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대학만큼 내부에 신분상의 구분이 많은 곳도 없다. 위로는 교육부와 재단, 대학본부가 있다면, 중간에 복잡한 내부 위계를 지닌 정규직 교수 집단과 행정 직원이 있고, 아래쪽으로 온갖 명칭의 비정규직 교수, 조교, 학생이 있는 곳이 대학이다.
이달 초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한 시정연설에서 반가운 발언을 했다. 20년 전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만들어진 “사회경제구조가 국민의 삶을 무너뜨린” 것을 인정하고, 이제 국가의 역할을 바로잡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다. 그동안 국민의 삶이 무너진 것은 승자 독식의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한 결과다. 대통령의 발언은 그런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막겠다는 취지로 들려 반갑지만, 선뜻 믿음이 가지는 않는다. 말의 성찬에 따른 내실 있는 변화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 저 아래에서 들려오는 정부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크다. 대학에서도 그런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대학이 어떻게 사회 아래쪽에 속하느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대학만큼 신자유주의의 지배로 말미암아 적폐가 많이 쌓인 곳도 없다. 대학은 그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각하고 가장 비민주적인 제도로 전락했다. 신자유주의적 대학정책으로 이런 상황이 되었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그런 대학정책을 중단시키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한국의 대학은 이제 대학다운 면모를 깡그리 잃었다. 캠퍼스를 보면 새로 지은 건물의 모습이 화려하지만, 속은 가관이다. 대학은 공적 영역이라기보다는 기업과 시장에 더 가깝다. 학문과 교육의 수장이어야 할 총장은 ‘최고경영자’(CEO)로 둔갑했고, 교원은 교육 ‘상품’의 공급자로, 학생은 그 소비자로 전락했다. 대학은 이제 회사처럼 운영된다. 대학의 목표는 경쟁 논리에 따라 설정되고, 주요 결정은 비용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며, 학내 민주주의는 늘 외면당한다. 대학이 대학다운 모습을 잃게 되면서 대학의 주체, 특히 교원과 학생의 모습이 참담해졌다.
요즘은 학생이 학업에 열중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봐야 한다. 노동을 해야 하는 학생이 너무 많아졌다. 과거에도 학비와 생계비를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 있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는 일주일에 한두 번, 그것도 두세 시간 정도 하면 되는 것이라 학업에 큰 지장을 준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학생들은 ‘알바’를 해야 한다. ‘알바’하는 학생은 사실상 노동자다. 문제는 학업과 병행할 수 없을 만큼 노동강도가 센데도 알바를 해야만 하는 학생 수가 갈수록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의 지배를 받게 된 결과다. 문재인 정부는 학생의 노동자화가 심화되는 이런 상황을 막을 어떤 정책을 구상하고 있는가?
교원 쪽으로 눈을 돌려도 참담한 것은 마찬가지다. 시도 때도 없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실시되면서 대학의 정규직 비율이 너무 낮아졌다. 교수의 경우 자리가 너무 적을뿐더러, 다행히 자리를 얻는다 해도 교육자와 연구자로서의 자긍심은 이제 사치가 되었다. 의무적 강의 시수와 논문 편수로 교육과 학문을 소명으로 삼는 일도 거의 불가능하다. 정규직 교수가 이럴진대 비정규직 교수의 사정은 말할 필요가 없다. 비정규직 연구교수로 임명하면서 연간 의무 논문 편수를 4편 이상 요구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문제는 연구자를 논문 쓰는 기계로 만드는 이런 풍조를 교육부가 조장한다는 것이다. 시간강사의 경우는 더욱 처절하다. 엄연한 고등교육 교육자인데도 시간강사는 법적으로 교원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 대학이 이런 상태이지만 문재인 정부는 아직 대학 개혁의 청사진을 내놓지 않았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곳은 대학일 것이다. 대학만큼 내부에 신분상의 구분이 많은 곳도 없다. 위로는 교육부와 재단, 대학본부가 있다면, 중간에 복잡한 내부 위계를 지닌 정규직 교수 집단과 행정 직원이 있고, 아래쪽으로 온갖 명칭의 비정규직 교수, 조교, 학생이 있는 곳이 대학이다. 신분과 지위, 역할이 다른 구성원들이 함께 있는 곳인 만큼 민주주의가 가장 필요한 곳이지만 대학만큼 권리와 권한이 차등 지고 ‘갑질’이 횡행하는 곳도 없다.
대학의 이런 상황은 대학의 주체들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신자유주의 대학정책의 책임이 가장 크다. 사회의 발전을 위해 대학을 대학답게 만들어야 한다면 대학정책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려면 제대로 된 대학정책은 필수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말의 성찬만 펼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사회개혁을 이루어야 하고, 그러려면 대학정책도 제대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