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제·박성호·이용마·정영하·강지웅 등 6명
2012년 해직 2000여일 만에 11일 첫 출근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는 기분”
2012년 해직 2000여일 만에 11일 첫 출근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는 기분”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 1층 로비에서 복직자 환영 행사가 열렸다. 왼쪽부터 정영하, 최승호, 이용마, 강지웅, 박성제, 박성호.
“엠비시 뉴스 이용맙니다.”
7년 만이었다.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MBC) 사옥 7층 보도센터에서 이용마 기자가 마이크를 쥐고 문화방송 이엔지 카메라를 바라보며 바이라인(뉴스 리포트 끝에 붙이는 기자 이름)을 말했다. 보도국 구성원들이 마련한 환영 행사에서 복직 소감을 말한 뒤다.
“드디어, 상암 엠비시에 복직자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허일후 아나운서) 이날, 문화방송 사옥 앞 광장 곳곳에 재회와 기다림을 상징하는 노란 손수건이 나붙었다. 문화방송 구성원들이 5년6~10개월여 만에 출근하는 ‘복직자들’을 위해 준비했다. 오전 8시35분께 복직자들이 레드카펫을 밟고 문화방송 사옥 1층 로비로 들어서자 박수와 함성이 노란 꽃가루와 함께 사옥을 가득 채웠다. 구성원 600여명이 이들의 첫 출근길을 축하하러 모였다. 지난 7일 문화방송 새 사장으로 선임된 최승호 피디는 8일 먼저 첫 출근을 시작했지만, 다른 복직자들과 함께 행사에 참여했다. 암 투병 중인 이용마 기자도 최 신임 사장이 제공한 회사 차량을 이용해 환영 행사에 참여했다.
복직자들은 지난 2012년 김재철 당시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170일 파업’ 과정에서 부당 해고된 언론인 6명이다. 2012년 파업 돌입 초반에 당시 노조 집행부로서 파업을 이끌었던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기술감독), 강지웅 전 노조 사무처장(피디), 이용마 전 노조 홍보국장(기자), 기자들의 제작 거부를 이끌었던 박성호 전 문화방송 기자협회장(기자)이 먼저 해고됐다. 뒤이은 2012년 6월, 백종문 전 문화방송 부사장이 “이유 없이 해고했다”고 발언한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던 최승호 피디, 박성제 기자도 해고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12년 문화방송 파업 당시 해직됐다 복직된 이용마 기자, 최승호 사장 등이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본사로 다시 출근해 새로 받은 출입증을 들고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행사의 첫 순서는 ‘사원증’ 전달식. 해직자들은 그동안 문화방송 사옥에 들어가려면 ‘출입(방문) 신청서’를 작성하고 일회용 ‘방문증’을 이용해야만 했는데, 이제 사원증을 출입증으로 사용하며 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 복직자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눈물을 참으려 애쓰거나, 구성원들의 얼굴을 하나씩 둘러봤다. 이들은 입을 모아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준 문화방송 구성원과 국민께 감사하다”, “앞으로 문화방송 재건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오전 9시10분께 전체 구성원 환영 행사를 마친 이용마·박성제·박성호 기자는 보도국에서 따로 마련한 환영 행사에 참여했다. 이용마 기자는 보도국과 주조정실, 뉴스 스튜디오 등을 둘러보고 10시께 자택으로 돌아갔으며, 나머지 복직자들은 제 자리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아래는 복직자들의 소감 전문이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
“고마워요. 조금만 생각하면 울먹울먹해서, 자꾸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말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주 금요일부터 계속 그랬어요. ‘해직 막내’(6명 가운데 제일 늦게 해고된 최승호 사장을 지칭)가 큰일을 했습니다. 저희를 복직시키고, 엠비시를 재건하기 위해서, 국민의 품으로 돌리기 위해서 이렇게 나란히 서게 해줬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해서 너무 좋고요. 6명이 온전히 같이 서 있게 돼서 너무 기쁩니다. 걱정도 많고 염려도 많았는데, 그동안은 내색하기 힘들었고 다 잘 될 거라고 얘기하기도 했지만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까지 잘 온건 혼자가 아니고 여기까지 와서 반겨준 동료들이 있어서였습니다. 지난 5년 동안 받기만 했는데 이제 갚겠습니다. 반갑습니다.”
