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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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18일 저녁,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서울의 한 중국식당에서 종합일간지·통신사 편집국장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당시의 여론 판도상 한나라당 대선 후보 예선 통과는 사실상 본선 승리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이던 때였다. 필자는 당시 <한겨레> 편집국장 신분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다. 식사 자리가 끝나가면서 가볍게 폭탄주가 한잔씩 돌아갔다. 이 후보를 따라 나온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들과 편집국장들의 러브샷에 이어 맨 마지막 순서는 이 후보와 한겨레 편집국장의 러브샷이었다. 사실상 차기 대통령과 러브샷을 하는 ‘영광’을 한겨레에 준 것은, 그동안 경선 과정에서 이 후보의 도덕성 의혹을 끈질기게 제기해온 한겨레와 이 후보가 화해하라는 주문인 셈이었다. 이 후보 쪽은 ‘비비케이(BBK) 실소유주는 이명박 후보’라는 김경준씨의 인터뷰 내용 등을 문제 삼아 한겨레를 상대로 5천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다.
이 후보와 폭탄주 러브샷을 하고 나서 필자가 이 후보에게 농담을 건넸다. “이제 한겨레랑 러브샷까지 했는데 소송 취하하시지요. 아니면 절반이라도 깎아주시든가.” 참석한 다른 편집국장들한테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보통 이런 경우 농담에는 농담으로 응수하는 법이다. 이를테면 “어림없어요. 선거자금도 부족한데 한 푼도 안 깎아주고 끝까지 받아낼 테요”라든가. 그런데 갑자기 이 후보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지금까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입을 앙다물고 쌩한 표정으로 변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이 양반 뒤끝이 보통이 아니구나. 앞으로 5년간 한겨레가 고달프겠는걸.’
예감은 적중했다. 이 후보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소송을 취하하지 않고 2년 넘게 재판을 끌고 갔다. 엠비의 뒤끝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한겨레에 대한 은밀한 광고탄압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포착됐다. 한겨레에 광고를 낸 기업에 청와대나 국정원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오늘 아침 한겨레에 실린 광고 잘 봤습니다”라는 압력성 빈정거림을 한다는 말도 들려왔다. 청와대 쪽은 “결코 그런 일이 없다”고 펄쩍 뛰었지만 음험한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맴돌았다.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부 정책을 한겨레가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에 심기가 불편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대선 과정에서부터 미운털이 박혔던 탓도 커 보였다. 한마디로 ‘뒤끝 작렬’이었다.
그로부터 10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 다스 비자금 의혹 등이 점차 베일을 벗어간다. 비비케이와 다스,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 문제는 동전의 앞뒷면으로, 대선 과정 내내 문제가 됐던 사안들이다. 이 전 대통령은 17일 다스 실소유주와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 의혹 등의 수사에 대해 “정치공작” “짜맞추기식 수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측근들이 입을 열면서 그런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진실을 땅에 묻으면 스스로 자라나 마침내 무섭게 폭발한다”는 에밀 졸라의 말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
이 전 대통령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사실 대통령을 하기에는 도덕적 흠결이 지나쳤다. 유권자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나라를 휩쓴 ‘부자 되세요’의 헛된 광풍 속에서 이 후보에 대한 ‘묻지마 지지’가 이어졌다. 그렇다면 엠비는 대통령이 된 뒤 최소한 도덕성 문제에 관한 한 자신을 돌아보고 겸허해야 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수사부터 그렇다. “내가 그 사람을 정치적으로 싫어하지만 돈 문제에 관한 한 사실 나는 더 할 말이 없는 사람 아닌가. 나는 그런 수사를 시킬 자격이 없다”고 말했어야 옳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은 깨끗한 척 칼을 휘둘렀다. 대통령의 권세에 기대 자신의 지난 삶의 오점을 감추는 것도 모자라 새로운 탐욕에 눈을 돌렸다.
우리 사회는 지금 ‘도덕성과 윤리’ 대신 ‘돈과 부자’라는 단어를 영접한 결과가 얼마나 참담했는지를 뼈아프게 반추하고 있다. 국민경제를 건강하게 만들고 사회정의를 이루는 기초는 결국 윤리와 도덕에서 출발한다는 평범한 진실도 새삼 마주하고 있다. 그런 사회적 깨달음은 ‘잘못에 대한 징치’를 수반하지 않고는 완성되지 않는다. 지하에 오랫동안 음습하게 숨어 있던 국정원의 특활비 유용 사실이 박근혜 정권을 넘어 이명박 정권까지 드러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인간에게 뒤끝이 있듯이 역사라는 것도 뒤끝이 있는 모양이다. 역사의 뒤끝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