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12강) 죄 아래 있는 인생! (롬 3:9-18)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7. 31. 06:46

《제12강》       죄 아래 있는 인생! (롬 3:9-18)

 

  미국 나성에 가면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면서 목회를 하는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계십니다. 신문팔이로부터 시작해서 가정주부, 학생, 또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연예인, 사업가, 심지어 저명한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성도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계십니다.
  이 '로버트 슐러' 목사님을 연구하기 위해, 지금은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님이 되신 옥한흠 목사님이 직접 미국 나성 그 교회에 가서 목사님도 만나보고 설교도 들어 보고, 또 목사님에게 부흥의 비결을 물어보고 들었다고 합니다.
  슐러 목사님이 첫 개척예배를 드릴 때, 그 당시 최고로 유명한 '빈센트 필' 목사에게 설교를 부탁했습니다. 빈센트 필 목사님이 강단에서 하신 첫 말씀이 "만일 예수님께서 이 자리에서 말씀하신다면 여러분들을 향해 무어라 말씀하실 까요? 죄인이라고 부를까요? 아닙니다. 주님은 평생 어떤 사람을 앞에 놓고 그렇게 부르신 일이 없으십니다."
  슐러 목사님은 이 말씀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나는 강단에서 절대로 죄인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지금까지 30년이 지나도록 이 결심을 바꾼 일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은 설교자의 입에 담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해 주셨답니다.
  옥 목사님은 슐러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많은 사랑을 받고 인기를 끈 이유를 근방 알았지만 성경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똑바로 직시하면서 "너는 죄인이다"고 하시진 않았지만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밝히면서 분명히 우리 모두 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눅5:32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님은 분명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보셨고, 죄인으로 다루셨고, 죄인으로 알고 가까이 하셨습니다.
  옥 목사는 슐려 목사님을 결론짓기를 '죄의 설교를 안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누릴 수 있었지만 마음은 병들어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회개 없는 성도는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이라고 하는 말은 '불완전하다'는 뜻입니다. 불완전하다는 뜻은 기계로 말하자면 어느 부분인가 고장이 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계는 고장이 난 부분을 고치고 새 부품을 끼우기만 하면 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인간은 철저하게 회개를 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지 않으면 가망성이 전혀 없습니다.  ◀제목소개!▶

 

  바울은 롬2;1절부터 시작해서 3;8절까지 유대인들의 죄에 대해서 주로 지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습니다. 저들은 율법을 자랑했습니다. 남을 가르치고, 남을 판단하는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율법대로 살지 못하고 율법을 범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죄인이면서도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심지어는 괴변까지 늘어놓으면서 자기의 죄를 정당화하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유대인에 대한 결론이 무엇이었습니까?
  3;8절의 끝 부분에 보니까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도 역시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 죽어 마땅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한 뒤에 오늘 본문에서 관심의 초점을 그들에게서 우리에게로 돌리고 있습니다.
 
