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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7. 10. 13. 금요일 [생사를 건 교회개혁 읽기 (8)]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0. 16. 01:59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7. 10. 13. 금요일


생사를 건 교회개혁 읽기 (8)


'목사와 장로들의 교회',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

(91
년도 동안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교회가 거래하는 은행의 지점장이 인사를 왔다. 그 이후로 이 지점장은 일 년에 최소한 몇 번은 정기적으로 인사를 왔다. 작은 선물 하나라도 챙겨 들고. 지나가다 들렀다고 했지만, 나도 다 알았다. VIP 고객관리라는 거.

교회건축 때 대출을 받았다. 대출서류에 내가 교회의 대표로 도장을 찍고 서명을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은행으로 가려고 했더니 지점장이 오지 못하게 하였다. 과장과 차장 둘을 내 사무실로 보내어 내 사무실에서 받아갔다. 내가 미안해서 책상에서 내려와 소파에 앉아 서로 마주보며 싸인하려고 했는데 그 과장과 차장은 내 책상 옆에 서서 부하 직원이 결제 받아 가듯 싸인을 받아갔다.

그 때 동안교회 장년 출석이 약 2,000명 정도 될 때였다. 교회 사이즈가 그만큼만 되어도 그런 대접을 받았다. 목사가 그런 대접을 받으면 그런 교회를 섬기는(아니 섬긴다고 하는) 장로들도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이곳 저곳에서 받을 수 있다. 이것은 교회의 목사, 장로가 인간적으로 그리고 세상적으로 받을 수 있는 대접과 대우의 극히 작은 한 예에 불과하다.

교회 사이즈가 그 보다 더 커지면 그런 세상적인 매력은 몇 곱절로 상승한다. 그래서 아마도 대형교회 목사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세습을 시키는가보다.

교회에는 남자 교인들보다 여자 교인들의 수가 더 많다. 왜 그럴까? 아마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이유도 있고 부정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부정적인 이유 하나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한국은 아직도 남녀가 평등하지 못하다. 옛날엔 더 했다. 100년 전 쯤만 해도 이름도 없었다. 이씨, 박씨, 수원 댁으로 불리웠고 실제로 교회 교적부에도 그렇게 기록된 경우가 많았다.

요즘엔 여자도 다 이름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아직도 대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우지 않는다. 누구 딸, 누구 아내, 누구 엄마, 누구 할머니로 불린다. 여자들이 좋아하는데 남자들은 좋아하지 않는 호칭이 있다. 그것은 사모님이라는 호칭이다. 사모님이란 잘난 남편의 아내를 부를 때 쓰는 말이다. 남자는 잘난 아내의 남편으로 소개 받는 것을, 불림 받는 것을 본능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교회는 여자를 여자의 이름으로 불러주고 인정해 준 선진 조직이다. 이름만 불러줄 뿐 아니라 공적인 일을 맡기고 거기에 합당한 직분까지 주었다. 권찰님, 집사님, 권사님 그리고 최근에 어떤 교단에서는 장로님까지. 그리고 여전도회 임원, 회장까지. 교회는 아직까지도 여자분들의 사회적인 욕구충족을 세상에서 가장 잘 채워주는 흔치 않은 조직이다. 이 맛에 잘못 빠지면 여자들은 복음 없이도 교회를 위하여 순교(?)할 수 있다. 그리고 교회는(목사는) 여자들의 이런 심리를 얼마나 잘 이용하고 활용하는지 모른다.

이런 면에서 남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세상 좋아졌다고 하지만, 세상은, 사회는 여전히 사회적 신분이 존재한다. 젊어서는 신분상승의 기회가 바늘구멍처럼 좁긴 해도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가 지나면 거의 굳어져 고착된다. 세상은 무서운 계급사회다.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가 그래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교회는 신분상승의 기회가 세상 보다는 쉽고 빠르다. 학벌이 좀 낮아도, 세상적인 지위가 좀 낮아도, 좀 가난해도 교회 봉사 열심히하고 새벽기도회 빠지지 않고 하면 장로가 될 확률이 높다. 장로가 되면 작든 크든 세상에서는 쉽게 누려보지 못한 권한과 권력을 위임받게 된다. 여기에 빠져들게 되면 교회는 신앙적인 순수성을 잃어 버리게 된다. 다 라고는 할 수 없지만 거의 다 라고 할만큼 요즘 우리 한국
교회는 이런 소위 '예수 믿는 딴 재미'에 빠져있다.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한국 교회는 교회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하나님만이 주인이 되시고 교인은 목사든, 장로든 철저히 하나님만을 섬기는 종이 되는 그런 교회로 돌아가야만 한다. 목사의 역할과 장로의 역할이 정확히 구별되는 자리로 돌아가야만 하고, 주도권 쟁탈전이 벌어지지 않는 순수한 교회로 돌아가야만 한다.

이런 회정(回程)은 설교와 교육을 통하여 이루어져야만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본래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의 이권과 기득권을 본능적으로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개혁을 이루려면 설교, 교육과 함께 제도개혁을 병행해야만 한다.

(2001
년 높은 뜻 숭의교회를 시작하면서 목사와 장로(권사, 안수집사)의 권한이 극대화되고 영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를 만들고 그것을 정관에 명시하였다.

그것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의 정년을 65세로 한다.
둘째, 원로제도를 두지 않는다.
셋째, 담임목사는 6년마다 재신임을 받아야만 한다.
넷째, 장로, 안수집사, 권사의 임기를 6년 단임으로 한다.

요즘 같았으면 아마 담임목사 세습금지 조항도 넣었을 것이다. 인간의 정관과 제도는 완벽하지 않다. 우리 높은 뜻 교회의 제도와 정관이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 높은 뜻 교회의 정관과 제도의 이유와 목적은 사람이 주인 노릇하기 불편하게 하기 위함에 있다. 불가능하게 함에 있다.)

인간적인 야망과 욕심을 지키기 위해 잘못된 의식과 제도 그리고 직위를 보수하려고 하지 말고 과감하게 낡은 의식과 제도를 개혁하자. 인간적인 욕심을 위해 만든 자리들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고 교회를 교회답게 지키며, 형식(부대)가 아니라 진리(포도주)를 보수하는데 헌신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이라고 확신한다.

(
생사를 건 교회개혁 37페이지에서 부터 39페이지까지)


출처 : 삶과 신앙
글쓴이 : 스티그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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