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징역 25년’ 구형에도 박 전 대통령 두둔
최후진술에서 “박 대통령 선처 부탁드린다”
박 전 대통령, 최씨 18개 혐의 중 11개 ‘공범’
최후진술에서 “박 대통령 선처 부탁드린다”
박 전 대통령, 최씨 18개 혐의 중 11개 ‘공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1979년 제1회 새마음 제전에서 함께 나타난 장면. <뉴스타파> 영상 갈무리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61)씨의 결심 공판에서 징역 25년과 벌금 1185억, 추징금 77억9735만원을 구형했습니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정유라(최순실씨의 딸) 말 구입비·재단출연금·영재센터 후원금 명목으로 삼성 쪽에서 433억원 상당의 뇌물을 받거나 약속받는 등 모두 18가지 혐의로 지난해 11월 기소됐습니다.
박영수 특검팀은 최씨를 “국정농단 사태의 시작과 끝이자,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당한 국가 위기사태의 장본인”으로 규정했습니다. “재판 내내 혐의를 부인하고 특검과 검찰을 비난한 것은 참으로 후안무치하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최씨의 반응은 격렬했습니다. 최씨는 구형 뒤 피고인 대기실에서 “아아아악!”하고 괴성을 지르고 오열하는 등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예정보다 앞당겨 진행된 최후진술에서는 “나를 정경유착으로 뒤집어씌우는 특검과 검찰의 악행은 그야말로 사기극적인 발상”이라며 편파수사를 주장했습니다. 고영태씨 등에 의한 ‘국정농단 기획설’을 다시 끄집어내기도 했습니다.
압권은 박 전 대통령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부분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18가지에 달하는 최씨의 혐의 가운데 11가지에서 최씨와 ‘공범’으로 엮여 있습니다. 이 때문에 최씨의 구형을 박 전 대통령 재판의 ‘예고편’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를 의식했는지 최씨는 최후진술에서 “단연코 박 대통령을 40년 동안 지켜왔지만 그분은 단 한 푼도 받을 분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사실 놀랍지는 않습니다. 최씨는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 초기부터 박 전 대통령을 두둔하고 그를 일컬어 “팝가수를 좋아하는 듯한 애정 관계가 마음속에 성립됐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40년 지기의 순수한 우정이든, 공모 관계를 부인해 본인의 죗값을 덜려는 전략이든 최씨는 끝까지 ‘박근혜 바라기’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짝사랑 끝판왕’ 최씨가 ‘징역 25년’을 구형받기까지 어떤 말들을 했는지 돌아봤습니다.
1. “박 대통령은 훌륭하고 나라만 위하는 분”
-2016년 10월27일 <세계일보> 인터뷰
-2016년 10월27일 <세계일보> 인터뷰
최순실씨는 지난해 독일 도피 도중에 <세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합니다. 당시 최씨는 대통령 연설문 유출을 일부 시인하면서도 비선실세 의혹 등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인터뷰 며칠 전 박 전 대통령이 1차 대국민사과에서 한 말과 궤를 같이합니다. 박 전 대통령은 1차 사과에서 최씨를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
최씨는 인터뷰에서 “나라만 생각한 분이 혼자 해보려고 하는데 안 돼 너무 가슴 아프다. 대통령은 훌륭한 분이고, 나라만 위하는 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그런 것을 가지고 사회 물의를 일으켰는지 대통령에게 머리를 숙이고, 죽고 싶은 심정이다. 대통령에게 폐를 끼친 것은 정말 잘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2016년 10월3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최순실씨. <한겨레> 자료사진
2. “죽을 죄를 지었다”
-2016년 10월31일 검찰 출석
-2016년 10월31일 검찰 출석
최씨는 도피 끝에 지난해 10월30일 귀국했습니다. 최씨는 귀국 하루 만에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했는데요. 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국민 여러분,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3. “공소사실 전부 인정할 수 없다”
-2016년 12월19일 첫 공판준비기일 출석
-2016년 12월19일 첫 공판준비기일 출석
한껏 머리를 숙이던 최씨는 검찰청사에 들어선 지 50일 만에 나온 법정에서 돌연 태도를 바꿨습니다.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열흘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는 “(검찰의) 공소사실 전부 인정할 수 없다”며 “독일에선 벌을 받겠다며 돌아왔는데 확실히 모든 것을 한 다음에 인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공판준비기일 하루 전인 12월18일 박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을 맡은 헌법재판소에 답변서를 제출해 “피청구인(박근혜)은 사익을 취한 바 없다. (설사) 최순실씨가 사익을 추구했더라도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을 ‘짝사랑’하는 최순실 씨와 처음 거리두기에 나선 장면입니다.
