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였던 시절 도덕 교과서에서 읽었던 우화로부터 시작한다. 한 아버지가 있었다. 삼형제를 두었는데 형제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를 걱정하던 아버지가 삼형제를 불렀다. 그리고 화살을 각각 한 촉씩 내주었다. 꺾어보라고 했다. 화살 한 촉은 쉽게 부러졌다. 아버지는 다시 화살 묶음을 건네주며 꺾어보라 했다. 어느 형제도 묶여 있는 화살을 꺾지 못했다.
권력자는 홀로 있어도 강하다. 권력은 나누지 않고 독점하면 더 강해진다. 권력자가 아닌 사람은 홀로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힘없는 사람은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억울함을 광장에서 절규로 표현해도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무심하게 가던 걸음을 계속한다. 힘이 없으면 처참한 꼴을 당해도 보호받지 못한다. 피해자가 단 한 명이 아니라 심지어 수없이 많은데도 그 많은 피해자들은 호소할 곳이 없다. 그렇게 성희롱과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쌓이고 쌓였지만, 세상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돌아갔고 가해자들은 승승장구했다. 세상은 피해자에게 침묵을 사실상 강요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피해를 자기 탓으로 돌리며 살기도 했다.
강요된 침묵 속에서 자신을 탓하던 한 피해자가 용기를 냈다. 먼저 용기를 낸 사람이 가해자를 고발하자, 그 용기에서 용기를 얻은 또 다른 피해자가 용기를 보탰다. 또 다른 피해자의 고발을 들으며 용기를 낸 또 다른 피해자가 목소리를 더했고, 그리하여 드러나지 않은 존재였던 피해자들은 뜻밖의 쓰임새를 지닌 해시태그를 통해 발언권을 얻었고 용기를 서로 교환했다. #MeToo는 그렇게 세상에 등장했다. 해시태그를 통해 피해자들은 세상에 홀로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침묵을 강요받았던 피해자들은 봉인되었던 심정을, 그리고 자기 잘못이 아니었다는 깨달음을,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처벌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MeToo에 담았다.
그들의 말을 들어본다. 어떤 피해자는 해시태그로 이렇게 말했다. “법에서는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처벌할 수 없다고 하는데 21년이 지난 지금도 그 병원 앞으로 못 지나가고 멀리 돌아가며, 운전할 때 멀리 그 병원이 보이기만 해도 가슴 중앙이 너무 아프고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이것은 세월이 지나 아무는 상처가 아니다.” 가해자는 기억조차 못하지만, 피해자에게 성추행·성폭력은 만료가 없는 평생의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또 다른 #MeToo의 목소리도 그러하다. “그 후로도 매체를 통한 성범죄 관련 이슈에 노출될 때면 언제나 공포와 무력감, 분노가 지속적으로 저를 괴롭혀 왔습니다.” #MeToo에는 이런 목소리도 담겨 있다. “어느 날 동료가 부장 A에게 언어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동료는 그 일을 팀 남자 선배에게 토로했으나 오히려 면박만 당했다고 한다. 여자 선배 역시… ‘돈 벌려면 그런 게 중요치 않다’라고 했다… 동료는 내게 전화를 걸어 펑펑 울며 그렇게 말했다.” 가해자 못지않게 방관자도 세상에는 많다. 피해자는 방관자로 인해 2차 피해를 입는다. 또 다른 피해자는 해시태그로 이렇게 요청한다. “도와주세요. 성희롱성 발언을 들은 뒤 그 사실을 알린 대가로 명예훼손 고소를 당하고 벌금 70만원 처분을 받았습니다.” 가해자는 생각보다 뻔뻔하다.
단 한 명의 목소리는 쉽게 무시될 수 있다. 쉽게 무시되었던 한 명의 목소리에 또 다른 목소리가 더해지면 사정은 달라진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그 두 명에 또 다른 한 사람이, 그 사람에 또 다른 사람이 같은 편에 서주면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만들어진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면 더 이상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
#MeToo 이후 #MeToo와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해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직접적 방관자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MeToo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더 이상 자신은 무관한 존재라고 주장할 수 없다. #MeToo는 야만의 세월을 끝내자는 비상경보기이다. 동시에 #MeToo는 우리 모두가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직은 남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MeToo에 가장 적절한 응대는 해일이 오고 있다며 사사로운 피해를 내세워 적 앞에서 분열하면 안된다는 그 똑똑한 정치론자의 대의론도 아니며, 고통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채 #MeToo를 정치공작의 소재로만 바라보는 음모론자의 관점도 아니다. #MeToo에 대한 적절한 응대는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돕겠다는 결심, 가해자에게 적절하고 단호한 처벌이 이뤄지는지 지켜보겠다는 의지, 다시는 방관자가 되지 않겠다는 약속,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며 무관자의 위치를 고집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인간다운 미래를 기약한다는 다짐이다. 그 다짐을 해시태그로 표현하면 #WithYou라 한다. 우리 모두가 함께할 때 야만의 세월은 끝이 난다. 그렇기에 #MeToo 옆에는 #idid라는 사과와 참회가 그리고 #WithYou의 약속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