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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을 기억하고 새긴 대통령 추념사 속 예술작품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4. 4. 18:17

4·3을 기억하고 새긴 대통령 추념사 속 예술작품들

등록 :2018-04-03 13:43수정 :2018-04-03 21:23

 

4·3 70주기 추념사에서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작품들
순이 삼촌4·3 진실 거의 최초로 공론화
이산하 시인 한라산으로 옥고까지 치뤄
강요배 작가의 연작그림 <동백꽃 지다> 4·3항쟁과정 천착
오멸 감독 영화 <지슬> 흑백화면에 제주 홀로코스트 담아
안치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이산하 한라산읽고 만든 곡

70년이 걸렸다. 7년 동안 제주 인구의 10%가 희생당한 대학살에 대해 대통령이 국가 차원의 배상과 보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까지. ‘남은 사람들’의 눈물이 다 말랐을 법한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4·3은 여전히 마르지 않는 눈물이었다. 그러나 그 기나긴 침묵의 시간에도 문화예술인들은 역사의 아픔을 직시하는 작품들을 제작해왔다.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사에서 언급한 그림·소설·영화·노래는 그 대표작들이다.

현기영(77)의 중편소설 ‘순이삼촌’은 제주 4·3의 진실을 거의 최초로 공론화한 문제적 작품이다. 1978년에 발표한 이 작품 때문에 작가 자신은 보안사에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겪고 책도 발매 금지 처분을 당했지만, 그것은 이 작품이 작가 개인에게나 한국 사회에서 지니는 의미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음력 섣달 할아버지의 제사에 맞추어 고향 제주에 내려간 ‘나’를 화자로 내세운 이 소설은 30년 전 향리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을 통해 독자를 4·3의 한복판으로 데려간다. 소설 제목이기도 한 ‘순이(順伊) 삼촌’이란 화자의 친척 아주머니를 가리키는데, 그는 30년 전 학살 현장에서 두 아이를 잃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인물이지만, 평생 그 사건으로 인한 충격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을 택하고 만다.

“그 죽음은 한 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30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93)의 소설집 <까마귀의 죽음>(1957)은 일본에서 제주 4·3을 최초로 알린 문학작품으로 꼽힌다. 표제작을 포함해 ‘간수 박서방’과 ‘관덕정’ 등 4·3 연작 세편과 ‘똥과 자유 ’ ‘허몽담’ 등 다섯 중단편이 묶인 이 책에서 김석범은 학살을 피해 밀항한 제주 동포들의 증언과 각종 사료를 참조해 4·3 항쟁과 학살의 진실에 접근하고자 한다. 한국에서는 역시 4·3을 다룬 그의 대하소설 <화산도>와 마찬가지로 1988년 처음 번역 출간되었다가 2015년 제주의 출판사 각에서 재출간되었다.

<까마귀의 죽음>은 김석범 필생의 역작 <화산도>를 쓰기 위한 ‘워밍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두 작품의 관계가 그만큼 밀접하다는 뜻. 특히 표제작 ‘까마귀의 죽음’에 나오는 20대 지식인 청년 주인공 이상근과 정기준은 각각 <화산도>의 주인공인 이방근과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양준오와 거의 동일 인물로 보인다. ‘까마귀의 죽음’의 또 다른 중심 인물 장용석 역시 <화산도>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남승지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김석범이 1976년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해 20여년 만인 1997년에 완성한 대하소설 <화산도>는 1948년 4·3 발발 직전 상황에서부터 이 사태가 사실상 마무리된 이듬해 6월까지 15개월여의 사태 전개를 원고지 2만2천여장에 담은 방대한 작품이다. 일본에서 마이니치 예술상과 아사히신문 오사라기지로상 등을 받은 이 대작은 1988년 앞부분 5권이 번역 출간되었다가 새 번역을 거쳐 2015년 10월 전12권이 완간되었다.

