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최근 여수시의 한 시민단체는 여수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공문을 받았다. 단체가 지역신문에 낸 광고가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에 위배되므로’ 광고를 중지할 것과, 중지하지 않으면 ‘고발 등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광고 내용은 여수시 상포지구 개발사업으로 현직 시장의 조카사위가 부당이득을 취한 의혹이 있으니 이를 엄정히 수사해달라는 것이다.
이 사안은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7개월여 경찰 수사 단계를 거쳐 작년 11월부터 검찰 수사가 진행 중에 있으며, 9월엔 여수시의회에서 관련 특별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의혹인 셈이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경찰, 검찰, 의회까지 조사에 나선 사안을 게재한 신문광고가 왜 문제가 될까?
여수시 선관위 관계자들이 이 사건 피의자들과 한통속이라서 여수시 유권자들이 이 내용을 되도록 모르게 하려고 ‘광고를 중단하지 않으면 고발’한다고 위협까지 한 걸까? 그럴 리가 있겠는가. 문제는 선거법이다. 선거법 제93조 제1항엔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광고, 문서, 벽보, 그림 등을 게재하는 걸 못하게 해 놓았다. 여수시 선관위는 벌써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그 의혹을 지역신문을 통해 더 널리 알리는 광고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행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현직 시장의 조카사위가 피의자인 상황이니, 시장이 재선을 위해 출마한다면 이런 정보가 더 많은 유권자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이 유리하기야 하겠는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혹자는 조카사위의 일로 시장이 억울하겠다 싶어 지지할 수도 있겠고, 다른 사람들은 시장의 연루 가능성을 점치면서 지지 철회의 이유로 삼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래서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런 일은 금지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권장되어야 할 일이다. 현직 시장이 혹은 이 사건에 연루된 누군가가 후보로 나온 선거에서, 선택권을 가진 유권자가 되어 생각해 보자. 만약 검찰의 조사 결과 이 사건에 현직 시장이 연루되었다고 결론이 난다면, 이 사건을 모르고 시장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소중한 선택의 권리를 침해당하게 된다.
혹자는 아직 ‘수사 단계의 의혹’일 뿐이고 피의자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받아야 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피의자가 무죄 추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유권자들이 그 사건을 몰라야 한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 정보가 확산되는 것이 ‘선거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면 후보자인 그가 방어할 일이지, 유권자가 알 권리를 침해받아야 할 일이 아니다.
더 나아가 주권자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게 왜 문제란 말인가? 투표 반년 전부터 이런 식으로 유권자의 입과 귀를 막고서 어떻게 제대로 된 선택을 하라는 걸까? 문득 박근혜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그분은 네차례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마침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도합 다섯차례에 걸쳐 공적 검증을 한 셈이다. 그런데 주권자 대부분은 그가 살아온 이력과 그의 친구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를 선택하기 전에 알 수 있었더라면 주권자들의 선택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도 분명 이런 선거법 덕을 보았을 것이다. 주권자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하는 말과 행동을 금지하고 있는 선거법은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