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文化); 책과 생각; 건강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방송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패러디 만발’ / 한겨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7. 12. 14. 07:56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방송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패러디 만발’

등록 :2016-10-31 14:08수정 :2016-11-09 11:24

 

예능·개그 프로그램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다뤄
배우 신현준은 SNS에 촛불 든 사진 올려
‘역사저널 그날’ 신돈 편 결방에 누리꾼 항의도
문화방송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29일 방송분. 프로그램 갈무리
문화방송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29일 방송분. 프로그램 갈무리
최순실씨가 ‘풍자 전성시대’를 열었다. 최악의 국정 농단 사태 앞에서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하는 모양새다. 온라인, 오프라인을 넘어 방송가까지 나섰다. 29~30일 주말 방송가는 ‘최순실 사태’ 풍자로 넘쳤다. 이명박 정부 이후 정치 풍자나 풍자 개그의 빈곤을 우려(▶관련기사: [뉴스AS] 왜 개그쇼에서 권력 비판 사라졌나)하던 시점에서다.

문화방송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은 트레이드마크인 자막으로 화제가 됐다. 29일 방송된 504회 ‘그래비티’ 편에서 유재석·박명수 등 출연진은 우주인 체험을 위해 무중력 훈련에 들어갔다. 스튜디오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박명수가 김태호 피디 얼굴을 두고 비난을 하자 김 피디는 “지는…”이라고 대꾸했다. 박명수가 모른 척 하자 김 피디는 자막에 “정작 들었어야 할 분은 딴 얘기 중” “끝까지 모르쇠인 불통왕”이라고 썼다. 최순실 게이트 앞에서 침묵 중인 박근혜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내용이다. “온 나라가 다 웃음꽃이 피고 있어요”라는 박명수의 말에 “요즘 뉴스 못 본 듯”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문화방송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29일 방송분. 프로그램 갈무리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야외 촬영에서도 풍자는 이어졌다. 출연진이 무중력을 경험하기 위해 수십개의 풍선을 달고 공중에 떠오르자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출발’ ‘성공을 수놓는 오방색 풍선’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4월 중남미 순방 중 브라질 경제인 행사에서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말했다. 오방색은 최순실씨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태블릿 피시에 저장된 파일이름 ‘오방낭’을 연상시킨다. 오방낭은 2013년 박 대통령 취임식 때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희망이 열리는 나무’ 제막식에 등장한 전통 주머니다. 이 행사도 최순실씨가 진두지휘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상태다.

무한도전은 2006년 방송을 시작한 뒤 종종 시국을 풍자하는 ‘코드’를 방송에 삽입하곤 했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때는 “메르스 예방법으로는 낙타, 염소, 박쥐와 같은 동물 접촉을 피하고 낙타고기나 생 낙타유를 먹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라는 유재석 발언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의견제시’ 제재를 결정(▶관련기사: ‘무한도전’ 낙타 염소 피하라했더니 징계)하기도 했다.

30일 방송된 에스비에스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아바타 하우스’ 편. 프로그램 갈무리
30일 방송된 에스비에스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아바타 하우스’ 편. 프로그램 갈무리
에스비에스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자막도 의미심장한 표현으로 눈길을 끌었다. 30일 방송된 ‘아바타 하우스’ 편에서는 서지혜·김준현 등 게스트들이 런닝맨 멤버들의 주인이 되어 이들을 마음대로 조종하며 아바타처럼 움직였다. 박 대통령을 두고 일각에서 최순실씨의 꼭두각시·아바타 등으로 부르는 것을 떠오르게 한다. “간절히 먹으면 온 우주가 도와 그릇을 비워줄 거야” “실제로 참 순하고 실한데” 등의 자막도 등장했다.

30일 방송된 <개그콘서트> ‘1대 1’ 편. 비선실세를 넣은 랩 가사가 화제가 됐다. 프로그램 갈무리
30일 방송된 <개그콘서트> ‘1대 1’ 편. 비선실세를 넣은 랩 가사가 화제가 됐다. 프로그램 갈무리
<개그콘서트>(한국방송), <에스엔엘(SNL) 코리아 8> 등 개그 프로그램도 빠질 수 없다. 30일 방송된 <개그콘서트> ‘1대 1’ 코너에서 래퍼로 분한 개그맨 김태원은 유민상이 ‘사망으로 인해 무상으로 이전되는 세금’을 묻자 “여자에게 내 인기는 하락세/ 식당에서 내 인기는 상승세/ 도대체 모르겠네 비선실세”라는 랩을 선보였다. 최순실씨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어도 꽤 직설적인 표현이다. ‘손이나 발에 생기는 굳은 살로 뿌리를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 것’을 묻는 말에는 “문화계 성추문”이라고 답해 최근 박범신 작가, 함영준 큐레이터 등이 연루된 문화계 성추문 파문을 꼬집기도 했다. 29일 방송된 <에스엔엘(SNL) 코리아 8> ‘방탈출카페’ 편에서도 개그맨 정성호가 예술가를 연상시키는 복장으로 나와 “남자 경험 좀 있나?” “예술은 더럽지 않아” 등의 대사를 하다 얻어맞는 장면이 나왔다.

