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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박완규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1. 19.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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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낸사람

박완규 <pawg3000@naver.com> 보낸날짜 : 18.01.14 17:52                

 

 

 

 

 

 

 


 

 


 

 

 

 

 

 

꿈...

 


  




  

스무 살 시절의 2월. 꿈을 좇아 서울로 갔다. 청운의 꿈을 안고. 야간 열차 안에서 구겨진 밤을 보내고 부스스한 얼굴로 서울역에 내린 나. 그때가 새벽녘. 낯선 곳에 혼자 덩그렇게 떨어진 나. 어디로 갈까. 마땅히 갈 곳도 없는데.


서울역에 내리니 여수와는 공기가 달랐다. 2월의 겨울. 차가운 바람이 온 몸으로 들어왔다. 주머니에 있는 돈은 딸랑 3만원. 어머니가 옆집 아주머니에게 빌려서 어렵게 마련해 주신 돈. 이 돈으로 내 청춘을 버텨야 했다.


어렵게 고시원의 총무 자리를 구했다. 월급 10만원. 첫 월급을 받아서 형사소송법 책 한 권을 사고 쌀 사고 반찬 몇 가지 사고 나니 남는 것이 없었다. 반찬이래야 김치와 콩자반이 전부. 잠은 고시원 바닥에서 잤다. 담요 하나에 의지해서.


그러다가 돈이 떨어지면 공사판에 날일을 갔다. 새벽의 영등포 인력시장. 그곳에 가면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장작불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날이 어렴풋 밝아올 무렵. 인부로 뽑혀 봉고차를 타고 가면 그곳 대부분은 건축현장이었다.


그곳에서 하루종일 건물을 오르내리며 모래와 벽돌을 져 날랐다. 엉덩이를 뒤로 쭈욱 뺀 채 허리를 반쯤 앞으로 굽혀 무거운 짐통을 메고 계단을 오르는 일.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내 등에 짊어진 짐통의 무게뿐만 아니라 세상의 무게도 함께 견뎌야 했다.


그렇게 모래와 벽돌을 져 나르는 일이 끝나면 땅을 파고 철근을 깔고 시멘트를 비벼 넣는 작업도 했다. 어느덧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그럴 때마다 나는 몇 번이나 하늘을 올려다봤다. 파란 하늘. 나를 키운 고향의 하늘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하늘.


그렇게 일을 끝내고 나면 어깻죽지에 피멍이 들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다.



 

 

 



 

아침 9시 반. 잠시 쉴 수 있는 새참시간. 빈 시멘트 포대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깔고 그 위에 앉아서 우유 하나와 빵 한 봉지를 건네 받았다. 날마다 아침을 안 먹으니 날마다 허기진 배. 나는 목이 메이도록 그 빵을 우겨넣었다. 


언젠가 조용필의 ‘꿈’이란 노래를 들었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 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빌딩 속을 헤매이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한참 예민할 때, 세월이 조금 흘러도 이 노래를 들으면 와락 눈물이 났다. 그때의 내 처지를 노래하는 것 같아서. 여수라는 작은 도시에 살던 어린 청춘이 성공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서울에 왔는데 웅장한 빌딩숲 속의 공사장에서 꿈 대신 빵을 먹어야 했던 그 시절.


정붙이기조차 어려웠던 서울. 부모형제도 없는 서울은 언제나 내게는 춥고 배고프고 험한 곳이었다. 공부를 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일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헤맸던 곳. 결국 초라한 어느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던 곳.


그렇게 일을 끝내고 늦은 저녁에 포장마차에 들러서 허기진 속을 우동이나 어묵 국물로 데워야 했던 외롭고 고단했던 서울살이. 지금도 조용필의 ‘꿈’이란 노래를 들으면 스무살 그 시절, 공사장 귀퉁이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로부터 35년이 흐른 지금. 나는 과연 청운의 꿈을 이루었을까? 그때 내 몸무게의 절반이나 되는 짐통을 메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달래가면서 성공해야 돼, 성공해야 돼... 수 없이 되뇌었던 그 때의 꿈을 나는 지금 이루었는가?


나는 그 질문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뭐라고 답해야 하나? 그리고 그때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고단한 하루를 버텨야 했던 스무 살의 나에게 나는 지금 뭐라고 설명을 해줘야 하나? 나이는 자꾸 먹어가는데...


대원(大原)
박완규 올림




  

오늘 사진은

김경완 작가님이 눈 내리는

운주사에 가서 담아온 설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