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법원의 구속기한 연장 결정에 반발해 ‘정치투쟁’을 선언한 이후 첫 주말인 21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친박 단체들이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더 할 말이 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최순실은 답변 대신 펜을 잡았다. 조서 말미에 자필로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국민 여러분의 자존심과 국기를 문란시킨 데 대해 죽어서도 못 갚을 죄를 지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감히 용서를 해 주실지 모르겠지만 용서해 주시고, 나라사랑밖에 모르는 대통령님도 구제해 주시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죄스럽고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의 절벽에 서 있습니다. 꼭 국민 여러분들이 도와주시길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2016년 10월31일 벗겨진 신발을 그대로 두고 검찰청 엘리베이터를 탔던 최순실은 잠시나마 뾰족한 ‘마음의 절벽’을 맨발로 서성이기라도 한 모양이다. 정작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모든 일을 안 뛰어도 그만인 번지점프 정도로 생각하는 듯싶다.
1년 전 오늘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결국 입에 올려야 했다.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까지 사전에 받아보고 고쳤다는 사실이 알려진 다음날이었다. 생중계도 아닌 녹화한 1분30초짜리 대국민 사과 방송이 나간 뒤 외국 도피 중이던 최순실은 귀국했고 긴급체포됐다. 대통령 사과 닷새 전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 국정감사에 나와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며 “청와대에서 사실관계를 조사했는데 (대통령과 최순실이) 아는 사이는 맞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대통령의 거짓말이 워낙 커서 비서실장의 허위 답변을 문제삼기도 민망했다.
벌써 1년이다. 최순실이 뉘우치며 깎아 세웠다는 마음의 절벽은 곧장 허물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번지점프대가 너무 높다며 오르기를 거부하고 있다.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혀졌으면 한다”, “이 사건의 역사적 멍에와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다. 저로 인해 법정에 선 공직자들과 기업인들에게는 관용이 있기를 바란다”면서도 나는 죄가 없어 재판을 거부한단다. 무슨 수로 마침표를 찍고, 어떻게 관용을 베풀라는 건지 알 수 없다.
‘이제 인정할 건 합시다.’ 탄핵당한 대통령 옆구리를 툭 건드리는 정치적 넛지가 필요한 상황인데 유영하 변호사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눈 딱 감고 “아버지”를 외치며 사법적 번지를 하라고 조언해야 할 판에 유 변호사 본인부터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니 약도 없다.
최순실의 데스크톱 컴퓨터에서는 2013년 박근혜 정부 첫 국가정보원 고위직 인사 관련 파일이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의견을 들어보라’며 문고리 3인방 멤버인 정호성 당시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전달한 것이다. 유 변호사는 국내정보를 담당하는 2차장, 국정원 인사·조직·예산을 관장하는 기획조정실장 후보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10년도 못 채운 검사 경력의 그가 후보로 이름을 올리기 버거운 자리다. 박 전 대통령은 3명뿐인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에 유 변호사를 기어이 임명했다.
‘나를 위해서 눈물도 참아야 했던/ 그동안의 넌 얼마나 힘이 들었니/ 천년이 가도 난 너를 잊을 수 없어….’ 기자들에게 알려진 유 변호사 휴대전화 컬러링은 ‘천년의 사랑’이다. 유 변호사도, 자유한국당 친박도, 태극기부대도 이제 그만 박근혜를 놓아주자. 역사적 멍에, 책임의 무게란 것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는가. ‘소중했던 내 사람아 이젠 안녕/ … / 떠난다면 보내드리리/ 뜨겁게 뜨겁게 안녕….’ 새로운 컬러링으로 ‘뜨거운 안녕’을 권한다.
김남일 정치팀 기자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