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어떻게 성경을 공부할 것인가?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4. 23. 18:31

어떻게 성경을 공부할 것인가?

 

 

 





(리차드 W. 디한)





1.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오늘날의 세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그들은 매일매일 행복을 찾느라 너무나 분주하기 때문에 그들의 영원한 운명에 대해 심각히 생각해 볼 겨를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그들은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이야기를 다만 꾸며낸 이야기나 전설의 한가지로 듣고는 그것이 그들을 위해 무슨 가치가 있는지 믿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려고 정말로 노력하지만 이해할 수 없기에 포기하고 맙니다. 어쩌면 당신도 "왜 내가 성경을 읽어야만 하는가" 라고 묻는 사람 중의 한사람일지 모릅니다.


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가장 유익한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나는 단지 한가지만 제시하고자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곳에서든지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소년이든 소녀든 전해진 복음을 믿을 때 그들의 삶이 혁명적으로 변화되고, 사회적인 면에서는 도덕적으로나 인도주의적으로 새로운 수준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운티호의 반란"이라는 잘 알려진 이야기의 근거가 된 역사적인 사건이 좋은 예입니다 이 사건은 성경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놀라운 증거입니다. 1888년에 6개월 동안 남해의 한 섬에서 주둔하던 영국 선원 중 한 무리가 남아있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선장에 대해 반란을 일으켜서 그 선장을 아주 작은 배에 태우고는 표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토벌 탐험대가 그 반란자들 중 14명을 체포하였고 그 중 9명을 다른 섬으로 이주시켰는데 그들은 그 섬을 새로운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기록된 대로 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아주 빠르고 잔인하게 그곳의 삶을 지옥처럼 바꾸어 버렸습니다. 현지 식물에서 위스키를 만들어 내는 법을 익히면서, 그들은 싸움과 소란스러운 술잔치 그리고 폭력에 연루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죽었고 알렉산더 스미스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홀로 남아 원주민 여인들과 지내면서 혼혈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그때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낡은 사물함에서 성경을 발견한 스미스는 그것을 읽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인들과 아이들을 불러모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12년 후에 미국 상선이 그 섬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한 기독교 공동체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질병이나, 죄악이나, 정신이상이나, 문맹이나, 술취함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의 도덕적 표준은 치안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높았습니다. 그 섬은, 마치 작은 낙원처럼 보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놀랍게 바뀌었습니까? 단지 성경을 읽고. 믿고, 실천에 옮긴 것 뿐이었습니다.


이 동일한 책이 당신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성경을 공부할 것인가" 하는 이 글은 아주 중요하고 매우 적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주님께 응답을 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면 당신과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다는 진리와 만날 때 결심해야 합니다. 당신의 잃어버려진 상태를 고백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죄를 용서하시고 당신 안에서 놀라운 일을 하실 것입니다. 오직 그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성경을 공부할 수 있게될 것입니다.



1. 거듭남이라는 전제 요건


당신이 아직 거듭나지 않았다면 성경에 대한 영적인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니고데모에게 명백하게 하시면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말씀하셨습니다.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하기 전에 당신 자신에게 "나는 거듭났는가?" 하고 질문하십시요. 당신에게 관심이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하나님께서 성경말씀과 성령님을 통해 당신에게 말씀하시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응답을 해야만 합니다. 당신은 반드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이렇게 했을 때 하나님은 당신에게 새생명을 주이고 주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해 주십니다



A. 새생명


성경은 새로운 탄생을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받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로 언급하고 있고, 베드로는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벧후 1:4)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육신에 있는" 자로서 죄인으로 태어나 "허물과 죄로 죽은"(엡 2:1) 자이기 때문에 성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 생각하나니 ...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니라"(롬 8:5,7)고 선언합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 2:14-15)


사람은 그 본성에 의해 그 눈이 가리워졌고 영적으로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거듭남으로 받게되는 새생명은 성경의 영적인 말씀을 이해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어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성경의 문학적인 아름다움과 가치를 칭송하고 역사적인 사건들을 놀랍게 표현한다 할지라도 그 문장에서 위로와 힘과 영적인 기쁨을 이끌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단순하고 교육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새생명를 받았기 때문에 성경에서 주어지는 끝없는 도움과 은혜를 발견할 것입니다. 사실 성경이 그의 영적인 양식이기 때문에 성경없이는 살아있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가 받은 새생명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스스로 젖이요(벧전 2:2) 단단한 식물(히 5:14)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의 말씀이 당신의 삶에서 놀라운 복의 근원이 되려면 하나님으로부터 새생명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B. 새로운 관계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난 사람에게 두 번째 일어나는 일은 그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창조주요 만유의 근원이라고 믿는다 할지라도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이기에 요한은 신자들을 "자녀들"(little children)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사용한 "난 자"라는 단어는 "갓난 아이"라는 단어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되는데, 바울은 주님의 자녀들은 하늘을 우러러 "아바 아버지"(롬 8:15)라고 부른다고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경을 읽으며 말씀을 공부할 때 주님께서 사랑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계신다고 확신하십니까? 기억할 것은 당신이 그분께 매우 중요하며 당신에게 하신 말씀이 들어있는 책을 읽을 때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성경에 흥미와 활력을 넣어주어 아마 당신은 연애편지와 같이 그 말씀에 몰두할 것입니다.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성경을 역사적인 이야기와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을 모아놓은 재미없는 책으로 밖에 볼 수 없지만 그리스도인은 이 책이 끝없는 위로와 힘과 기쁨의 근원임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경말씀과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에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만일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위대한 진리인 하나님 말씀으로 인도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믿음을 그리스도의 인격에 두고 그분이 당신을 구원하실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당신이 주님을 완전하게 신뢰하는 즉시 하나님은 새생명을 주시며 새로운 관계를 맺어 주십니다.


