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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종북몰이 ‘수석비서관회의’가 발원지였다 / 한겨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0. 29. 10:06

박근혜 정부 종북몰이 ‘수석비서관회의’가 발원지였다

등록 :2017-10-29 09:32수정 :2017-10-29 09:52

 

[토요판] 뉴스분석 왜?
‘박근혜 청와대’의 수석비서관회의
대통령비서실은 장관급인 비서실장과 정책실장, 8수석 2보좌관(차관급 10명) 체계(문재인 정부)로 운영된다. 이들이 모여 국정과 정책을 구상하고 논의하는 자리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기가 막히는 것들 중에 더 기막힌 것들만 모았다.

나라를 운영하는 청와대의 장차관급들이 모이면 어떤 얘기가 오갈까. ‘무언가 고차원적이고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내용이 논의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적어도 대통령 박근혜가 청와대에 근무하던 시절엔 그랬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은 모두 5명이었다. 허태열-김기춘-이병기-이원종-한광옥이 그들이다. 그들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 내용이 잇달아 공개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만 보면,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들은 ‘어떻게 하면 여론을 친정부 쪽으로 돌릴 수 있을지’, ‘방송을 어떻게 장악할지’, ‘종북 좌파들을 어떻게 척결할지’에 골몰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브이아이피(VIP)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지’를 고민했다.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해야 할 이들이 대통령의 심기만 보좌한 결과 권력자는 ‘농단’을 자행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농단의 씨앗이 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모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김기춘-이병기-이원종)이 지시한 사항들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한 김기춘(2013년 8월5일~2015년 2월22일).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한 김기춘(2013년 8월5일~2015년 2월22일).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청와대사진기자단
‘법비’ 김기춘
세월호 참사 뒤 대정부 비판을
“유언비어·국론분열 발언” 규정
“응징 방법 찾아, 끝까지 추적”
‘국제시장’ 언급…“애국영화 살려야”

2014년 3월12일
“각 수석실에서 대통령님께 보고자료를 올리면서 향후 정책적 대응이나 조치계획을 함께 보고드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처럼 일단 조치계획을 보고드렸다면 반드시 제대로 후속조치를 취해야 하며 결코 유야무야해선 안 된다. 소관부처를 포함한 각 수석실은 VIP 보고사항에 대해 점검 리스트를 만들어서라도 이행 상황을 빠짐없이 자체 점검하라.”

당연한 얘기지만,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재한 회의였으나 여기서 논의된 내용이 수석들을 통해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되었음을 뜻한다.

2014년 3월28일
“국민행복과 생활안전 지향 가치와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가치 간 균형이 필요한데도 집회·시위 자유만 지나치게 강조한 판결이다. 공직자든 법관이든 맡은 업무 수행을 균형감을 갖고 일해야 한다. 특히 비서실 직원들은 이를 타산지석 삼아 철저히 균형감을 갖추도록 노력하라.”

헌법재판소는 하루 전날(27일), 해가 진 뒤부터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야간 시위’를 전면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헌재 결정에 대해 ‘균형을 잃었다’며 비서실 직원들에게 이를 “타산지석 삼아 균형감을 갖추라”고 강조한다. 헌재의 결정을 타산지석 삼으라는 말은, ‘반헌법적’으로 업무를 하라는 뜻일까?

2014년 4월25일
사회관계망서비스나 인터넷에서 유언비어, 국론분열 발언, VIP 비방 등이 제기될 때는 일단 해당 사이트에서 즉각 내리도록 하는 조치와 함께 이를 응징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정정보도 청구, 끝까지 추적 처벌 등) 판단하여 처리할 것.”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했다. 잠수사들이 목숨을 걸고 구조작업을 벌일 때, 청와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4월23일)라고 밝히며 청와대 책임론을 부인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와 청와대를 향한 비난이 빗발칠 때, 청와대는 그런 목소리를 ‘응징’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2014년 8월8일
“지금과 같이 사실과 다르게 과장, 왜곡보도 하는 경우가 많은 언론 환경하에서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좋은 제도적 장치 중의 하나가 곧 방송통신심의위원회임. 정부 여당에 대한 부당한 과장, 왜곡, 명예훼손 보도 시에는 정부당국에서 일일이 지적하기에 앞서 건전한 시민단체 등이 홈페이지에 문제점을 적극 지적하는 등 방심위 기능을 적극 활용하도록 할 것.”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를 향한 비판을 “유언비어”라며 싸잡아 비난하고 여론을 제압하기 위한 청와대의 압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9월16일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청와대와 손발을 맞췄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홈페이지 게시판 등을 통해 민원이 제기되면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에 따라 제재조치를 할 수 있다. 정보통신 심의규정 10조 2항은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 침해와 관련된 정보는 당사자 또는 그 대리인이 심의를 신청해야 한다”였는데, 이 조항은 2015년 12월 규정이 개정되면서 삭제됐다. 명예훼손 심의를 제3자의 신고만으로도 가능하도록 규정을 바꾼 것.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2012년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활동했고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도 참여한 ‘뉴라이트’ 학자 박효종 전 서울대 교수였다.

