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세계 여성의 날’을 나흘 앞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 민주주의’ 여성대회가 열려 참석 시민들이 ‘#미투’(#Me Too)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매해 3월8일 돌아오는 ‘세계여성의 날’이지만, ‘#미투 운동’의 한복판에서 맞는 올해 의미는 각별하다. 1908년 3월8일 미국 여성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들을 기리는 자리에서 참정권과 노조결성권을 달라고 시위를 벌였다. 이후 여성들의 지위는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하지만 110년이 흘러,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로 번진 #미투는 권력형 성폭력을 가능케 한 성차별적 구조와 인식이 각 사회에 얼마나 견고하게 뿌리박혀 있는지 새삼 일깨워줬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110년 전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6일 밤과 7일에도 김기덕 영화감독과 배우 조재현, 정봉주 전 국회의원의 성폭행 및 성추행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 이들에 대한 분노와 이어지는 #위드유에서 보듯, #미투를 계기로 권력형 성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건 우리 사회의 커다란 변화다. 동시에 이제는 이를 가능케 하는 구조를 어떻게 바꿔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던져야 한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가 7일 페이스북에 “끝없이 쏟아지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은 ‘설거지는 여자가 하는 일, 그건 하늘이 정한 일’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일갈했듯, 성폭력은 성차별, 성별 권력관계의 불평등 같은 구조 및 인식과 따로 떼어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여성 지위는 경제선진국이라 말하기 민망할 정도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조사에서 한국의 유리천장 지수는 6년 연속 오이시디(OECD) 29개국 중 꼴찌다. 최근에도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가 37%로 회원국 중 가장 크다는 통계가 나왔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선 144개국 중 118위였다.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와 가정폭력, 성폭력과 인터넷 공간의 성폭력 등을 집중 질타했다.
인식의 전환은 말로만 가능한 게 아니다. 성별 임금격차 해소, 각 영역에서 여성의 대표성 확대 등 제도적 노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일부에선 #미투 대응법으로 일터에서 여성들과 접촉을 피하는 ‘펜스룰’도 나온다는데, 이는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위축시킬 뿐이다. 여성들을 ‘배려’나 ‘특별대우’ 하라는 게 아니라 ‘존중’과 ‘동등’한 대우를 해달라는 것, 이것이 성평등 사회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