2. 권위라는 전제조건


성경 공부를 위한 두 번째 절대적인 전제조건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 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대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라면 감동된 마음에 대한 명확한 교리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성경 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당신은 반드시 성경의 내용을 믿으려는 각오와 그 가르침에 순종하기 위해 당신의 삶을 통제하려는 의지를 가져야만 합니다



A. 받아들임


처음에는 성경에서 읽은 어떤 것들이 의아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어떤 이야기들은 그것을 믿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 어떤 가르침은 당신이 늘 생각하던 모든 것과 대조되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곤란한 것들로 인해 당황하지 말고 성경의 영적인 내용들을 이해하려는 계속적인 노력도 단념하지 마십시오. 의심이 당신의 마음에 들어오거나 모순으로 보이는 것들로 인해 혼란스러울 때도 성경공부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렇지만 반대로, 당신이 만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당신의 모든 정력을 쏟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젊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너무 전문적인 부분에 몰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경이 더 이상 당신의 영혼에 말씀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논쟁이 되는 부분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너무 집착하는 것을 피하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딛 3:9)


만일 당신이 겸손한 심령으로 성경을 대하게 되면 비록 당신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지라도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받아드리려는 의지를 갖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해답을 찾으려다 실패한 것이 결코 당신에게 직면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명심할 것은 인간이 시도하고 있는 모든 분야에서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일하고 있지만 그것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확신하실 것은 당신의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자라갈 것이고, 지금은 난해한 몇 가지 것들도 분명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점점 더 실제적이며 귀하게 되는 것을 알게되므로 당신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성경에 있다는 것으로 곤란스러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과의 교제는 당신에게 평안과 힘 그리고 비록 당신의 마음에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그것이 참되다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줄 것입니다.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십시오.


나는 불쑥 경고의 말을 하곤 합니다. 진리의 한 귀퉁이를 가지고 주장하면서, 당신을 경건한 성경공부에서 끌어내어 유대적인 절기, 족보, 또는 당신의 영적인 풍성함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어떤 연구의 길로 끌어들이는 소위 몇몇 성경교사를 허락하지 마십시오. 무엇이든지 알고 싶어하는 당신의 머리를 만족시키는 것보다 당신의 영혼을 먹이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사단은 비교적 덜 중요한 것과 주님과 더욱 가까이 걷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는 부분들에 대한 궤변에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갖는 것을 보기 좋아합니다. 올바른 성경공부는 주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며, 더 실제적인 방법으로 주님의 임재를 느끼게 하고,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서 주님을 더욱더 닮도록 인도할 것입니다. 성경이 당신의 영적인 갈급함을 채워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대한 시각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B. 순종


성경공부를 통해 의미있고 삶이 변화되는 유익을 위한 또다른 요구조건은 순종입니다. 당신은 성경의 교훈과 훈계에 순종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며, 주님의 명령에 대한 진지한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공부에는 마음이나 감정보다는 의지가 들어있어야만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의지를 가져야만 영적인 확실성을 가지게 된다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17)
이 영적인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그의 잃어버려진 상태에 대한 판결을 받아들이고, 믿음의 행위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만 합니다. 신자(信者)가 된 후에도 그는 계속적으로 믿음과 사랑 안에서 성경의 진리에 대해 반응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러한 순종은 그를 더욱 계발시켜 주고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에서 자라도록 인도해 줄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변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성경의 힘과 위로를 경험하기 원하십니다 결코 다른 사람이 주님에 대한 기쁨을 나타내고 승리의 삶을 산다고 해서 질투하는 눈으로 쳐다보거나, 그들이 소유한 어떤 것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는 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편애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신뢰할 때 하나님은 당신 안에 새생명을 심어주시고 그분의 가족으로 삼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 아드님을 더욱 닮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영적인 발달과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겸손히 믿기 위해 성경을 읽고, 주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에게 이르신 그 계명과 분부에 순종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공부의 목적은 근본적으로 교회에서 교사의 위치에 올라가기 위한 지식의 창고를 지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공부는 당신에게 폭넓은 이해를 갖게 하여 어느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사용하실 것이지만 그러나 당신의 마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을 갈망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겸손하고 믿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 분부에 순종하려는 의지로 성경을 대한다면 주 예수님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게될 것입니다. 육신의 죄와 세상의 유혹들은 당신의 생활 속에서 그 힘을 잃어갈 것이며 예수님을 닮음으로 당신의 주위에 있는 그것들이 무색케 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면, 당신도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주님의 구원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렇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시작해야만 합니다.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당신의 죄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에서 죽으신 것을 믿으십시오. 당신의 구원을 위해 주님께 구하십시오. 만일 당신이 그렇게 하신다면 주님은 당신의 죄를 용서하실 것이며 당신 안에 새생명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당신에게 의미있는 책이 될 것이며, 당신도 매일의 삶이 변화되는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첫걸음을 내디디라고 권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2. 어떻게 도움을 받을 것인가?



기독교 신문에서 교회 광고면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아마 집회를 알리는 많은 교회와 교파를 보고 놀랐을 것입니다. 당신은 잘 알려지고 역사가 있는 교파들과 그밖에 또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독립교회들과 이단적인 교회가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당신은 전도지를 읽다가, 또는 어떤 개인 전도자를 만남으로나, 그렇지 않으면 라디오나 텔레비젼에서 복음을 듣고 최근에 그리스도인이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당신은 성경공부를 해야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노력도 해봤으나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지, 어느 교회에 나가야할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안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당신은 여기에서 어떻게 성경공부에 대한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보게될 것입니다. 첫째로, 성령님을 의지해야만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도록 은사를 받은 사람들의 사역에 자신을 맡겨야만 합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참된 교사와 거짓 교사를 구별하는 것에 대해 알려드릴 것입니다.



