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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없던, 미스터 모의 인생역작 / 한겨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2. 13. 18:05

특별할 것 없던, 미스터 모의 인생역작

등록 :2017-12-13 05:01수정 :2017-12-13 16:36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모임대형 감독 인터뷰-

채플린 같은 영화 만들러 떠난
중년 시절 이발사의 마지막 순간
흑백 화면에 따뜻한 시선 담아

평범한 소시민의 덤덤한 시선
기주봉 배우, 캐스팅 1순위
착한아날로그 감성 느껴주길

미스터 모의 생과 사는 신문이나 잡지의 대상이 못 된다/ () 결코 평범한 그의 죽음을 비극이라 부를 수 없었다/ 산산이 찢어진 불행과 결합된 생과 사의 고독의 존립을 피하며/ 미스터 모는 영원히 미소하는 심상을 손쉽게 잡을 수 있었다 박인환 <미스터 모의 생과 사>



독립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임대형 감독.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독립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임대형 감독.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 시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주인공 이름 모금산을 작명하고 시를 다시 찾아봤죠. 영화와 닿아 있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평범하고 고독한 한 사람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요.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개봉(14)을 앞두고 최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임대형(31) 감독은 박인환 시와의 관련성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어 영화는 시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정감 있는 작품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맞다. 영화는 제목만큼이나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온기 넘치는 작품이다.

중년 이발사 모금산(기주봉)의 삶은 단조롭다. 손님 머리를 다듬고, 수영을 배우며,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신다.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아들 스데반(오정환)은 영화감독이 되겠다며 서울로 갔다. 위암 진단을 받은 금산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어느날 그는 스데반과 그의 여자친구(고원희)에게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채플린의 무성 영화를 닮은 작품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셋은 크리스마스 상영을 목표로 촬영을 위한 여정을 떠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 무성 영화를 구상했어요. 작품 속 모금산이 만든 <사제폭탄을 삼킨 남자> 같은. 그 세계는 제게 흑백일 수밖에요. 처음 구상한 단편 <사제폭탄>에 살을 붙인 장편이 바로 이 영화예요.

모금산은 죽음 앞에서 오히려 생명력을 되찾는다. 수영장에서 만난 자영(전여빈)을 일상으로 초대하고, 젊은 날 꿈꿨던 영화도 삶 속으로 다시 불러들인다. 평범하지만 빛나게 마지막을 마무리하고픈 모금산이 설득력을 얻는 데는 배우 기주봉의 힘이 크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캐스팅 1순위였어요. 섭외할 땐 전통적인 방법을 구사했죠. 연극하시는 곳에 시나리오 들고 찾아가 술 마시며 읍소했어요. 당시 선생님네 형님이 채플린 평전을 읽고 계셨는데, 허락하시는 데는 그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영화는 충남 금산을 배경으로 한다. 푸근하고 예스럽고 정겹다. 금산은 감독의 고향이며 주인공 이름이다. 그 공간을 사랑하느냐 아니냐가 영화의 감성에 영향을 꽤 많이 미쳐요. 고향에 대한 애정이 드러났으면 해요. 모금산은 금산이라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이라는 의미예요. 모씨도 아무개 모()라는 익명성을 뜻해요. 그런데 관객들은 모금산이 이발사니 털 모() 자냐고 묻더라고요. 하하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젊은 감독의 시선은 담담하다. 불행이 닥쳤을 때 어떻게 일상을 마주하는가에 있어 모금산은 제가 닮고픈 인간상이에요. 사실 시한부 삶은 영화에 수없이 등장하잖아요. 그런 클리셰가 클리셰로 보이지 않게 하는 순간을 찾는 것이 제 목표였어요.

  
좋아는 하지만 특별히 오마주를 담은 것은 아니라는 감독의 설명에도 영화는 보는 내내 찰리 채플린에 더해 짐 자무시를 연상케 한다. 그만큼 흑백의 미학과 화면의 구성이 예사롭지 않다.

영화는 대사도 거의 없고 진행도 느리다. 아날로그적 감성이 요즘 관객에게 좀 지루하진 않을까? 무성 영화는 세대를 넘어 다시 봐도 새록새록 감동적인 것처럼 제 영화도 그렇게 다가가길 바라요. 영화 속 <사제폭탄>을 보며 어린 관객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릴 때, 어떤 반응보다 즐겁고 뿌듯하더라고요.

영화가 착하고 따뜻한 것처럼 감독의 답변 역시 영화를 닮았다. 기주봉 선생님도 넌 좀 더 삐뚤어져야 한다고 하시던데. 조금 더 현실을 날카롭게 그리라는 뜻이겠죠? 그런데 제 영화보다 훨씬 착한 영화도 많아요. 하하하.”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823251.html?_fr=mt3#csidxcc19db9d6aed5af99b05512e134e1d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