2014년 12월28일
“영화 <변호인>은 투자를 받았다는데 <국제시장>이 투자자를 모으기 힘들었다고 한다. 두 사례를 비교하면 정부투자기금 지원에 문제가 많으므로 제도를 정비하고 앞으로 건전 애국영화가 널리 상영되도록 대응방안을 모색하라.”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한 이병기(2015년 3월1일~2016년 5월15일)씨.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한 이병기(2015년 3월1일~2016년 5월15일)씨.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청와대사진기자단
‘공작과 음모’ 이병기
리퍼트 피습에도 ‘공안몰이’ 골몰
백남기 농민 쓰러진 다음날
“경찰이 너무 방어적…색출·엄단”
“네이버 경영진도 설득시켜라”

2015년 3월7일
리퍼트 대사 피습사고 관련 차제에 이를 종북세력 척결 계기로 삼아 이러한 언론보도와 비판 여론이 조성되도록 할 것.”

2015년 3월9일
종북 생태계 척결 방안을 수립해 추진하라.”

2015년 3월6일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한-미 연합훈련 반대 등을 주장하는 김기종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에게 흉기로 피습당해 얼굴과 왼팔을 크게 다쳤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목적에서 이런 일을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철저히 밝히라”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검찰과 경찰은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공안몰이를 시작했다. 여당이던 새누리당은 이를 틈타 테러방지법의 처리와 사드 배치를 주장했다.

2015년 5월11일
“비판세력들의 대정부 비판 공세가 적극적이고 집요해지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대응해 나갈 것. 비판 세력들의 주된 활동 사이버공간이 네이버라면 그 경영진을 적극 설득, 순화시키는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

2015년 4월9일 자원외교 비리 의혹에 연루된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시신 수습 과정에서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된 유력 정치인에게 금품을 건넨 내용을 적은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발견돼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청와대와 정부를 향한 여론의 비판 수위가 정점에 이른 때였다. 정부는 세월호 1주기와 노동절을 맞아 열린 집회에 고압 물대포 등을 동원해 진압에 나서면서 대정부 비판 수위는 점점 고조되었다.

2015년 5월16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국가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노래. 노래의 편향성을 국민에게 알리는 데 노력하라.”

국가보훈처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나흘 앞둔 5월14일 “노래 제목과 가사 내용, 작사가 등의 행적으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계와 양립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식 제창 요구를 거부했다. 5·18 유가족 및 피해 당사자들은 정부가 주최한 기념식을 거부하고 별도의 기념식을 열었다.

2015년 9월30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성공하려면 국민을 설득하고 비판세력을 제어해야 한다.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려면 KBS, EBS 등의 매체를 활용하라.”

전국언론노동조합 케이비에스(KBS)본부 ‘파업뉴스’팀이 지난 10월11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이후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케이비에스> ‘뉴스9’ 보도는 2015년 9월 기준 2건에서 10월엔 36건으로 급증했다. 파업뉴스팀은 “당시 정부 입장을 충실히 보도한 반면, 국정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는 거부당했다”고 전했다.

2015년 11월15일
“경찰 대응이 너무 방어적. 범법 행위자를 철저히 색출해 엄단하라.”

2015년 11월14일 ‘1차 민중총궐기’ 시위에서 백남기 농민이 차벽을 뚫기 위해 다른 집회 참가자들과 버스에 묶인 밧줄을 잡아당기던 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경찰은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뒤에도 그를 향해 조준사격을 했고 뇌출혈로 쓰러진 백남기 농민은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2016년 9월25일 숨을 거뒀다. 집회 참가자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의식불명에 이르렀는데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를 “너무 방어적”이라며 공안몰이를 주문했다.