1. 성령님의 사역

누구든지 성경의 원저자 되시는 성령님의 도움을 의식적으로 구하지 않고서는 성경공부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이것을 기억나게 해주었습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성경 기자들에게 감동을 주신 그 동일한 성령님은 그리스도인들 안에 거하시며 하나님 말씀의 진리로 인도하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가 성경을 주의 깊고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자기 훈련을 할 때에만 그렇게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A. 성령님께서 무엇을 하시는가?



당신은 성령님이 특별히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을 거짓 가르침에서 보호하시고 참된 지식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확신할지 모르겠습니다. 요한은 초기 그리스도인에게 거짓 교사들을 대항하라는 경고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까.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좀더 나은 번역은 "너희 모두가 아느니라"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0,21,23,27).



유의할 것은, 요한이 말한 것은 믿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복음의 근본 진리에 관해 아무도 그들을 속일 수 없다는 것으로,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3)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나타난 진리에 대해 다른 설명을 할 수 없게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을 그리스도께서 그분이 말씀하신 모든 것이 되시며, 진실로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고, 죽음에서 일어나셨으며, 하늘로 승천하셨고, 다시 오신다는 확신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많은 교육적인 배경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확신하기에는 믿음을 강하게 하고, 기쁨이 넘치게 하며, 그리스도인으로 승리의 삶을 살게 해주는 교훈들인 성경에 있는 수많은 영광스러운 진리들을 성령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받기 위해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성경을 공부하면 됩니다.



B. 성령님께서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령님의 가르치는 사역이 성경의 모든 구절들을 쉽게 이해시켜 주는 마법의 지름길은 아닙니다. 성령님께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것 때문에 그분이 당신을 능숙한 성경학자로 만들어야할 이유도 없습니다. 때때로 아무도 적절한 설명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몇몇 성경구절들에 대해 하나님의 영이 자기에게 정확한 해석을 해주셨다고 말하는 편지를 받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위 "성령의 계시"가 종종 다른 것과 모순이 되기도 하며,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잘못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그리스도인들도 때때로 틀림없는 성경해석을 하게 해달라고 성령님께 구했다고 해서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성경의 원어를 배우고 성경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 그들에게 문법이나 문맥의 중요한 것들을 지나친 것이라고 말하면 그들은 매우 화를 내며 "그러나 이것은 성령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란 말이오!"라고 단언해 버립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기록자들을 택하셔서 인간의 언어로 성경을 기록하도록 이끄셨고, 하나님께서는 정해진 문법과 논리의 규칙을 사용하여 기록한 성경을 누리가 이해하기를 기대하시며 주셨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내적인 음성이나 어떤 류의 기적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기를 원하셨다면, 기록된 성경을 주시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셨을 것입니다 당신도 아는 것처럼,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사담들을 이성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권위있는 성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성경공부는 그 방법이 반드시 과학적이어야 하며, 학습자는 반드시 성경구절의 역사적 배경과 사용된 단어의 정확한 뜻을 참작해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영광스러운 진리들이 그의 삶 속에서 실제적이고 소중한 것이 되도록 성령님께 구해야 하지만, 성령님의 이러한 사역에 의해 사려 깊고 체계적인 성경공부가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2. 은사를 받은 사람의 사역



성령님께 의지하는 것에 더하여, 은사를 받은 사람들의 사역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깨달아야만 합니다. 신약성경은 성도들을 가르치기 위해 성령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갖추고 있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과 대조되는 참된 교사들의 특징과 하나님께서 성경을 가르치도록 임명하신 사람들에 대해 신자들이 갖추어야할 자세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A.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교사



사도행전과 서신서에는 성경의 진리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에 대한 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이사야 53장을 읽고 있었지만 빌립이 그 말씀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가르쳐주기 전까지는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행 8:26-40). 웅변가의 은사를 받은 아볼로는 효과적인 사역을 하기 전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가르침이 필요했습니다(행 18:24-28). 사도 바울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은사 중에는 목사와 교사가 있다고 말하였습니다(엡 4:11). 그는 디모데에게 "네가‥‥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말하면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딤후 2:2).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셔서 교회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는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사람들이 범할 수 있는 실수에서 당신의 마음에 성경의 진리들을 더욱 실제적이게 하시고 또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도움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모든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들었던 설교와 읽었던 책에서 많은 유익을 얻었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합니다. 나도 분명히 나의 아버지와 여러 훌륭한 성경교사들에게 많은 빚을 졌습니다(저자 리차드 디한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고 훌륭한 성경 교사인 M. R. 디한의 아들임-역자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위하여 목사와 교사를 준비하셨고, 그들에게서 듣기를 거부하는 신자들은 자기 자신의 영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것입니다.