△강지웅 전 사무처장
“제 원래 직종이 피디다 보니,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여전히 익숙하지 않습니다. 레드카펫 지나오면서 아이돌과 스타들이 이런 기분이구나 했는데 충격적이었고 정신줄을 놓을 뻔 했습니다. (웃음) 거두절미하고,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날이 올 거란 거 알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더 천기누설할 것은, 엠비시가 다시 예전처럼 좋은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고 이전보다 더 좋아질 거란 점입니다. 여기 사람들 나이 오십 넘어 정년 퇴임까지 십여년 남았는데 분골쇄신해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장 되도록 최선 다하겠습니다. 전세계에서 최고의 방송사가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박성제 기자
“어제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박성호 기자가 전화가 왔어요. ‘형, 싱숭생숭하지 않아?’ 우리가 꼭 개학 앞둔 초등학생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웃음) 지금부터 엠비시 지켜보시고 해직언론인들이 가서 제대로 하겠지, 이런 기대 많아서 부담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행복하게 보내고 내일부터 엠비시 재건 위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박성호 기자
“추운 날씨에 이렇게 따뜻하게 환영해줘서 고맙습니다. 5년10개월전에 처음 해고 될 때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약속 지켰습니다. 다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잘려나갔을 땐 혼자라고 생각할 때 있었는데, 여기 분들이 함께 해주셨고 우리 응원 지지해주신 시민 여러분과 함께 회사로 돌아온 느낌이 듭니다. 다른 말 생각 나지 않고, 집에 돌아와서 정말 좋습니다. 관심과 응원이 얼마나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하는지 제가 느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최승호 사장
“사실 무슨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고 심정입니다. 지난 9년 동안 엠비시 공동체가 받은 탄압의 정도는 세계언론사상 유례없을 정도의 강고한 탄압이었다고 봅니다. 그런 탄압에 우리 공동체는 끝까지 저항했고 힘을 합쳐 이 순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순간까지 정말 해직자들 다 지켜주시면서 서로 격려하면서 그 사람들의 회유를 이겨내면서 함께 지금까지 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췄습니다. 우리는 모두 정말 자랑스럽고 대한민국 사회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훌륭한 공동체입니다.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또 하나 잊어선 안 되는 건 우리 승리에 국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국민’, ‘시민’ 같은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왔습니다. 키워드를 항상 품고 방송으로서 우리 마음을 표출해서 마침내 엠비시가 대한민국 공영방송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만으로도 해피엔딩이고 영웅 드라마지만, 엠비시가 우뚝 서야 비로소 승리의 대하드라마가 완성될 것입니다. 함께 합시다.”
△이용마 기자
“2012년 3월에 해고되던 그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오늘이 올 것을 의심해본 적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정당당한 싸움을 했고 정의를 대변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꿈이 오늘 실현됐습니다.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 일인데 오늘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까 꿈같습니다.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 그런 꿈. 정말 다시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병상에서 물끄러미 벽 쳐다보는데, 그때 눈에 벽에 걸린 달력이 들어왔습니다. 올해의 끝을 장식하는 12월. 거기에 빨간 날 2개. 하나는 성탄절 하나는 원래의 대선일. 보는 순간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예정대로 다음 주에 대선을 한다면 우리 아직 멀었겠구나, 정말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그 어렵고 힘든 시절을 우리 함께 싸워서 이겨냈고 결국 이 자리에 우리가 모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잊지 맙시다.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서게 된 건 작년 엄동설한 무릅쓰고 나와준 촛불 시민들의 위대한 항쟁 그게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여기서 있을 수 있을까요. 아마 우리는 여전히 암담함, 패배감 속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촛불 시민들의 항쟁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뉴스, 시사, 교양, 드라마, 모든 프로에 그들의 목소리가 담길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합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2012년 170일 파업 때 기성 언론, 주류언론은 우리 문제 어떻게 다뤘나요.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파업 백일이 지나도 엠비시가 파업하는지 모르는 국민 상당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비통한 심정 하소연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억울한 목소리 아무리 외쳐대도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우리 주변에 많을 것입니다. 과거 우리 모습 상기하며 그들 목소리를 우리가 담아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언론이 비판과 감시하는 게 본연의 역할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약자 끊임없이 대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여러분 주변 돌아보십시오. 동료입니다. ‘39일 파업’, ‘170일 파업’, ‘72일 파업’ 무려 1년 가까이 길거리에서 함께 싸웠던 동지들이 우리 바로 옆에 있습니다. 엠비시 사상 집합적 지혜가 이렇게 위대하구나 이런 걸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나 하나 잘난 게 아니라 우리가 같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이런 꿈같은 현실이 영원히 지속하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