  ▶9절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예수 믿는 우리들은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과 질적으로 더 나은 것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결코 아니라!" 아주 강한 부정입니다.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똑같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60억이 넘는 인구가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속에는 황인종, 백인종, 홍인종, 흑인종이 섞여 삽니다.
  미국을 합중국이라고 하는데 인종 전시장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또는 호화롭게 부자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셋방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병든 사람도 있습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환경이 어려워 배우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권세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세도 부족하고, 돈도 부족한 사람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야말로 인간 세상사는 천태만상입니다. 그러나 꼭 한 가지 같은 것은 이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죄 아래 있다'는 말은, '죄의 지배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즉 무서운 힘을 가진 죄의 손아귀에 꼭 잡혀 끌려 다니고 있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를 보자! 사회 전반에서 독버섯처럼 고개를 쳐드는 범죄를 막아보려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해 보았고, 단속도 해 봤지만 큰 성과가 없습니다. 왜 경찰 수가 늘어나고, 파출소가 점점 많아집니까? 왜 첨단기계를 도입해서 범죄를 예방해야 합니까? 죄가 자꾸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에서 "내가 의로 우려고 해 봤더니 더 큰 죄에 빠졌으며 내가 좀 더 선하게 살려고 해 봤더니 더 깊은 죄에 빠져버렸다"고 고백했습니다.
  죄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제일 많이 쓰는 단어가 헬라어로 '히말티야'로 '과녁이 빗나갔다'는 뜻과 '분배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옛날에 활쏘기 대회를 하여 과녁에 화살이 꽃이면 상급을 분배받을 수 있으나 화살이 과녁에 미치지 못하거나 빗나가게 되면 상급을 분배받지 못합니다. 이러한 활쏘기 경기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과녁에 미치지 못하거나 빗나감으로 하나님의 생명과 구원과 축복의 상급을 분배받지 못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죄라고 하면 우리가 생각할 때, 도덕적, 윤리적인 죄를 내세우게 된 것과 물론 인간적인 면으로 볼 때, 큰 죄인인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말하고 싶은 죄는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이 죄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비추어 볼 때만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시51:4절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죄란 또 히브리어로 '탈선'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기차가 레일 위로 달려야 하는데 길이 좁다고 넓은 길로 함부로 굴러가면 전복되고 맙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제 멋대로 살다보면 탈선해 버립니다.

 

  ▶성경에서 죄를 몇 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①불법이 죄다. 요일3:4절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②선을 행해야 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약4:17절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③불 신앙이 죄입니다. 요16:9절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예수)를 믿지 아니함이요"

  ▶죄의 성질을 몇 가지로 생각해 보자!
  ①죄는 전염병과 같습니다. 갈5:9절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죄는 병균과 같아서 전파되는 속도와 세력이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는 자랍니다.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습니다. 죄는 질병과 같아서 우리의 영혼을 죽입니다. 죄에서 살 수 있는 길은 만병의 의사이신 예수 앞에 나와야 합니다.
  ②죄는 무거운 짐과 같습니다. 시38:4절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이 짐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초청하고 계십니다.
  ③죄는 남에게 빚 진 것처럼 괴롭습니다. 남에게 빚을 지면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자가 붙는 것이 원칙입니다. 날이 갈수록 빚은 더 늘어갑니다. 또 빚을 갚지 아니하면 독촉하고, 괴롭힙니다. 빚진 자는 활기가 없습니다. 항상 죄인입니다.
  빚진 자의 심정은 당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밤에 잠을 잘 수도 없고, 마음에 즐거움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의 포로가 된 우리들의 심령에도 기쁨이 없습니다.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생 갚지 못한 이 죄 값을 우리 주님을 통해서 갚아주셨습니다. 아무리 죄에 빚진 자라 할지라도 예수 앞에 나오면 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 피로 죄 사함을 받습니다. /믿/아멘!/
  ④죄는 쇠사슬과 같습니다. 아무리 힘센 장사라도 쇠사슬로 묶어 놓으면 꼼짝을 못합니다. 우리는 구약의 삼손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죄가 있으면 자유와 평화가 사라집니다. 자유와 평화를 얻으려면 먼저 죄의 구속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있는 아이가 왜 웁니까? 바로 병균의 구속을 받기 때문입니다.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아니가 왜 기뻐 뜁니까? 자유가 있어서 기뻐 뜁니다.
  ▶어떤 아이가 참새 한 마리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이 참새의 운명은 어린아이의 손에 달렸습니다. 이때 어떤 신사가 그 새를 놓아주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듣지 않습니다. "내가 이 새를 잡으려고 무려 한나절이나 고생했는데요!" 그 신사는 호주머니에서 돈을 집어주고 새를 샀습니다. 그리고 놓아주면서 "헐 헐 날아서 마음껏 자유를 누려라" 만일 새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몇 백 번도 더 감사하다고 했을 것입니다.
  '속량'이라는 말은 '사서 놓아준다'는 뜻입니다. '값을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죄 값을 지불하시고 얽매인 죄의 사슬을 끊고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할/

 

  ▶왜 죄를 짓습니까? 그 이유는?
  ①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16:6절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감히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요셉을 보세요! 보디발의 부인이 그의 미모로 그를 날마다 유혹해도 "하나님 목전에서 어찌 악을 행할 수 있느냐"며 피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유혹이 오면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믿/ 
  ②죄 값을 단번에 받지 않는다고 등한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전8:11절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여러분! 당장 벌을 내리시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좀 더 기다려 깨닫고 회개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노아 때도 120년이나 기다렸으나 깨닫지 못한 자들은 다 심판을 받았습니다.

