서 이시구로는 에스에프 형식을 시도했다. 이 소설은 1990년대 후반 영국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된 클론(복제인간)들의 사랑과 성, 슬픈 운명을 그려 주목받았으며 <타임>이 선정한 ‘100대 영문 소설’에 들기도 했다. 이 소설 제목 ‘네버 렛 미 고’(Never Let Me Go)는 팝송 제목으로, 이 노래가 수록된 카세트테이프는 소설에서 인간과 클론을 구분하게 해주는 장치이자 세 주인공의 우정과 미묘한 사랑을 전달하는 모티브이기도 하다. 이 소설과 함께 유명 피아니스트를 주인공 삼은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1995)에서도 음악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지만, 연작 단편집 <녹턴>(2009)은 본격적으로 음악을 매개로 인간 삶의 본질을 들여다본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또 소설 말고도 영화와 텔레비전 각본을 썼으며 특히 재즈 가수 스테이시 켄트의 노래 가사를 쓰기도 했는데, 가사 쓰기가 자신의 소설 창작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내에는 이 작품들과 함께 <우리가 고아였을 때>(2000) <파묻힌 거인>(2015) 등 그의 대표작 대부분이 번역 출간되어 있다.

2015년 논픽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 이어 지난해 팝 가수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해 크고 작은 논란을 낳았던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가즈오 이시구로를 수상자로 선택한 것은 ‘전통적인 의미의 문학’으로의 복귀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영국 도박 사이트 래드브로크스의 베팅에서 응구기 와 티옹오, 무라카미 하루키, 마거릿 애트우드에 이어 수상 확률 4위에까지 올랐던 고은 시인은 올해도 수상에 실패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13501.html?_fr=mt2#csidx00257cf019bfa26aefc62d3d833a6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