4. “제 나름대로는 충신으로 남고자 했는데…”
-2017년 1월16일 헌재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 출석
-2017년 1월16일 헌재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 출석
버림받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까요. 1월16일 헌법재판소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이 열렸습니다. 최씨는 이 자리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박 전 대통령과의 오랜 인연을 술회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된 본인의 ‘국정농단’을 부인하고 언성을 높였지만 이 대목에서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국회의원 보궐선거에도 주변에 아무도 안 계시고 어려운 상황에서 나가서, 유연이 아빠(정윤회씨)가 도와달라고 했다. 전두환 시절에 많은 핍박을 받으셨는데, 그때 마음을 힘들게 가지셔서 거의 가택에서 계셨기 때문에 그때 많은 위로를 편지로나 해드렸다. 어렵고 힘들 때 도와드려서 인연이 그랬다. 제가 곁에서 떠날 수 없던 것도 주변에 챙겨주실 분들이 마땅히 없었고, 본인이 필요한 개인적인 거나 해주실 분이 없어서 제 나름대로는 (울면서) 충신으로 남고자 했는데 이런 물의를 일으킨 것은 정말 죄송한 마음입니다. (울음)”
특검 소환에 불응하다 체포영장이 발부돼 강제소환된 최순실씨가 1월25일 오전 서울 대치동 특검에 들어서며 고함을 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5. “자유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
-1월25일 특검 강제 출석
-1월25일 특검 강제 출석
최씨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소환을 한 달 가까이 뭉갰습니다. 결국 1월25일 체포영장이 집행돼 강제로 불려 나온 최씨는 특검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작심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최씨는 이날 “자유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공동책임을 밝히라고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 이것은 너무 억울하다. 우리 애들까지 다 어린 손자까지 이렇게 하는 것은…”이라며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당시 특검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최씨의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최씨 행동을 보면 근거 없는 트집을 잡아서 특검팀 수사의 흠집을 내려는 의도다. 미리 이런 진술을 준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최씨의 발언을 옆에서 듣던 특검 사무실 입주 빌딩 환경미화원 임애순(63)씨가 “염병하네, 염병하네, 염병하네”라고 목소리를 높여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1979년 제1회 새마음 제전에서 대화하고 있는 장면. <뉴스타파> 영상 갈무리
6. “팝가수 좋아하는 듯한 애정관계 성립됐다”
-5월19일 본인 재판 출석
-5월19일 본인 재판 출석
최씨는 지난 5월23일 국정농단 사태 이후 처음으로 박 전 대통령과 대면하게 됩니다. 박 전 대통령의 첫 공판에 ‘공범’으로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은 건데요. 최씨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어했습니다. 5월2일 최씨의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는 “최씨가 오랜 세월 존경하고 따르던 박 전 대통령을 재판정에까지 서게 한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을 토로한다. 박 전 대통령과 같은 자리에서 재판을 받는 것은 살을 에는 고문”이라고 말했습니다.
5월19일 본인 재판에 출석한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을 20대 때 처음 봤는데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시고 굉장한 고통 속에 계셨다. 마치 젊은 사람들이 팝가수를 좋아하는 듯한 애정 관계가 제 마음속에 성립됐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5월23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592억여원의 뇌물혐의에 대한 첫 번째 공판에 최순실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함께 출석,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7. “나라를 위해 일했던 대통령으로 남도록 해달라”
-5월23일 박 전 대통령 첫 재판 출석
-5월23일 박 전 대통령 첫 재판 출석
5월23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대법정에서 ‘피고인 박근혜’에 대한 형사재판이 시작됐습니다. 최씨는 이경재 변호사를 사이에 두고 피고인석에 박 전 대통령과 나란히 앉았습니다. 본인 재판에서 검사나 증인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곤 했던 최씨가 이날만큼은 박 전 대통령을 의식한 듯 이름, 생년월일, 주소 등을 묻는 인정신문에 작은 목소리로 울먹이며 답했다고 합니다. 최씨는 이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이 재판정에 40여년 동안 지켜본 박 대통령을 나오시게 해서 너무 많은 죄인인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께선 절대 뇌물이나 이런 걸 갖고 나라를 움직였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검찰이 몰고 가는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이 재판이 진정하게 박 대통령이 허물을 벗는, 나라를 위해 여태까지 일했던 대통령으로 남도록 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8. “죄 없는 분이…”
-5월29일 박 전 대통령 3회 재판 출석
-5월29일 박 전 대통령 3회 재판 출석