최근 불거진 ‘문화계 성추행 파문’을 다룬 <에스엔엘(SNL) 코리아 8>. 프로그램 갈무리
최근 불거진 ‘문화계 성추행 파문’을 다룬 <에스엔엘(SNL) 코리아 8>. 프로그램 갈무리
드라마도 화제가 됐다. 30일 방송된 문화방송 주말드라마 <옥중화>(연출 이병훈) 49화에 최근 화제가 된 ‘오방낭’이 등장했다. 극 중 윤원형의 첩 ‘종금’은 무당으로부터 윤원형의 또 다른 첩 정난정을 해치기 위해 복주머니를 받는데 그것이 바로 ‘오방낭’이었다. 무당은 ‘오방낭’을 건네며 "간절히 바라면 천지의 기운이 마님을 도울 겁니다"고 말했다.

‘오방낭’이 등장해 화제가 된 문화방송 드라마 <옥중화>. 프로그램 갈무리
‘오방낭’이 등장해 화제가 된 문화방송 드라마 <옥중화>. 프로그램 갈무리
풍자가 아닌 직접 행동에 나선 배우도 있다. 배우 신현준은 2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촛불을 들고 서 있는 본인의 사진을 올렸다. 29일은 서울 청계광장 등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열린 날이다. 그는 사진과 함께 “실망…좌절…분노…하지만, 우리! 허탈한 마음 추스르고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결할 기회로 만들어요"라는 글을 올렸다.

배우 신현준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진과 글. 인스타그램 갈무리
배우 신현준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진과 글. 인스타그램 갈무리
배우 정우성이 영화 <아수라> 개봉 직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도 이번 사태와 맞물려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영화의 과도한 폭력성을 지적하는 의견에 대해 “<아수라>는 안남이라는 도시에서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시스템 속 폭력을 물리적인 폭력으로 극대화해 보여준다. 자기의 권력, 욕구를 굉장히 충실하게 행하면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아무렇지 않게 뻔뻔하게 폭력을 쓰는 인물들을 표상화한 것이다. 현실에서 주먹질은 안 하지만 굉장히 우아를 떨면서 폭력을 자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특정 다수에게 행하는 폭력, 국민에게 행하는 폭력, 그게 더 무서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역사저널 그날> 23일 방송 말미에 나온 예고 멘트. 30일 결방에 대한 안내가 없다. 프로그램 갈무리
<역사저널 그날> 23일 방송 말미에 나온 예고 멘트. 30일 결방에 대한 안내가 없다. 프로그램 갈무리
한편, 한국방송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은 ‘신돈’편 방송을 앞두고 30일 결방해 누리꾼들로부터 ‘최순실 논란을 의식한 조처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직전 회인 23일 방송 말미에 “다음회에는 ‘노비의 아들 신돈, 공민왕의 사부가 되다’ 편이 방송됩니다”라고 예고했는데, 정작 이날 <역사저널 그날>의 스핀오프 프로그램 격인 <역사기행 그곳>을 방송했기 때문이다. 한국방송은 25일 <역사저널 그날> 누리집에 결방 공지를 했는데, 하필 이날은 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한 날이어서 의혹을 더욱 부추겼다.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은 26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최순실 게이트를 일컬어 “신돈이 공민왕 때의 고려를 망하게 한 사건, 괴승 라스푸틴이 니콜라이 2세 때의 제정 러시아를 망하게 한 사건에 버금가는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한국방송 <역사저널 그날> 시청자 게시판에는 30일 결방에 대한 의견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누리집 갈무리
한국방송 <역사저널 그날> 시청자 게시판에는 30일 결방에 대한 의견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누리집 갈무리
한국방송 관계자는 “19일에 <역사기행 그곳> 편성에 대한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역사기행> 홍보를 진행했다. 예고 역시 ‘다음주’가 아니라 ‘다음회’라고 표현했다”고 해명했다. 보도자료 배포와 결방 공지 사이의 간격, 예고 멘트에 대한 해석 등이 엇갈려 오해가 생겼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보도자료를 배포한 19일 역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 케이스포츠 재단 의혹 등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던 시점이어서 누리꾼들은 의심을 접지 않고 있다. 누리꾼들은 “스핀오프 방송이라면 그 시점의 주제와 뭔가 연관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갑작스런 소재 변화도 지적했다. 실제로 <역사저널 그날>은 지난 여름께부터 고려시대를 다루고 있는데 30일 방송된 <역사기행 그곳>은 일본 규수 지방을 돌며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 ‘히젠도’를 보관한 신사 등 고려시대와는 크게 상관없는 소재를 다뤘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768100.html#csidxc8d8007488905799e406f4e69e50d0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