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성추행 및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26일 검찰에 출석했다.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에 대한 경찰의 본격 수사도 시작됐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부터 지난 한달간, ‘미투 운동’은 검찰을 넘어 문화예술계, 종교계, 언론계 등으로 숨가쁘게 번졌다.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기 시작한 이상, 이 움직임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이것이 일회성 열풍에 그치거나 극단적인 성 대결로 가지 않기 위한 우리 사회의 진지한 제도적·문화적 노력이 시작되어야 할 때다. 최근 미투 운동을 이용해 어느 한쪽을 공격하거나 진영 대결로 바라보려는 일부 시각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이른바 운동권, 좌파세력과 진보정당이라는 사람들, 청와대와 여성단체 전부 다 입을 다물고 있다”는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의 21일 발언 이후, <조선일보>는 연일 여성단체를 비롯한 진보진영의 ‘위선적 이중잣대’를 비판해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24일 “우리 당 국회의원을 음해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미투 운동이 좌파 문화권력의 추악함만 폭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본질 흐리기다. 성폭력은 권력적 갑을관계와 성차별적 사회구조로 인한 일그러진 젠더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문제다. 분야나 진영을 가리지 않고 터져나오는 폭로 앞에서 성폭력 문제가 얼마나 뿌리 깊고 만연해 있는지 성찰은커녕 특정 세력의 비판 수단으로 삼는 발상을 언론과 정치권이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여성단체나 여성가족부 비판은 사실관계 자체도 틀린 부분이 많을 뿐 아니라, 문제 해결의 책임을 여성들에게 떠넘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궤변’에 맞서는 대응 역시 유감스럽다. 김어준 시사평론가는 “(어떤 세력들이) 피해자들을 좀 준비해 진보매체에 등장시키고 문재인 정부의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로 생각할 것”이라는 팟캐스트 발언으로 주말 내내 논란이 되자 26일 “미투를 공작에 이용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한 것이지 미투 자체를 공작이라고 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극히 정파적으로 사고하는 일부를 제외하면, 아무도 성폭력이 ‘진보만의 또는 보수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도가 무엇이든 이런 발언은 미투 운동에 또다른 정치적 프레임을 덧씌우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미투 운동은 기로에 서 있다. 예전에도 직장이나 문단 내 성폭력 폭로가 있었지만, 피해자들은 ‘꽃뱀’과 같은 2차 피해를 당하거나 명예훼손 고소, 스토킹, 악플 등의 공격에 시달리며 잊혔다.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철폐 등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이번엔 시작되어야 한다. 남성들 사이에도 번져가는 #위드유처럼, 사회문화적 인식의 대전환은 그 구조적 변화의 기반이 될 것이다. 얼마 전 한국여성민우회의 버스킹에 나왔던 한 피켓 문구처럼 “우리는 몇몇 괴물이 아닌, 구조를 바꾼다”는 공감대의 확산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