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진 전 검찰총장
2010년 ‘국새 사기사건’으로 구속된 남편을 위해 정식 수임계약 없이 임채진 전 검찰총장에게 변호사비로 5000만원을 준 후 수사정보를 전달받았다고 주장한 50대 주부의 무고혐의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고소장을 통해 임 전 총장의 ‘전관비리’ 의혹(경향신문 2017년 7월24일 8면 보도)을 제기한 50대 주부를 무고죄로 기소한 검찰은 ‘전관 봐주기 수사’와 ‘검찰권 남용’에 대한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5단독 조형우 판사는 임 전 총장의 20년지기를 변호사법 위반과 사기죄로 고소한 김모씨(59)의 무고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2010년 ‘국새 사기사건’에 휘말린 남편을 위해 임 전 총장을 부장검사 시절부터 알고 지낸 건축업자 박모씨 소개로 임 전 총장을 만나고 온 후 5000만원을 전달했다. 하지만 김씨의 남편은 구속기소돼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김씨가 출소한 남편과 함께 사무실로 찾아갔을 때 임 전 총장이 ‘나는 사건을 맡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자 박씨를 2015년 사기죄로 고소했다.
김씨 측은 “임 전 총장이 ‘대법관과 전직 총장은 1억원 이하로는 사건을 잘 맡지 않는다’고 수임료 액수까지 언급해놓고 남편이 출소 후 찾아가니 자신은 사건을 맡지 않았다고 해서 ‘그렇다면 수임료로 받은 돈을 돌려달라’며 박씨부터 고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고소사실이 확인되면 박씨는 물론 임 전 총장까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을 상황에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검찰은 임 전 총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사도 없이 박씨만 2015년 12월 사기죄로 기소했다. 그나마검찰은 공판과정에서 박씨에 대한 구형을 포기하고 무죄가 선고되자 거꾸로 김씨를 무고죄로 기소했다.
김씨가 5000만원을 전달한 사실이 없음에도 자금출처를 허위로 꾸며내고 이를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동영상까지 조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의 수사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 판사는 “김씨가 자금출처에 대해 불명확하게 진술하고 동영상을 조작한 점은 인정되나 여러 증언들에 비춰보면 남편 변호사비로 5000만원을 전달했다는 주장은 허위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조 판사는 “박씨는 (돈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되찾아갔다고 주장하지만 김씨가 임 전총장의 도움을 받기 위해 상당한 현금을 마련하여 전달한 상황에서 30~40분 만에 돌변하여 그 진행을 보류하고 돈을 되찾아갔다는 것은 이례적이고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고 했다.
법원은 2010년 당시 5000만원이 변호사비용으로 건넨 진 후 박씨가 검찰 내부 수사정보를 알려준 사실도 인정했다. 김씨측이 재판부에 제출한 업무수첩에는 검찰내부 관계자가 알려주지 않으면 사업가인 박씨가 파악할 수 없는 참고인 소환일시나 향후 수사방향등이 기록돼 있다.
조 판사는 “2010년 당시 (김씨 남편의) 수사와 재판상황이 기록된 수첩을 보면 박씨가 (2달가까이)검찰수사상황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거나 향후 전망을 논의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씨가 임채진 전 검찰총장의 수임료로 5000만원을 전달된후 임 전총장으 지인인 박씨가 알려준 검찰수사정보를 기록한 수첩중중 일부. 검찰내부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참고인 3명의 소환일시가 적혀 있다. 김영민 기자
김씨가 박씨를 통해 임 전 총장에게 변호사비로 현금 5000만원을 건넨 후 수시로 검찰수사정보를 전달받았다는 주장이 대부분 사실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이번 사건은 전관비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며 마지막까지 임 전 총장 감싸기에 나선 바 있다. 임 전 총장도 경향신문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박씨가 임 전 총장을 통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당시 검찰의 내밀한 수사정보를 빼냈는지 의혹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황종국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전·현직 검찰 고위직들이 합작하여 조작하고 일선 검사들이 총대를 멘 것이 분명한 이 사건을 변론하면서 우리 검찰의 수준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지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