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 판사 사찰 파문
행정처 문건에 드러난 재판 개입
행정처 문건에 드러난 재판 개입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2012년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2심 선고 전후 동향을 청와대에 보고한 것은 ‘사법부 독립’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헌적 행각이다. 특히 대법원은 원 전 원장의 선거개입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2심 판결 이후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요구한 대로 사건을 소부를 거쳐 전원합의체로 넘겼다.
청와대, 2심 선고 전후 개입
“항소기각 기대”하며 전망 문의
우병우, 유죄 선고직후 불만 표시
“전원합의체에 회부” 노골적 요구
“항소기각 기대”하며 전망 문의
우병우, 유죄 선고직후 불만 표시
“전원합의체에 회부” 노골적 요구
우병우 뜻대로 전원합의체 회부
결국 대법관 13명이 만장일치로
원세훈 유죄 선고한 2심 파기
원세훈 유죄 선고한 2심 파기
대법, 상고법원과 ‘빅딜’ 검토까지
양승태 원장이 밀던 상고법원
원세훈 상고심과 연계방안 제시
양승태 원장이 밀던 상고법원
원세훈 상고심과 연계방안 제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22일 공개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은 그동안 ‘양승태 대법원’이 정치권력과 어떻게 결탁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문건은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김상환)가 2015년 2월9일 원 전 국정원장의 대선·정치 개입 혐의를 인정해 징역 4년을 선고한 다음날 작성됐다. 앞서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는 원 전 원장의 선거개입을 무죄로 판단한 바 있다.
문건을 보면, 청와대는 판결 선고 전에 ‘항소 기각을 기대’하며 행정처에 전망을 문의했다. 초법적 발상이자 노골적인 압박인 셈이다. 행정처는 ‘우회적·간접적인 방법으로 재판부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렸고, 재판 결과에 관해 ‘1심과 달리 결과 예측이 어려우며, 행정처도 불안해하고 있다’며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하고 있다는 점을 우회 전달했다. 1심 재판 때도 모종의 의사교환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심에서 선거개입 유죄가 선고된 뒤 청와대의 요구는 더 노골적이었다. 문건은 ‘우병우 민정수석→사법부에 대한 큰 불만을 표시하면서 향후 결론에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상고심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줄 것을 희망’이라고 요약했다. 이에 행정처는 ‘사법부의 진의가 곡해되지 않도록 상세히 입장을 설명’한 뒤 내부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특히 대법원 심리와 관련해 ‘항소심 판결과 1심 판결을 면밀히 검토→신속 처리 추진. 기록 접수 중이라도 특히 법률상 오류 여부 면밀히 검토’라고 적힌 부분은, 향후 대법원이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 문건을 작성한 심의관은 쟁점 검토 부분에서 ‘이 사건 파일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가 절대적인 핵심 쟁점일 듯. 지논 파일과 시큐리티 파일로 인정되는 사실관계는 너무나도 구체적임. 그러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아 보임’이라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실제 2015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만장일치로 선거개입 유죄 증거였던 국정원 트위터팀 직원의 전자우편 첨부 파일 2건(‘425지논’, ‘시큐리티 파일’)은 증거가 아니라며 2심을 파기했다. 우 전 수석의 요구대로 소부를 거쳐 신속하게 전원합의체에 넘겨졌고, 전원합의체는 두 파일의 ‘증거 능력’을 문제 삼으며 결과를 되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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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이런 대응은 양 대법원장이 추진하던 ‘상고법원’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문건에는 ‘상고심 판단이 남아 있고 비에이치(BH·청와대)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고 있는 국면→발상을 전환하면 이제 대법원이 이니셔티브를 쥘 수도 있음’, ‘상고법원과 관련한 중요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추진을 모색’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한 판사는 “행정처가 상고법원을 고려해 원 전 원장 재판에 직접 개입했고, 그 결과 이례적으로 ‘13 대 0’의 만장일치 판결이 나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