  ▶죄의 결과는 무엇인가?
  ①총명이 어두워집니다. 엡4:18절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생각이 어두워지고 판단력이 희미해집니다. 그래서 그 마음속에 무지가 지배하며 심령은 강퍅해지고 자신의 욕심에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심오한 사상과 철학을 가졌다 할지라도 인간의 욕심을 따라 사는 자들은 하나님의 지혜의 영을 받을 수 없습니다.
  ②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롬8:7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하나님과 원수가 되면 기도가 막힙니다. 찬양이 끊기고 감사는 사라집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육신은 그가 살았어도 그의 심령은 죽었다는 말입니다.
  ③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됩니다. 영혼의 멸망으로 심판 때에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죄는 무섭습니다. 죄 중에서도 무서운 죄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지 아니한 죄, 그 죄는 절대로 용서받을 수가 없습니다.
  ▶노르웨이의 한 왕이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습니다. 왕은 주일 날마다 큰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교회는 왕의 자리를 특별히 마련하고 하나님과 함께 그 왕도 찬양하고 설교도 왕에게 찬사의 설교만 했으며, 그 교회 교인들은 왕이 자신의 교회에 나옴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몇 주후 왕은 그 교회에 가나지 아니하고 조그마한 개척교회로 출석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죄를 엄중히 책망하고 옳은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신하가 그 임금에게 "폐하, 목사의 설교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작은 교회에 나가시는 것은 폐하의 존엄에 관계가 있으니 다시 큰 교회로 가시지요?" 왕이 말하기를 "나는 왕의 자리에서 예배드림보다 한 죄인의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원하노라" 귀한 신앙을 가진 왕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죄 아래 사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그의 신학의 골격을 '전적부패, 전적 타락'이라고 했습니다.

 

  ▶10절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기록 된 바" 구약 성경을 인용했다는 말입니다. 10-18절까지는 바울이 구약 성경을 인용한 시14:1-3, 시5:9, 시140:3, 사59:7, 시36:1절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만 해도 구약 성경을 들고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에다 기록해서 말아놓은 것입니다. 시편을 들고 다니려면 아마 지게에 지고 다녀야 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장과 절이 없었기 때문에 한 구절 찾아보려면 처음부터 읽어야 했습니다.
  바울은 첫 번째 인용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는 시14:1-3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서, 곧 유대인도 헬라인도 죄인인 동시에 모든 세상 사람들이 죄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전7:20절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10절 이하에 보면 "없나니, 없으며, 없고, 없고, 없나니, 없도다" 무려 여섯 번이나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사람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상대적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저 사람보다는 내가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좀 낫다고 해서 그것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 누구하고도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사람 다 죄인인데" 하는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 다 지옥 간다고 같이 가겠다는 이야기나 같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므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최선입니다.
  잠11:10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
  소돔과 고모라 성은 의인 한 사람이 없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예레미아 선지자도 예루살렘 성에 한 사람의 의인이 없음을 탄식하며 울었습니다.
  본문은 사람은 누구나 죄인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마치 법원에서 검사가 피고에게 대하여 이러이러한 죄목이 드러났으므로 형법 몇 조에 의해서 사형에 처한다는 선언과 같습니다.
  ▶죄로 인하여 타락한 사람들의 정황이 11절 이하에서 나옵니다.

