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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나나 ‘고기’로 태어난 건 마찬가지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4. 28. 12:42

너나 나나 고기로 태어난 건 마찬가지

등록 :2018-04-27 16:02수정 :2018-04-27 17:47

 

인간의 조건한승태 두번째 책
식용 동물농장 9곳 르포르타주
인간-동물 경계 철학적 물음까지
통계보다 클로즈업 보여주고파


고기로 태어나서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한승태 지음/시대의창·1만6800원


2007년 겨울, 대학을 졸업하고 교원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20대 청년은 생활정보 신문을 들고 부모님 집을 나왔다. 글을 써서 먹고살 생각이었지만 뚜렷한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가 향한 곳은 전남 진도. 꽃게잡이 배에 올라 일을 했고, 충남 아산 돼지농장과 당진 자동차부품 공장, 강원도 춘천의 비닐하우스 등을 다녔다. 이렇게 전국을 돌며 일한 뒤 르포 형식의 글을 써 모아 2013<인간의 조건>을 발표했다. 충실한 취재와 생동감 넘치는 글솜씨로 새로운 저자의 탄생을 알린 그의 첫 책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로 더 잘 알려졌다.

<고기로 태어나서: ,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는 한승태(36, 필명·일본 만화책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작가의 두번째 책이다. 2013년부터 닭, 돼지, 개를 사육하는 식용 동물농장 9곳에서 일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담았다. 사육, 수송, 도살로 나뉜 식용동물의 삶 가운데 책은 사육에 집중했다. 계란을 얻으려고 닭을 기르는 산란계 농장, 병아리로 부화만 시키는 부화장, 치킨의 주인공 육계를 키우는 육계농장, 어미 돼지를 기르는 종돈장, 생후 3개월 이하 어린 돼지(자돈)를 키우는 농장, 자돈을 더 길러 도축장으로 보내는 비육농장, 그리고 식용개 농장을 다녔다. 각각 짧게는 한달, 길게는 다섯달까지 일했다.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한 작가의 첫 인상은 10년 넘게 극한 직업을 찾아 전국을 다닌 거친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고, 섬세해 보였다. 처음 일하러 간 양계장에서 그는 한달도 채 일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나왔다고 했다. 전자레인지 크기의 케이지(우리)에 닭 네마리가 들어 있었는데, 가장 약한 놈의 맨살을 발톱으로 움켜쥐고 선 닭들이나 아래 깔려 비명을 지르는 닭이나 미친 듯이 몸부림을 쳤다.

축사 안에서 본 것들 가운데 제가 모르는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하지만 축사 속에 제가 예상한 대로의 모습을 한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어떨지 보고 싶었어요. 익숙하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세계로 떠나 여행기를 쓴다는 느낌이었죠.

노동에세이 <고기로 태어나서: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쓴 르포작가 한승태(36)씨.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노동에세이 <고기로 태어나서: ,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쓴 르포작가 한승태(36).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고기로>는 전통적인 르포르타주 형태다. 소설가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나 탐사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 르포를 떠오르게 한다. 작가가 현장에 들어가 일종의 문화번역자로서 타인(과 동물)의 삶을 재현하는 문화기술지(ethnography)로도 읽히지만, 멋들어진 이론이나 해석보다 동물 울음부터 농장 노동자의 말투까지 그대로 재현하는 극사실주의가 두드러진다. 상품으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개체를 솎아내 도태(제거)시키는 장면이나, 개 농장의 잔인한 해체작업을 자세히 묘사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비평적 시선도 때론 거둔다. 반복되는 힘든 일을 하다보니 동물에게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마저 짜증 속에 묻혀버렸다고 지은이는 밝힌다.

책 전체를 통틀어 한 작가는 맛있는 고기(·돼지·)힘쓰는 고기(인간)의 구분이 어디 있는지 질문한다. ·돼지와 사람, 일꾼과 머슴, 한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의 경계를 거듭 묻는다. 사료를 축낸다며 도태되는 닭이나 돼지, 식충이라는 경멸 속에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은 경쟁에서 패배했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개새끼, 닭대가리, 돼지같이 처먹기만 하는 놈, 기타 등등이라는 험한 이야기를 던지는 까닭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어느날 밤 갑질하는 고약한 사장에게 맞서다 곧장 농장 밖으로 내쫓긴 그는 서럽고 분한 눈물을 쏟으면서도 돼지들을 걷어차며 이리저리 내몰았던 자신의 높은 목소리를 떠올린다.