B. 참된 교사들의 특징



모든 새로운 신자들이 성경공부에 대한 도움을 구할 때 하게 되는 의문은 "어떻게 내가 참된 교사를 알 수 있는가?"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자기에 대해 스스로 주장하는 것만으로 확실하게 그 사람을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믿음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가장 큰 혼란을 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참된 교사와 거짓교사를 구별하는지에 대해 말해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성경은 참복음의 대적들이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에서 불완전하며, 오직 믿음을 통한 은혜의 구원을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자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부인하며, 구원받기 위해서는 몇가지 단계가 필요하다고 제시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거짓 요사들의 특징이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견해임을 지적해 줍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요일 2:22-23)



사단의 사자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이며 삼위일체의 교리를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의 시대에 그노시스파가 갖고 있었던 잘못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부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에게서 나온 것을 믿지만 주님의 신성과 인성의 실제는 부인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주님의 대속적인 죽음과 문자적인 부활을 부인했습니다. 마귀는 종교적인 체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하나님보다 못한 존재라는 이론을 만들어내게 하여 사람들을 혼란케 하고, 주님의 문자 그대로의 십자가에 못박히심과 육체로 부활하심을 부인하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제시하는 많은 이단 종교들이 교회사의 시작부터 줄 곳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서 세우신 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신성 안에 있는 자신의 믿음을 결코 바꿀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항상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바라보았고 도마와 같이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문자 그대로 부활하신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성경교사를 찾으십시오. 그는 하나님과 사람이 한 인격으로 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기의 믿음을 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갚아 주셨고, 문자 그대로 무덤에서 일어나셨으며, 영화롭게된 육체로 하늘에 오르신 것을 시인하는 사람입니다.



거짓 교사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는 복음의 핵심교리를 부인합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든지, 어떤 유대적인 절기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피하십시오, 구원의 방법으로 믿음 위에 어떤 류의 의식을 덧붙이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자가 아닙니다. 바울의 경고를 들어 보십시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요한 역시 복음에 덧붙이는 모든 의식적인 것들을 거부했으며. 신자들에게 그들이 처음들은 진리 안에 계속 거하라고 말했습니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요일 2:24)



사도행전과 바울의 서신들을 읽을 때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는다는 말씀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빌립에게서 이사야 53장의 설명을 들었을 때 그는 침례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빌립은 "네가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 가하니라"고 말하였습니다(행 8:37-개역성경에는 이 절이 없고 난하주에 기록된 내용임-역자주). 빌립보 간수가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나아와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자 그들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대답하였습니다(행 16:30,31). 수년 후 바울은 기쁨 가운데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참된 하나님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주님의 대속의 죽음과 문자 그대로 부활하신 것을 진심으로 믿을 것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받는 구원에 대한 믿음과,

행함으로 어떤 공로를 쌓아 천국을 소유할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낼 것입니다.



C. 교사들에 대한 바른 자세



이제 이러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성경 교사로 은사를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해 나는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합니까?"

우리는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모든 기도에서 그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교회에서 다스리는 자들로 세우신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할 것을 보여주고 있고 특히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전 5:17)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실하고 은사를 받은 사람들의 믿음에 대한 기본적인 교리가 성경의 어떤 구절들에 대한 해석에서 다른 사람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과 전적으로 일치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경 교사들이 전혀 잘못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성경을 공부한다면, 여러 교사들의 서로 일치하지 않는 말들을 주의 깊게 평가하고. 여러 번역서들을 읽으며, 좋은 주석을 참고하고, 성경사전과 성구사전을 사용하십시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중요치 않은 모든 부분에서 당신과 동의하지 않는다고 그 사람을 위선적이라거나 무식하다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동일하게 헌신된 사람들이라도 어떤 교리적인 영역에서는 서로 다른 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이해하려는 자세와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성경을 공부한다면, 주 예수를 아는 지식과 은혜에서 자라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더욱더 닮게 될 것이며,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3. 문자적인 성경해석



때때로 사람들은 성경을 이해하려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게 하는 시험에 빠집니다. 이것은 그들이 어떤 구절에 대한 설명을 받아들일 때 몇몇 사람들은 그와 다른 견해를 갖게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그들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느 누가 확신할 수 있는가?"라며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원하시지만 주님은 그것을 직접적으로 주시지는 않으십니다. 성경을 억측으로 이해한다면 우리가 기록된 계시를 이해하는데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어떤 중요하고 믿을만한 책으로써 읽지 않으면 그것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어떤 신비한 기호를 가진 사람들만 판독할 수 있는 모호한 것으로나 천국의 언어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기록하고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반드시 인정된 문법과 논리의 법칙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를 문자적인 해석으로 인도해줄 것입니다.



1. 문자적인 해석의 정의



문자적인 해석은 성경공부의 근본적인 원리이며 그 자체의 문맥이나 표현이 다른 것을 암시할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구절에서 성경이 말하는 정확한 의미를 취하도록 유지시켜 줍니다.

어떤 사람은 "문자적인 의미로도 잘 이해된다면, 그것이 무의미하게 되지 않도록 다른 의미를 찾지 말라"고 적절하게 말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본성이 완전하게 바뀌는 때를 묘사한 이사야 11:6-9절을 이 원리에 대한 예로 들었습니다.



나의 아버지의 주석은 "이 문맥은 예수님께서 이 땅위에 다스리시며 주님의 왕국을 세우실 때를 직접적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경을 영해하는 사람들은 이리와, 어린 양 그리고 사자가 서로 별개의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은 때가 되면 기독교계의 교파나 교단을 나타내는 이리가 다른 종교의 무리나 교파들과 평화하게 되고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만일 내가 그러한 방법을 사용한다면 이리는 미국으로, 사자는 영국으로, 곰은 러시아로, 그리고 이 구절은 이 세나라가 결국 평화하게 된다는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성경을 영해하는 엉뚱한 짓입니다. 이 구절을 예수님께서 오셔서 왕국이 세워지고, 짐승조차도 서로 평화하게 되며, 유순해지고, 육식성이 없어지며, 함께 안전하게 거하게 되는 때라고 문자적으로 믿는 것이 얼마나 쉽습니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성경적인 표현이나 인접한 문맥은 어떤 구절을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상식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3:14에서(개역성경에는 이 구절이 없고 난하주에 막 12:40이나 눅 20:47에서 참조할수 있게 되어있음-역자주) 우리 주님은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시면서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For ye devour widow's houses)"라고 외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집에 사용된 재목들과 못 등이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것이 주 예수님께서 과부의 헛점을 이용하여 재정적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신 것임을 알게 됩니다. 문자적인 의미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 문자적인 해석과 예언