2015년 12월18일
“박원순 시장이 광복 7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추진중인 ‘광화문광장 태극기 게양대 설치사업’을 적극 반대하고 있다고 하는데,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의 이러한 행태가 언론을 통해 잘 부각되어 국민적 비판이 모아지도록 할 것.”

국가보훈처는 광복 70주년인 2015년을 맞아 광화문광장 한복판, 세종대왕 동상 바로 뒤쪽에 높이 45m의 태극기 게양대를 영구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서울시는 경복궁과 광화문 등의 문화재 경관과 어울리지 않고 영구 설치를 하는 건 국민 정서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며 ‘제한적 설치’를 주장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의 이러한 지시 사흘 뒤인 12월21일 보훈처는 ‘불쑥’ “서울시 반대로 광화문광장 태극기 설치가 무산됐다”고 밝혔고, 바른사회시민연대,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들은 연이어 ‘태극기 게양 거부하는 서울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에 맞춰 보수언론들은 ‘세월호 광장은 허용하고 태극기는 불허하는 박원순’이란 프레임으로 종북몰이에 나섰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한 이원종(2016년 5월16일~2016년 10월30일)씨.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한 이원종(2016년 5월16일~2016년 10월30일)씨.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청와대사진기자단
‘딸랑딸랑’ 이원종
‘하얼빈 감옥’ 박근혜 경축사에
“파격적인 희망 메시지 제시
세련된 스피치 역량 더해져”
자화자찬…순방성과 홍보에 총력

2016년 5월27일
“아프리카와 시차 문제도 있고 G7 정상회담도 열리고 있어, 아프리카 순방 성과에 대한 보도 비중이 생각보다 낮고 가끔은 비판성 기사도 나와 아쉽고 유감임. 보다 적극적인 순방 성과 홍보로 비판성 기사도 제어하고, 순방 성과 보도 비중도 높아질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 필요.”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5월25일부터 6월2일까지 에티오피아·우간다·케냐 등 아프리카 3개국과 프랑스를 국빈방문했다. 정부는 아프리카 순방을 계기로 ‘새로운 한국형 개발협력 모델’이라며 ‘코리아 에이드’(Korea Aid) 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구호만 거창할 뿐 이동식 차량에 의료기기, 음식, 영상장비 등을 싣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었다. 정부는 이 사업을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성과로 꼽았지만, 개발협력 단체들은 “한국 자랑하기 쇼일 뿐 원조가 아니다”라며 폐기를 촉구했다.

2016년 8월16일
“어제 광복절 경축사는 파격적인 희망메시지 제시, ‘긍정의 힘’ 강조와 ‘함께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고취로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여론.(대통령님의 세련된 스피치 역량이 더해져 진정어린 박수가 가장 많은 행사였다는 참석자들의 전언) 안중근 의사 순국지 관련 논란은 홍보수석의 발빠른 대처로 큰 무리 없이 넘어갔는데 추후에도 악용되지 않도록 지속 모니터링할 것.”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함께 가는 공동체’ 의식으로 함께 노력하면 우리는 할 수 있다”며 자긍심 고취를 호소했다. ‘할 수 있다’ ‘자신감’ ‘공동체 의식’ ‘자긍심’ 등 좋은 뜻의 말들을 남발했지만, 정작 국민들이 왜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는지에 대한 진단과 성찰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야당은 “한강의 기적과 새마을운동 등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회상시킨다”고 혹평했다.

박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세련된 스피치 역량’으로 “안중근 의사께서는 차디찬 하얼빈의 감옥에서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하얼빈역에서 일제의 조선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고 체포돼 중국 뤼순 감옥으로 옮겨져 이듬해 3월 숨졌다. 축사를 여러 차례 검토했을 박 대통령과 연설기록비서관 등 참모들이 역사적 사실인 ‘뤼순 순국’을 틀린 셈이다. 경축사가 나가고 이를 지적하는 기사들이 쏟아졌고, 에스엔에스 등에선 “‘바쁜 벌꿀’은 웃어넘겨도 이것은 웃어넘길 수 없다”는 등 비판과 풍자가 쏟아졌다. 청와대는 뒤늦게 “하얼빈 감옥이 아니라 뤼순 감옥”이라고 정정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16460.html?_fr=mt1#csidxaeecbe4b77e5a6caff374e3b684faa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