농장에서는 사룟값 때문에 상품가치가 없는 개체들을 도태시키는데, 너무 약한 돼지는 그냥 죽도록 버려두기도 했다. 한승태 사진, 시대의 창 제공
농장에서는 사룟값 때문에 상품가치가 없는 개체들을 도태시키는데, 너무 약한 돼지는 그냥 죽도록 버려두기도 했다. 한승태 사진, 시대의 창 제공
한승태 작가가 직접 찍은 농장의 사진들. 책에는 농장의 동물 사진 아래 “언제나 삶의 밝은 면을 보세요”라는 문장을 적어두었다. 시대의 창 제공
한승태 작가가 직접 찍은 농장의 사진들. 책에는 농장의 동물 사진 아래 언제나 삶의 밝은 면을 보세요라는 문장을 적어두었다. 시대의 창 제공
돼지가 커가는 것을 보면서 재미도 있었어요. 덜 지루했고요. 가장 몸이 편한 건 육계농장이었지만 제일 좋았던 곳은 역시 부화장이었어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농장의 일은 밥벌이였지만, 글을 쓰기 위해 농장을 찾아간 것도 사실이었다. 농장 아저씨들에 견주면 그는 관광객에 가까웠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치아를 꾸준히 관리받아 깍두기를 우적우적 씹어댈 수 있었던 지은이에 비해 치아가 좋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음식을 먹곤 했다. 내 자신이 사지 절단 환자가 가득한 야전 병원 한가운데서 덤블링을 해대는 철부지 같았다.

식용고기 산업계 구조에 대한 고발이자 노동에세이, 철학적 질문을 담은 비망록의 성격을 겸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촘촘한 현장 묘사지만, 순식간에 블랙 코미디로 치닫는 것도 독자에게 동질감과 즐거움을 준다. 스스로를 수동적 공격 성향의 대가라고 일컫는다든지 의미없고 유치한 화풀이로 상황을 순식간에 최악으로 몰고가는 것이 본인 장기 중의 하나라고 설명하는 등이다. 하지만 그의 진짜 장기는 주변을 돌아보며 자신을 낮추고 성찰하는 데 있는 듯하다. 일기장을 뒤적이면서 지은이는 내가 개들을 괴롭히는 장면에선 내가 아닌, 주어를 배정받지 못한 어떤 투명인간이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고 자평한다. 도시의 식당과 술집에서 모아온 산더미같은 짬밥을 처리하면서는 자신의 비판적 시선마저도 의심한다. 개 농장의 크고작은 민폐까지 끌어안아 이해하려는 동네 이웃 주민의 환대를 접하면서 누가 옳으냐라는 질문이 무력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개 농장의 빈 케이지. 농장주들은 사회가 꺼려하는 쓰레기를 받아 먹을거리로 변환시킨다는 미묘한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고. 한승태 사진, 시대의 창 제공
개 농장의 빈 케이지. 농장주들은 사회가 꺼려하는 쓰레기를 받아 먹을거리로 변환시킨다는 미묘한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고. 한승태 사진, 시대의 창 제공
채식을 주장하려는 책은 아니다. 다만 지은이는 통계보다 클로즈업을 제공하고 싶었다동물의 살점으로서의 고기를 있는 그대로 보아달라 당부한다. 당신과 고기 사이에 어떠한 환상도 남아있지 않게 하는 것을 추구한다고 그는 말한다. 맛과 미각의 즐거움을 위해 인간이 번식시키고 때이른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동물들에게 우리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돕는 책이다.

이 책은 멸종 위기로부터 3억 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 서식하는 동물들을 찾아 떠난 여행을 기록한 글이라고 첫머리에 썼어요. 가르치려고 하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독자들이 저와 함께 여행하듯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42411.html#csidx6837b489d2cae98b73a262eb1699e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