대부분의 정통적인 성경 학도들은 문자적인 해석의 원리를 받아들이지만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예언적인 부분을 다룰 때는 그 원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거절한 민족이기 때문에 많은 예언들이 결코 성취될 수 없게 되었고, 그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이스라엘이 팔레스틴 땅으로 회복되는 예언들은 반드시 영해되어서 교회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게 된다면 성경의 위대한 예언적인 구절들은 전혀 무의미하게 되어버립니다. 여기에서 어떤 의미를 갖기 원한다면 반드시 문자적인 해석을 해야하며, 두 가지 단순한 규칙인 "간격 이론"과 "이중 참조 법칙"을 깨닫는다면 실제적으로 만나게될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간격 이론"은 구약의 선지자들은 때때로 둘 또는 그 이상의 예언적인 사건들이 많은 시간적 간격에 의해 분리되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보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예견은 어떤 사람이 먼 거리에서 두 개의 산봉우리를 바라보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 산봉우리들은 함께 붙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 사이에 있는 계곡의 넓이에 대해 아무 표시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선지자들은 종종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그 사이에 들어있는 교회시대에 대한 부분을 빼놓은 채 예언했습니다. 한가지 예로 사랑받는 의사인 누가는 눅 4:17-20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회당에서 이사야 61장을 읽는 것을 묘사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첫째 절을 읽으시고 둘째 절을 부분적으로 읽으시는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문장에서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이라는 말씀에 미치기 전에 멈추셨습니다. 이 신원의 날이라는 부분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데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사이의 기간을 명백하게 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중 참조 법칙"은 "간격 이론"과 거의 비슷합니다. 이것은 선지자들이 때때로 한 사건을 예언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두 사건을 예언한 것이며, 첫 번째로는 부분적으로 성취되며 그 후의 시대에 예언의 완전한 실현을 나타내는 것이 다릅니다. 그 한 예를 사도행전 2장에서 찾을 수 있는데, 여기에서 베드로는 약 800년 전에 예언되었던 오순절 날의 성령의 부어주심에 대해 외쳤습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행 2;16-20)

우리는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다는 것 때문에 이 구약 예언의 모든 부분이 오순절 날에 성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 성령의 부으심은 요엘의 예언의 부분적인 성취이며, 이것은 앞으로 이스라엘의 영적인 전환과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일어날 놀라운 표적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성경의 예언들을 읽을 때 이러한 이미 이루어진 것과 아직 미래적인 것들 사이에 있는 관점들을 분간해야 합니다. 조심스럽게 "간격 이론"과 "이중 참조 법칙"을 적용하면 당신이 성경의 예언적인 구절들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3. 문자적인 해석과 상징적 표현



그러나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규칙이 성경에 있는 모든 상징적인 표현들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결코 아닙니다. 상징을 사용하는 것이 실제적인 곤란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 2장은 느부갓네살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였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왕은 그 꿈에 대해 잊었지만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그 왕이 본 것과 그 환상의 의미를 왕에게 말해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머리는 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동이며 철로 된 다리를 갖고 있는 거대한 우상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는 황제에게 거대하고 둥근 돌이 굴러와서 그 우상을 부숴뜨릴 것과, 더 나아가 그 우상의 금, 은, 동, 철의 부분들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이스, 로마의 연속된 네 제국을 의미한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문자적인 해석은 이 느부갓네살의 우상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역사의 실제적인 네 민족을 묘사해 주는 그림들로 받아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다니엘 2장에 있는 상징들에 대한 우리의 수용이 이사야 11장에 있는 이리, 사자 그리고 곰이 실제적인 세 민족을 의미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하여 반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스스로나 그 당면한 상황에 대한 표현은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징이나 그림으로 주어진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사야 11장의 단어들은 천년왕국 시대에 짐승들이 서로를 잡아먹지 않게 변화될 것을 의미한다는 문자적인 해석을 할 때 훌륭한 의미를 갖게 합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이 그의 꿈에서 본 우상과 같은 것은 어떤 것을 암시하는 각 부분을 제외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같은 장에 이 상징적인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그 우상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징과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효과적이고 확실하게 진리를 전달해 주는 수단입니다. 주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선한 목자" 또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말보다 더 아름답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문자적인 목자나 어린 양으로 이해하지는 않습니다. 계시록 19장에서 요한이 보았던 백마를 타시고 뒤에 천군을 거느리신 주님은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으로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상적으로 그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다 분명하게 언어와 상징의 표현입니다. 비록 주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 문자적으로 백마를 타시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께서 전능하신 정복자로서 그를 따르는 영화롭게 된 무리를 이끄시고 돌아오실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이 진리의 실제적인 면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화롭게 된 몸을 가지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만든 어떠한 기계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분명하게 주님께서는 말을 타고 우주를 지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짐승은 우주를 지나는데 알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징을 인정하는 것과 성경을 영해하는 것이 동일하다는 어리석은 주장을 아무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상징적인 표현에 대한 지식은 문법과 논리의 규칙을 받아들인 결과로 생기는 것이지만 성경의 영해는 명백한 의미를 지나치고 그 대신에 감동하심을 입은 기록자들이 결코 의도하지 않은 가르침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4. 문자적인 해석과 모형