 

  ▶11절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①이해력이 타락했습니다. "깨닫는 자도 없고" 죄악 된 인간들은 자기가 죄인이면서 죄인인 줄 깨닫지 못합니다. 내가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해주셨는데 그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천년만년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욕심을 부리면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들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모든 것의 근원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인간이 살아야 하는 방향도, 방법도, 목적도 모릅니다.
  시14:1절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49:20절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사람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깨달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칼빈은 "모든 것을 배우고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자의 마음을 진정 공허한 자다. 이 지론이 없으면 예술이나 과학이 다 허무한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②죄 아래 있는 인생들은 이제 의지가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주시지 아니하신다면 내 힘으로는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심어주셨습니다. 우주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전심전력으로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찾는 것 같지만 속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세상 염려 속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을 전심전력으로 찾는 사람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인류가 범죄 한 뒤에 받은 벌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죄입니다.
  한국의 주석가이신 박윤선씨는 '인간이 범죄 함으로 생명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잃었고 자신도 잃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그는 자신도 찾는 사람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이 세상 재물을 찾고 지식과 명예만을 찾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가운데도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세상 것을 찾기에 급급합니다.
  롬1:21절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찾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신4:29절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12절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③다 치우쳐 사는 자들입니다. "다 치우쳤다"고 했습니다. 비뚤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똑바로 나아가야 할 텐데 세상이 이끄는 대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불쌍한 우리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나아가야 하는데 세상의 길로 다 어그러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다 치우쳐 사는 인간들에게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수1:7절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다 치우쳐" 영성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정도로 가지 않고 좌우로 치우쳐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립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 무익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무익하게 된다'는 말은 '우유가 쉬어서 먹지 못하게 된다'는 뜻과 같습니다. 쉬어 버린 우유처럼 우리의 영과 육이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음식물이 상했습니다. 썩었습니다. 먹을 수가 없습니다. 내다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나뭇가지가 말라 비틀어졌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찍어서 불에 던 지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든 인간이 쓸모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자도 없나니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표준에 일치하는 거룩한 삶을 사는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노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인간들을 굽어보셨습니다. 죄악이 관영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인간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들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항상 악한 생각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계획하는 것이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홍수로 심판하시고 만 것입니다.
  바울은 고전10: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고, 주님은 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   ▶13절부터 죄 아래 놓여 있는 인간들의 타락한 언어생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④인간의 언어가 타락했습니다. 약3:2절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여러분! 우리들의 말이 온전합니까? 그렇지 못하니 우리는 죄인입니다. 여기 '목구멍, 혀, 입술, 입'이란 단어들은 모두 말과 관계되는 것들입니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열린 무덤에서 무슨 냄새가 납니까? 썩은 송장냄새가 납니다. 아무리 절세미인이라고 해도 죽어 썩어지면 그 냄새가 아주 고약합니다. 무덤을 파면 언제나 썩은 송장냄새가 나는 것처럼 사람들은 항상 더러운 말만 한다는 말입니다. 입만 벙끗하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시기하고 남을 헐뜯는 사람들은 왜 그렇습니까? 목구멍이 열린 무덤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마15:18절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옛날 에덴동산에서 뱀이 혀를 날름날름하면서 하와를 속였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도 부드러운 혀를 가지고 사람을 속인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아첨합니다. 칭찬합니다. 그러나 뒤돌아서면 그 사람을 욕하고 비방하고 중상하는 것이 추악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인간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속임수를 쓰는 것은 예사입니다. 사회적 속임수, 상업적 속임수, 정치적 속임수가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목구멍에서 시작해서 혀로, 그 다음에는 입술로 넘어왔습니다.
  여러분, 독사의 입 뒤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습니다. 뱀이 사람을 물면 잘못하면 죽습니다. 왜? 그 이빨 속에 독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도 입으로 내뱉는 독설로 남을 해치고, 남을 죽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습니까?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악담을 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값 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마디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에 눈물을 흘립니다.