부르주아 집안 출신 지식인인 주인공 이방근은 4·3에 적극 가담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태를 관망하는 그를 통해 독자는 오히려 객관적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 서북청년단의 극악한 폭력과 친일파를 두둔하고 중용하는 이승만 정부, 그리고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과 4·3 학살의 배후에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미군정에 대한 반발은 냉소적 관찰자 이방근으로 하여금 결국 무장 유격대의 편에 서게 한다. 그렇지만 그의 행동은 항쟁 주체세력과 같은 혁명적 낙관주의에 따른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방어적이며 인간 자존의 표출로서의 그것이었다. 그는 미군의 뒷받침을 받는 토벌대에 의해 유격대와 제주 도민이 싸움에서 패배하는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싸움의 한가운데로 자신을 던진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싸움은 혁명적이라기보다는 실존적 성격을 지닌다. 11권 중반부에서 이방근이 예측하는 사태의 결말은 패배주의나 체념이 아닌, 냉정하고 객관적인 관찰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제주도는 이제 곧 학살의 섬이 될 거야. 이번 게릴라 측의 ‘선전포고’가 그것을 앞당겼어. (…) 제주도민을 ‘빨갱이’로 만들어서, 공산주의 섬멸을 구실로, 온 섬을 불바다로 만드는 초토화 작전이 미국을 배경으로 벌어지겠지. 잔학한 짓이 이루어져도 이 섬은 밀도(密島). 바다를 건너서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은 1987년 사회과학 무크 <녹두서평> 창간호에 발표되었다가 시인으로 하여금 국가보안법으로 옥고를 치르게 한 작품이다. 최근 다시 출간된 <한라산>은 첫 발표 당시 당국의 탄압을 의식해 ‘자체 검열’ 차원에서 잘라냈던 부분을 되살린 ‘복원판’을 표방한다. 4·3 사건의 배후에 미군정이 있다는 전제 아래 “저 간악한 미제의 각을 뜨고/ 저 미친(美親) 매판자본의 심장에 불벼락을 안겨주자”처럼 반공·반북의 ‘금기’에 도전하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강요배 작가의 연작그림 <동백꽃 지다>는 작가가 1989년부터 1992년까지 4년간 4·3항쟁의 전개 과정을 주된 소재로 천착해 그린 역사화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공간, 1947~54년 4·3항쟁시기의 제주 시공간을 화폭에 담은 연작 50점은 피해자인 제주 민중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이 겪으며 견디어야했던 고난의 나날들을 한라산과 오름 등 아름답고 고즈넉한 섬 특유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그려냈다. 간결하면서도 굳센 필치로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투쟁과 잔혹했던 군경의 학살 현장을 감성적인 화면에 되살려낸 이 연작들은 1992년 제주, 대구, 서울에서 순회전시되었고, 98년에는 화집도 발간되면서 큰 반향을 이끌어냈다.

강요배의 4. 3역사화 연작 <동백꽃 지다>의 일부인 ‘하산민’(1989년작). 산속 피난민들이 ‘투항’의 깃발을 들고 내려오는 모습을 펜과 먹으로 그렸다.
강요배의 4. 3역사화 연작 <동백꽃 지다>의 일부인 ‘하산민’(1989년작). 산속 피난민들이 ‘투항’의 깃발을 들고 내려오는 모습을 펜과 먹으로 그렸다.
강요배 작 <동백꽃 지다> 부분.
강요배 작 <동백꽃 지다> 부분.

