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
Facebook. 2018. 1. 18. 목요일2
생사를 건 교회개혁 읽기 (26)
교회의 삼권 분립
이 설교를 통해 선포했던
당회의 개혁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당회 안에 중복되어 있는 제직회의 기능을 제직회에 이양하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당회원이 제직회의 부장까지 되어 예산을 집행하고 사업을 진행한다. 그것이
거의 모든 교회의 관행이 되어 별 문제의식 없이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것은 건강한 교회를 위한 바람직한 교회 행정이 아니다. 교회가 웬만큼 자리가 잡혀서 일을 나누어서 할 수 있는 정도만 된다면 당회와 제직회의 기능은 한시 바삐 분리되어야만
한다. 정책과 예산을 세우는 사람과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은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당회원은 정책과 예산을 세우는 역할을 담당해야 하고 제직회원은 그것을 집행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당회원들은 제직회 부장이 되어 예산을 집행하고 사업을 수행하는 일차적인 책임에서 벗어나 그 책임과 권한을 안수집사나 권사에게
이양해야만 한다. 그리고 제직회가 그것을 잘 집행하고 수행하였는가를 감사하고 감독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교회의 권위가 살아나고 일도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회의 힘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어 지나친 기득권이 형성되지 않게 될 것이다. 쉽게 말해 민주적인 행정구조를
가진 건강한 교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다수의 교회는 당회가 이 모든 것을 다 장악(?)하고 있다. 제직회원들은 당회원들의 부하직원 같은 식이 되어 순종(?)만을 강요당하다가 자신들도 당회원이 되면 똑같이 기득권층이 되어 교회를 장악하고 지배하고 휘두르는 집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진정한 당회와 교회의 권위는 잃어 버린다. 치리와 감독을 해야 할 당회가
치리와 감독을 받아야 할 역할까지를 다 감당하고 있으니 진정한 의미의 치리와 감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장로들이
수행한 일을 장로들이 감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장로들이 집행한 일을 장로들이 치리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당회가 제직회의 기능과 역할까지 다 겸함으로 교회에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첫째는
감독이 없어져서 교회의 진정한 권위가 무너지게 되었다는 것과, 둘째는 당회원들이 젊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까지 다 해 버리니 젊은이들의 역할이 없어져서 유능한 교회의 젊은이들이 할 일이 없는 무능한 사람들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당회원들이 과감하게 교회의 많은 일들을 젊은 교인들에게 이양할 때 젊은 교인들은 그와 같은 역할을 통해 더 유능하고 적극적인 교인이
될 것이며 당회원들은 헌법이 명시한 바대로 명실상부한 감독, 즉 교회의 어른이 되어 질서 있고 능력
있는 교회가 될 것이다.
동안교회는 이러한 일을 '98년 연말 당회에서 결정하고
'99년 한 해 동안 준비기간을 거쳐 2000년부터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많은 오해와 어려움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죽다 살았다. 거의 목회를 못할
뻔 하였다.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책의 제목과
똑 같았다. 생사를 걸어야만 했고, 실제로 생사가 왔다 갔다
했었다. 그 때 받은 스트레스는 몸의 흔적으로 남아 개혁의 스티그마(흔적)가 되었다.
목사가 장로의 권한을 빼앗아 무력하게 만들고 교회를 혼자서 장악하고 독재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99년도 초판을 쓸 때는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장로들이 잘 이해해
주고 결정해 주었다'라고 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장로들에게서
적지 않은 예산의 집행권과 사업의 진행권을 빼앗아(?) 안수집사와 권사들에게 넘겨주는 일은 정말 사투를
벌여 얻어낸 개혁의 최대 산물이었다라고 할 수 있다.
동안교회만 해도 일 년에 수 십 억 원의 재정을 집행하는 교회이다. 그 큰 재정을 집행하는데
그것을 감독하는 사람이 없고, 잘못 했을 때 치리하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른다. 장로들이 제직회 부장이 되어 이러한 역할까지 다 감당하게 되었을 때의 문제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 많은 예산을 집행하는 사람만 있고 그것을 감독하고 치리할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다. 있기는 있는데 유명무실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형식적으로 감사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형식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자기(장로)가 집행한 일을 자기(장로)가 감사하고 감독한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치리와
감독이 살아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 예산을 집행하고 사업을 수행하는 실제적인 일에서 장로들은 손을 떼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돈을 집행하는 사람에게는 권한이 따르는 법인데 그 엄청난 권한에서 손을 뗀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와 같은 권한들이 기득권처럼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의 장로들에게 주어져 있다.