 

  ▶14절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시10:7절을 인용한 말입니다. 남을 저주하는 악독한 말은 사람을 죽입니다. 혀는 무섭습니다. 말이 씨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남을 격려해야 하고 칭찬해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입을 열기만 하면 남을 잡아죽이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그 입에 저주와 악독히 꽉 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언어생활을 바꿔야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할 때 이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높고 높은 보좌에 앉으셨고 주변에는 천사들이 날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고 창화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이사야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로다." 자기의 입술이 부정하다는 사실을 제일 먼저 깨닫게 되었습니다. 탄식하고 있을 때 천사 중의 하나가 제단에 피어 있는 숯불 속에서 핀 숯 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으로 이사야의 입을 살라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너의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다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체험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입술이 부정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 주여! 성령의 불로써 나의 입술을 살라주시옵소서"라는 기도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해서 우리의 목구멍이 더 이상 열린 무덤이 아니라 내 속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전하는 통로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속임을 베푸는 혀가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성호를 소리 높여 찬미하는 혀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남을 죽이는 일이 아니고 남을 살리고, 세워주고, 위로해주고, 덕을 세우는 아름다운 입술로 다 바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5절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⑤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발은 행동을 가리키고 피 흘린다는 것은 살인함을 가리킵니다.
  우리 마음속에 품은 어떤 계획도 실천하기 위해서는 발로 걸어가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여기 '피 흘리는데'는 꼭 살인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행하여 해를 끼치는 모든 언동을 가리킵니다.
  어떤 신학자는 '인간의 본성이 죄를 인하여 부패한 결과 세상과 사람 사이가 전부 적대관계로 바꾸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너와 나의 관계는 살벌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여기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는 말은 독을 품은 독사가 사람을 물기 위해서 쏜살같이 달려오는 것처럼 죄악 된 인간은 지금도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 흘리기 위해서, 남을 해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문자적으로 정말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에 피눈물 쏟게 만들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어서 피를 흘리게 만든  경우가 있지 않은지 한번 반성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죄의 결과로 오는 현상을 16-17절에서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16절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피 흘리는 데 빠른 발이 가는 길이 무엇입니까? 결국 파멸의 길이요, 고생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나도 죽고, 너도 죽고, 모두가 죽는 파멸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고생문이 훤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인간만큼 파괴적인 존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고 찢고 죽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짐승이라 해도 그런 짐승들이 어디 있습니까? 어디 그것뿐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주신 이 대자연을 건설과 문명이라는 미명 아래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지 않습니까? 결국은 그것 때문에 우리 자신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인간들이 가는 발걸음 앞에는 파멸과 고생이 있을 뿐입니다.

 

  ▶17절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죄는 두려움을 가져다줍니다. 죄 짓는 사람은 공포 속에 삽니다. 참다운 평화가 사라집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두 가지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는 파멸과 고생의 길이고, 또 하나는 평강의 길입니다. 그런데 죄악 된 인간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고 파멸과 고생의 길을 자초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끝이 무엇이겠습니까? 절망밖에 더 있겠습니까?

 

  ▶18절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결론적인 말입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왜 이와 같이 적나라하게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우리들에게 폭로해 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금 '죄 아래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원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바리새인은 의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 없고, 세리나 창기들은 죄인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만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바리새인이나 세리나 창기나 다 똑같이 병든 사람이요, 죄인입니다. 단지 바리새인은 자기가 죄인이면서도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세리나 창기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을 했던 것입니다. 내가 죄 아래 있다는 사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우리는 참된 은혜의 자리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70년대 인기 가수 이종용씨는 '너/겨울아이/바보처럼 살았군요!'를 불러서 정상에 오른 가수였는데 그만 대마초 사건에 걸려 감옥에 3개월 정도 있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사형수로부터 복음을 받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때 사형수가 "당신은 곧 나가게 되겠지요, 나가면 내가 세상에서 예수를 위해 못다 한 몫까지 합해서 해 주시오" 
  이종용씨는 대마초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자신이 아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 앞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출감 후 가수 생활을 접고 신학을 공부해서 지금은 미국에서 목회를 아주 잘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죄 아래 있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예수님만 영접하면 그 어떤 허물에서도 용서를 받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은혜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육신의 건강, 생활의 풍성함, 그리고 영원한 천국을 보장받습니다. 아멘 입니까?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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