성경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은 모형을 인정하면서도 함에 존재합니다. "모형"은 구약의 규례, 의식 또는 신약에서 완전히 드러난 진리를 그려주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그것의 문자적인 의미에 덧붙여진) 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요나의 경험이 주님 자신의 장사됨과 부활에 대한 그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40). 주님은 또한 민수기 21장의 놋뱀이 주님의 죄인들을 위한 대속의 죽으심을 예시하는 것으로 나타내셨습니다(요 3:14). 서신서에서는 구약시대의 희생과 제물들이 주 예수님의 갈보리에서의 죽으심을 미리 나타내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었던 사건을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라고 말할 때 그가 사용한 단어는 "모형"과 "그림"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구약은 신약의 진리를 예시해 주는 요인들을 담고 있는 아주 넓은 창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련한 성경교사들은 이러한 모형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소간 흥미를 주어 신약의 많은 진리들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실들을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하며 그의 상상력에 이끌리거나 이러한 모형에서 어떠한 교리를 세우려고 노력해서도 안됩니다. 신약의 분명한 선언 위에 그의 믿음의 기초를 놓고 구약의 예화와 예표들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의 교리들에 대해 정확한 개념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성령의 초자연적인 특성에 대한 부가적인 증거를 제시해 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나의 정직한 확신으로 반복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문자적인 해석의 원리를 수용한다면 성경의 의미에 대한 대부분의 혼란이 없어질 것입니다. 예언은 위로와 교훈을, 상징은 감동과 깊은 의미를, 모형은 부요와 영적인 강인함을 줄 것입니다. "문자적인 의미로도 잘 이해된다면, 그것이 무의미하게 되지 않도록 다른 의미를 찾지 말라"는 격언을 기억하십시오.


    
4.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



성경공부를 격려하기 위해 종종 인용되는 구절은 바울의 권고인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부지런히 찾으며, 숙련된 기술자가 연장을 사용하는 것처럼 주님의 말씀을 습득할 것을 충고하고 있습니다. 기계공이 각각의 공구들을 자기 뜻대로 언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듯이 성경학도들도 주어인 어떠한 환경에서도 적용할 수 있도록 성경을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성경 역사에 대한 정확한 개념과, 하나님께서 그 자신과 구원을 계시하시는 다양한 시대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이 기록되기 전에 사람들에게 어떻게 자신을 나타내셨는지,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사감들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이해하여야 합니다. 또한 왜 우리가 더 이상 구약의 규례를 지키지 않으며, 왜 우리가 모세의 율법아래 있지 않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경륜이라고 부르는 일곱 가지 다른 시대에서 자신을 점진적으로 계시하셨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사람은 성경을 실제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1. 무죄 시대


성경은 창조의 이야기로 시작되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첫 인류인 아담과 하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살았으며, 하나님을 알았고, 주님과 교제를 나누었으며, 생각과 말과 행동이 거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죄한 것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제외한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범죄하여 주님과 원수가 된 천사장 사단이 금지된 나무의 실과를 먹도록 부추키며 그 부부를 시험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의 첫 조상은 사단에게 굴복하였고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에서 쫓아내셨으며, 그들에게 육체의 죽음을 판결하셨고, 땅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시험을 받게 되었을 때, 무죄의 상태에서 완전히 거룩한 상태로, 옳은 행위에 의해 선에 대한 지식을 경험적으로 얻게될 수 있도록 시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 대신에 그들은 죄를 통한 지식을 얻었고 그들의 본성이 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분리되었으며, 성경에서는 이러한 분리를 영적인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이러한 불순종의 결과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은 죄인이며, 영적으로 죽었고 육체적인 죽음의 판결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2. 양심 시대


이 양심시대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난 직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도덕적인 책임이 있는 피조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죄를 지은 후에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입히시며 피 제사의 원리를 가르쳐 주셨으며, 어느날 여자의 후손이(그리스도) 사단을 파멸시킬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 후손들은 그들의 죄가 제물을 통해 가리워지며, 어느날 하나님께서 그들의 종족 중에서 구속자를 준비하실 것이라는 보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외견상 특별계시를 더해 주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일차적으로 양심과 본성을 통해 그들에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단지 진리에 대한 지식과 양심의 소리가 사람을 영적인 평화와 승리의 삶으로 인도하지 못하게 되어 인간의 본성의 깊은데 있는 악행이 명료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노아와 그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멸망시키도록 점차적으로 타락해 갔습니다



3. 인간통치 시대


세 번째 시대는 인간 통치의 시대라고 불리우며 홍수 직후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피 제사에 대해 계시하신 모든 것은 오실 메시야와, 노아와 그의 자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유효한 도덕적인 책임이었습니다. 창세기 9장에서 주님은 범죄자에 대해 벌을 하기 위한 통치형태를 세우는 것을 인가하셨고, 심지어 살인자에게는 사형의 형벌까지도 허락하셨습니다. 주님 사랑들에게 짐승의 고기를 먹게 하셨고, 피를 식물로 사용하는 것은 하셨으며, 계절에 대한 자연의 질서가 유지될 것을 약속하셨고, 다시는 홍수로 이 땅을 멸망시키지 않을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앞에서 말한 시대와 같이 인간통치의 시대는 인류의 마음속에 있는 악행으로 인해 타락해졌고, 인간의 사악함은 반항과 압제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바벨탑 사건에서(창 11:1-9) 사람들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에 반항하여 모반을 조직하였고, 니므롯과 같은(창 10:8-10) 강력한 지도자는 다른 사람들을 종으로 삼아 강한 왕국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악된 인간들이 그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며, 그러한 인류를 위한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준비되고 계시된 것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집트, 갈대아, 하란에서 발생된 거대한 문명은 하나님에 대한 높은 개념과 함께 시작되었으나 점차적으로 조잡한 우상숭배와 무정한 압제로 변질되었습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인간통치 시대는 하나님께서 다른 계시적인 것을 드러냄으로 폐지되었습니다.