이런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교회의 장로들에게 그것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잘못하다가는 교회 안에 큰 전쟁이 일어나 엄청난 혼란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감히 그 일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두려움 때문에 섣불리 손을 대지 못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피해갈 수 없었다.
장로들에게 잘못된 기득권을 포기하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 교회 안에 있는
권력과 권한을 분산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을 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담임목사에 관한 것이다. 장로들을 예산의
집행과 사업의 수행에서 손을 떼게 한 후 그것을 집사나 권사들에게 넘겨주게 하는 일까지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렇게 한 후 담임목사가 누구와 함께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집사나 권사들에게 제직회 부장을 맡게 한 후 담임목사가 여전히 제직회 의장이 되어 저들과 함께 일을 하면 안 된다. 장로들이 제직회의 일에서 손을 떼듯 담임목사도 그와 같은 일에서 직접적인 손을 떼야 한다. 그리고 제직회 부장과 함께 일할 사람으로는 부목사나 전임목사를 세우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공정하다.
담임목사가 장로들과 일하는 것이 힘들고 부담스럽다고 그것을 장로들에게서 빼앗아 조금 만만한(?) 집사와
권사들에게 넘겨주고 장로들을 따돌리고 저들과 함께 교회의 일을 하려고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담임목사의 권한과 권력을 더 확대하고 교회를 장악하려 한다면 그것은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더
위험한 것이다.
나는 2000년부터 교회의 장로님들이 제직회의 기능과 권한을 젊은 제직들에게 이양한다고
하여도 제직들과 함께 사역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제직들은 부목사나 앞으로 청빙하려고 하는 전문목사들과
함께 사역하게 하고 나는 장로들과 함께 당회장으로 사역하려고 한다.
그 동안 교회 안에서 사라졌던 감독의 역할을 충실히 해 보려고 한다. 정말 성경이 말하는
장로의 역할을 감당해 보려고 한다. 넓고 높은 시야를 가지고 정책을 세워 나가며 젊은 사람들이 교회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좋은 울타리가 되어주고 격려자가 되어주며 꼼꼼히 저들의 일을 살펴서 잘하면 칭찬하고 격려하며 잘못하면 그것을 지적하고
꾸짖는, 권위 있는 교회를 장로님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 그렇게
될 때 내가 섬기고 있는 동안교회는 참으로 건강하고 훌륭한 교회가 되어가리라고 믿는다.
99년도 생사를 건 교회개혁에 그렇게 쓴 후 책에 쓴 대로 정말로 2000년도부터 2016년 말 은퇴할 때까지 나는 제직회장을 하지 않았다. 제직회에
책정된 예산의 결재자와 집행자 역할에서 손을 떼었다. 장로들만 권력을 분산시킨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
스스로도 권력을 분산시키려 부족하지만 노력하였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설교한대로 책에 쓴 대로 나는
목회해 보려고 애는 썼었다라고 할 수 있다.
평생의 목회 중 가장 마음에 남는 사건은 2009년 교회의 분립이었다. 그것은 큰 모험이었다. 과도하고 무리한 분립은 오히려 교회의 생존과
건강성을 해칠 수 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하였다. 크게
성공하였다. 나는 그 분립의 성공 요인이 미리 미리부터 교회 안의 권력을 분산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연습과 훈련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생사를 건 교회개혁이라고 하는 책의 일등 가는 수혜자였다라고 할 수 있다.
(생사를 건 교회개혁 156페이지부터160페이지까지)
'김동호*유기성*신우인목사설교+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8. 1. 19. 금요일 [풍족하지 못함이 주는 역설적 삶의 풍족함에 대하여.] (0) | 2018.01.19 |
---|---|
[스크랩] 김동호 목사 Facebook. 2018. 1. 18. 목요일3 / 생사를 건 교회개혁 읽기(27) (0) | 2018.01.19 |
[스크랩] “저는 귀 뚫린 종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 유기성 목사 (0) | 2018.01.19 |
[스크랩] 당신은 은혜 아래 있는가? [- 그분의 사역, 존 파이퍼,팀 켈러,콜린 스미스,] (0) | 2018.01.19 |
[스크랩] 왜 걱정하십니까? [주님의 말씀은 힘이 있어] (0) | 2018.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