당시만 해도 미술계에는 4.3항쟁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거의 없었고, 군경의 토벌 작전을 담은 사진들만 주로 알려져 있었다. 피해자인 제주양민들의 피폐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강 작가의 연작들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 삼촌>과 더불어 4·3항쟁의 역사적 진실을 나라 안의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고, 94년 탐라미술인협회의 결성 뒤 본격적으로 창작되기 시작한 ‘제주 4·3미술’의 모태가 된 기념비적 역작으로 꼽히고 있다. 연작의 대표작이자 순회전시 표지화에 쓰였던 땅바닥에 떨어진 핏빛 동백꽃 그림은 이후 동백꽃이 제주에서 4·3항쟁의 상징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2년 제작된 김동만 감독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는 1948년 12월 제주 조천읍 구좌면 다랑쉬굴에 피신했던 민간인들이 군·경합동토벌대가 굴 입구에 지핀 불 연기에 질식해 숨진 사건을 다룬다. 1992년 다랑쉬굴에서 처음 유골이 발견된 뒤 이를 수습하고 화장해 영결식을 치르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촬영·편집한 다큐멘터리다. 행정 당국이 유족들을 회유하고 유골을 강제화장해 굴 입구를 봉쇄하기까지 억울한 혼령이 다시 한번 죽임을 당하는 상황이 사실적으로 기록돼 있다.

1996년 작인 조성봉 감독의 다큐멘터리 <레드헌트>는 제목 그대로 4·3당시 벌어진 ‘빨갱이 사냥’의 진상을 파헤치는 작품이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삶을 통해 당시 벌어진 참혹한 학살과 미군정의 범죄 행각을 좇아간다. 당시만 해도 4·3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이 작품이 상영되자 조 감독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연루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2013년 개봉된 오멸 감독의 독립영화 <지슬>은 묵직한 흑백 화면으로 제주도의 홀로코스트를 그려냈다. 제목인 지슬은 굴 등으로 피신했던 제주 사람들이 연명했던 식량, 감자를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다. 강간, 학살 등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그려내 오히려 더 처연한 감정을 자아냈다. 배우들 대다수가 오 감독 주변의 제주도 사람들이고, 대사도 ‘제주어’로 이뤄져 있어 한국 영화인데도 한국어 자막이 뜬다. 독립 영화임에도 누적 관객수가 15만명에 이를 정도로 반향이 컸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는 등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은 수작이다.

영화 <지슬>의 한 장면
영화 <지슬>의 한 장면

2012년 미술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임흥순이 제작한 <비념>은 원통하게 죽은 4·3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진혼곡이라고 할 수 있다. 망자의 시선으로 바람소리, 파도소리 등 제주도의 풍광과 남편을 잃고 홀로 살아가는 할머니의 증언, 역사적 사건의 증거를 훑어가며 서귀포 강정마을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이들의 외침을 이미지와 영상으로 엮었다.

<끝나지 않는 세월>은 “제주를 영상 도시로 만들겠다”며 “그 중심엔 4·3이라는 저항의 역사가 있다”고 되뇌었던 고 김경률 감독의 작품이다.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 확정 소식’을 들으면서 서로 다른 그날의 과거를 돌아보는 노인들의 회상을 통해 4·3의 생생한 아픔을 돌아보는 작품이다. 김 감독은 장편 독립영화 <끝나지 않는 세월>이 상영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2005년 마흔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멸 감독은 이 <끝나지 않는 세월>을 잇는다는 사명감으로 <지슬>을 만들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잠들지 않는 남도’(1989)는 가수 안치환이 이산하의 <한라산>을 읽고 만든 곡이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녁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로 시작하는 노래는 4·3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4·3 추념식 등 행사에서 자주 불렸지만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동안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불리지 못한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 금기시됐다. 2014년 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이후 더는 추념식에서 들을 수 없었고 추모곡으로는 ‘잠들지 않는 남도’ 대신 4·3과 연관이 없는 ‘아름다운 나라’ ‘비목’ 등이 불려 추념식의 취지와 적합하지 않다는 논란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추념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잠들지 않는 남도’를 합창함으로써 수모를 겪어온 노래를 복권시켰다.

이주현 노형석 김미영 기자, 최재봉 선임기자 edigna@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38888.html#csidx5e34c484217c973a417fdb973d9b6d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