4. 약속 시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창 12장) 아주 새로운 계획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때까지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어디서나 자신을 나타내셨지만 이제 주님은 한 사람을 택하셔서 그와 그의 자손들에게 약속된 복을 담고 있는 특별한 계시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시대를 약속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다른 민족들도 사랑하셨고, 그들은 아직까지도 주님께서 인류에게 주셨던 양심의 내면적인 음성, 본성의 빛,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 통치라는 계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을 부르셔서 그들을 통해 모든 인류에게 진리의 빛을 비취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원대하고 함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자손을 가진 족장으로 보장되었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영원히 소유하도록 주셨으며, 그의 자손(그리스도)을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 복을 얻을" 족장으로 말씀하셨습니다(창 12:1-3; 17:7,8; 22:18참조).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가족은 애굽에서 거한 400년 동안에 거대한 무리를 이루었고, 놀라운 이적을 통해 속박에서 놓였으나, 불신으로 말미암아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더 확장된 인간의 악행들은 네 번째 시대에 다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분명한 믿음의 내적인 빛과 고상한 순결함은 아름다웠지만, 약속의 시대는 인간의 문제인 깊은 죄악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돌봄 아래에 사는 때 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만 확인하였고 이것은 율법이라는 그 다음 시대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5. 율법 시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났고 그들은 가나안 땅을 향해 길을 갔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잇따르는 우뢰와 번개, 산이 진동함과, 터질듯한 나팔소리의 장엄한 위엄 속에서 율법을 주셨습니다(출 19:16-13). 이 새로운 시대는 1500년간 지속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며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는 놀라운 일이 그 끝을 맞이한 신호가 되었습니다(마 27:50-56). 이 기간 동안 열방들은 여전히 양심과 인간통치의 규례 아래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분화된 사회적이고 의식적인 율법의 체제 아래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구원의 길은 수많은 율법의 규칙들에 대한 순종에서 나타나게된 믿음뿐이었습니다. 상세한 규례와 불순종에 대한 엄한 형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주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개념을 높이는데로 이끌도록 계획되었지만 또다시 죄악된 인간들은 의도된 교훈을 배우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바울이 말한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 3:19)고 한 것으로 신약 성경은 분명하게 율법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게 하지 못했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사람들이 죄의 실제적인 것에 대한 지식을 얻으며(롬 3:20), 그들이 자신을 구원하기에 완전히 무능력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몽학선생으로 부르며(갈 3:24), 야고보는 이것을 "거울"과 같이 사용하도록 말하고 있습니다(약 1:23-25). 율법은 인간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악행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나타내 주었고, 회개가 필요함을 말해 주었으며, 구원이란 하나님의 용서해주시는 자비에 겸손하게 의지함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것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행위로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틀림없는 증거를 제시해 주었습니다. 이 율법시대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누구도 그 계명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과 짐승의 제물들로는 사람의 죄값을 진정으로 치를 수 없다는 바로 그 본질로 인해 끝이 나야만 하는 제도였습니다. 더 나아가 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은 이 율법의 실제적인 영적 의미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 대신에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무능력함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필요성, 구원에 대한 행위로서 기초적인 율법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6. 은혜 시대


그러나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분은 율법에 대해 완벽하게 순종하여 사셨으며, 죄를 지불하기 위해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습디다. 율법을 대치한 은혜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 이루신 사역 위에 근거를 두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는 삶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과 의식이나 절기적인 제도가 그들의 구원을 보증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불변하는 도덕적인 율법은 지금까지도 유효합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무법함이나 죄에서 더 이상 살지 않으며 내주하시는 성령님에 의해서 그의 삶이 의롭게 나타나집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선한 행위가 자기를 구원하는데 더 이상 필요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는 진리 안에서 기뻐하며,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언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이 시대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으로 이루어진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 은혜시대는 주 예수님께서 죽은 참 신자들을 부활시키시고 즉시 살아있는 성도로 변화시키시는 때인 휴거로 끝나게 됩니다(살전 4:13-18)



7. 왕국 시대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기울이셨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의 회심과 대환난의 때로 알려진 시기를 통해 팔레스틴 땅으로 그들의 마지막 회복을 이루실 것입니다(단 12:1; 마 24:21). 예수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통치하에 의로운 정부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다스리게 될 것이며(렘 23:5,6; 사 32:1; 눅 1:32), 영화와 번영을 모든 민족들이 누리게 될 것이며(사 2:2-4), 모든 본성이 변하게 될 것입니다(사 11:6-9; 35:1,2).


이전 모든 시대와 같이 천년왕국에서도 구원은 오직 은혜로만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 동안 태어나서 참된 신자가 되는 것은 모든 개개인들이 다만 겉으로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순종하는 것처럼 나타내지만 천년왕국의 시대가 끝나게 되면 사단과 결탁할 것이며 그의 사악한 영이 그리스도와 주님의 왕국을 정복하려고 최후의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이 반역자들을 멸망시킬 것이며, 사단은 불못에 던져질 것이고, 이 땅은 정화될 것이며, 심판하실 크고 흰보좌가 베풀어질 것입니다(계 20:7-15) 이 순간에 시간은 그쳐질 것이며 영원이 시작되고 모든 사람은 천국이 아니면 지옥에서 지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교회와 이스라엘과의 차이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천년왕국 시대에 지상의 운명과 함께 할 하나님의 지상 백성들이며, 교회는 천국의 백성들입니다. 당신이 이것을 깨닫는다면 왜 당신이 유대적인 절기나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한 책임 아래서 더 이상 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신 약속과 교회에게 하신 약속의 사이에 있는 차이점 역시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각각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구원하시고 율법으로 다스리신다는 성경의 영광스러운 통일성도 역시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기본적인 도덕적 율법도 변치 않습니다. 구원의 방법도 항상 은혜로만 됩니다.

