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법무부 손들어준 1심 판단 뒤집어
“부모만 면접은 규정 위배” 엄격한 기준 제시
“부모만 면접은 규정 위배” 엄격한 기준 제시
힌국이주여성인권센터, 노동인권회관, 이주공동행동 등이 지난 4일 낮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법무부 장기구금 외국인 강제송환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나이지리아 국적 ㄱ(44)은 2015년 2월 단기방문 체류자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온 뒤 두 자녀와 함께 난민신청을 했다. 기독교 신자란 이유로 현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위협을 받고 개종을 강요당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ㄱ을 한차례 면접한 끝에 “박해의 공포가 충분치 않다”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제는 미성년자(당시 3살, 1살)인 ㄱ의 두 자녀였다. 심사관은 유아 면접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서면심사만 했고, ㄱ을 면접할 때엔 자녀의 의사를 대신 확인하는 절차를 생략했다. 법원은 이런 과정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행정6부(재판장 이동원)는 ㄱ의 가족이 낸 난민 불인정 결정 취소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자녀들에 대한 직·간접 면접 없이 서류만으로 난민 인정을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법무부가 난민법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봤다. 난민법은 난민심사 때 면접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고, 거짓·중복신청이나 체류연장 목적 등의 경우에만 면접을 생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성년자의 신청은 면접 생략의 요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가족결합의 원칙’이 오용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난민협약 실무편람’엔 통상 ‘가장이 난민으로 인정되면 부양가족도 난민 지위가 인정된다’고 돼 있다. 재판부는 “이는 부모가 인정되면 미성년자녀에게 독자적 사유가 없어도 난민 지위를 부여하라는 의미”라며 “미성년자의 독자적 면접이 불필요하다는 취지가 아니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유엔(UN)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을 인용하며 미성년자녀의 진술권을 강조했다. 해당 협약엔 “아동은 사법·행정 절차에서 직접 혹은 대표자를 통해 진술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미성년 자녀 면접이 힘들면 부모를 통해 의사를 확인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난민 사건 경험이 많은 김종철 변호사는 “아동권리협약을 재판규범으로 삼는 경우는 드문데, 법원이 아동이 의사를 밝힐 권리를 다시 한 번 짚고 난민 인정 절차에 대한 통제를 강조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법원은 최근 난민 심사의 절차적 위법성에 제동을 거는 판단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지난 10월 서울행정법원은 졸속 면접 탓에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집트 국적자 판결에서 엉터리 통역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ㄱ 가족을 대리한 김호산 변호사는 “최근 난민 신청이 늘면서 신청자의 출신 배경도 다양해졌다. 법원도 난민심사에서 이런 다양성을 고려한 세밀한 절차적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고 짚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