이날은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두 번째로 재회한 날입니다. 최씨는 5월23일과 마찬가지로 법정에서 “대통령께서 여기 계신 데 죄 없는 분이 여기 계셔서 죄송스럽습니다. 청와대에서 승마하고 유연(딸 정유라)이하고 다 해줬다고 하는데 대통령 지갑에 돈이 1000원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어떤 이익도 본 게 없는데 그걸 그렇게 (뇌물로) 연결시키는 거는 특검의 특수성인 것 같습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최씨가 울먹이든, 자신을 옹호하든 한 번도 최씨를 쳐다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난 11월24일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는 최순실씨.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9. “빨리 사형시켜달라”
-11월24일 본인 재판 출석
-11월24일 본인 재판 출석
현재 박 전 대통령 재판은 ‘궐석재판’, 즉 피고인 본인이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 중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본인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처음으로 열린 재판(10월26일)에서 준비해 온 글을 4분 동안 읽었는데요. 이 글에서 박 전 대통령은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배신으로 되돌아왔고 이로 인해 저는 모든 명예와 삶을 잃었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시던 공직자들과 국가 경제를 위해 노력하시던 기업인들이 피고인으로 전락한 채 재판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추가 구속영장 발부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재판 거부’를 선언했습니다. 최순실씨는 그렇게 ‘충신’을 자처하며 거듭 ‘애정’을 고백하고 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배신’감을 토로한 겁니다.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최씨는 ‘법정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두 차례 크게 흔들리기도 했는데요. 10월19일 박 전 대통령 재판에 나온 최씨는 “약으로 버티는데 고문이 있었다면 웜비어(북한 억류 뒤 혼수상태 빠졌다 사망한 미국인) 같은 사망상태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공정심판 할 수 있도록 (재판부가) 검찰에 얘기해주셨으면 한다”는 당부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11월24일에는 좀 더 격한 반응이 나왔습니다. 최씨는 재판 휴정 중 법정에서 “못 참겠다. 죽여주세요. 빨리 사형시키란 말이에요. 빨리 사형으로 죽이라고요. 더 살고 싶지도 않아”라며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너무 분해서 못 살겠다. 억울하다”는 겁니다. 검찰의 구형을 한 달 정도 남겨 둔 상황에서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한겨레> 자료사진
10. “박 대통령 선처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12월14일 검찰 구형
-12월14일 검찰 구형
최씨는 14일 소란을 피우는 와중에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최씨는 검찰 구형 뒤 최후진술에서 “박 대통령을 40년 동안 지켜왔지만 그분은 단 한 푼도 받을 분이 아니고 검소하게 살아온 분이다. (중략) 돌이켜보면 대통령이 되셨을 때 떠났어야 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으나 떠나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고 이런 국정농단 논란이 된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 했을 박 대통령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최씨는 “이 재판에 서신 박 대통령과 관련자들 분들에게 재판장님께 선처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는 말로 최후진술을 마무리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어땠을까요. 최씨의 발언에 ‘화답’했을까요. 박 전 대통령은 지금껏 자신의 혐의를 단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최씨의 ‘사익 추구’, ‘개인 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책임을 주로 언급했습니다.
지난해 12월18일 헌재에 낸 답변서에서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인식하지 못했다”던 박 전 대통령은 1월25일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주필이 운영하는 인터넷 방송 ‘정규재 티브이(TV)’에 나와 “정윤회 문건 사건에서 최순실 문제까지, 왜 방치됐나?”는 질문에 “이번에 비로소 알게 된 일도 보면서 ‘그런 일도 있었구나. 살피지 못했다면 내 불찰이고 잘못이다’ 그런 생각은 했다. 그 전에는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습니다.
2월27일 헌재에 낸 최후진술 의견서에선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최순실은 제 주변에 있었지만, 그 어떤 사심을 내비치거나 부정한 일에 연루된 적이 없었고, 이로 인해 제가 최순실에 대하여 믿음을 가졌던 것인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의 그러한 믿음을 경계했어야 했는데 하는 늦은 후회가 듭니다.”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배신으로 되돌아왔고 이로 인해 저는 모든 명예와 삶을 잃었다.” 이것이 박 전 대통령이 최씨에 대한 마지막 언급입니다. 박 전 대통령을 향한 최씨의 ‘짝사랑’은 극적인 반전을 맞을까요? 40년 지기 인연이 법정에서 어떤 결말을 맞을지 주목됩니다.
<참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