    
5. 진리의 말씀을 옳게 적용하라



한 젊은 청년이 2차 세계대전 때에 해군에 근무하게 되어 신병 캠프에서 그리스도께로 회심하게 되었고, 곧 경험많은 그리스도인에게서 영적인 인도함을 받을 수 없는 지역으로 배치되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성경을 공부해야 했으나, 다행스럽게도 그것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스코필드 관주 성경을 주었고, 어떻게 그것을 사용하는지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는 전쟁이라는 허락된 환경 속에서도 매일 신약의 한 장씩을 공부했습니다. 그것을 세 번 읽은 다음에는 성경을 덮고 그의 말로 그 읽은 내용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얼마나 철저히 그 내용을 이해했는지 보기 위해 기록된 성경구절과 비교하였습니다. 그의 다음 단계는 그의 매일의 삶에 대해 그 구절이 의미하는 것을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께 그의 체험 속에서 실제적으로 진리를 전하게 해달라고 구하면서 주님 앞에서 손으로 기록한 종이들을 퍼뜨렸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젊은 청년은 영적으로 놀랍게 발전했으며 오늘날 그리스도의 유용한 종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와 동일한 절차를 따를 필요는 없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은 교훈과 훈계를 위해 주의 깊게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죄사함의 확신을 가져다 줄 것이며, 죄로부터 깨끗게 하고, 직면한 시험과 유혹들에 대해 강하게 해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성경을 올바르게 공부한다면 우리의 영적인 아주 깊숙하고 후미진 부분을 면밀히 조사하게 될 것이며, 우리 잠재 의식에 빛으로 나아가도록 동기를 부여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위한 주님의 은혜로우신 공급하심을 가리키며, 우리들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치료약을 적용할 것인지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알아야 될 것은 성경을 올바르게 공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며, 우리가 앞에서 배운 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믿는 마음과 겸손하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성경의 계명에 순종하고, 문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며, 여러 가지 시대 사이의 차이를 깨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하면 우리는 성경을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 집중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두 가지 중요한 규칙을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세 가지 접근방식과 그리스도 중심의 원리입니다.



1. 성경에 대한 세 가지 접근방식



당신의 마음을 위한 가르침과 영혼을 위한 양식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가 성경에 접근하는 세 가지 방법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알아야합니다. 이 영적인 진리를 향해 있는 삼중의 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모든 성경 구절들은 한가지, 오직 한가지의 근본적인 해석을 갖고 있다.
2. 모든 성경 구절들은 많은 실제적인 적용들을 갖고 있다.
3. 많은 성경 구절들은 덧붙여진 예언적인 계시를 갖고 있다.



당신은 항상 근본적인 해석을 찾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지만 당신의 삶과 관련된 이러한 진리들을 만들기까지는 끝내지 못합니다. 당신이 기본적인 의미로만 만족한다면, 성경적인 진리를 적용하는 데에는 실패할 것이고, 당신은 영적으로 냉랭해지며,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도울 수 없을 것입니다. 억지로 성경을 개인적으로 적용시킨다면 지적인 지식은 늘어갈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무감각해질 것입니다. 당신이 이러한 경고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당신은 논쟁적인 사람이나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이 될 것이며, 당신의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비난거리로 만들 것입니다.
신령한 성경 해석자는 도덕적이며 영적인 교훈을 찾아 동등하게 파괴적이고 극단적인 것들을 피하지만 그 반면에 그 구절의 근본적인 해석을 무시하게 됩니다. 이것은 당신을 성경의 올바른 이해로 인도하지 못하며, 당신을 얕고 피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것입니다. 먼저 그 구절의 근본적인 의미를 구하고 나서 상징적인 교훈과 실제적인 적용을 찾으십시오.
세 가지 접근방법의 세 번째 요소는 예언적인 계시라고 불리웁니다. 이것은 많은 구절들이 그 근본적인 해석과 실제적인 적용에 어떤 위대한 미래의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예언을 덧붙이거나 포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예언적인 면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것이 그 구절의 근본적인 의미에 모순이 되거나 그 의미를 잃어버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나의 아버지는 이러한 세가니 접근방법에 대해 출애굽기 3장의 떨기나무의 불꽃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 문장을 공부하게 될 때 명백하게 보여지는 근본적인 의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받는 고통입니다. 둘째로 실제적인 적용 역시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환난과 고통을 통과해야 하지만 결코 멸망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세 번째 접근인 떨기나무 불꽃에 대한 예언적인 계시는 이스라엘 민족이 열방 가운데서 고난을 당하지만 결코 멸망하지 않으며 언젠가 구속되고 그들의 땅으로 다시 심기우는 날이 올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세 가지 접근방식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는 이것을 당신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성경에 있는 수 천 가지의 비슷한 구절 중 어느 것에서건 그러한 것을 찾아낸다면 당신은 부요하게 되고 보답이 올 것입니다.



2. 그리스도 중심의 원리



성경공부를 풍성하게 해주는 또 다른 중요한 원리는 그리스도 중심의 해석입니다. 이것은 모든 성경에서 중심되는 주제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님의 구속적인 활동에 대한 역사를 제시하고 있고, 아름답고 위로가 되는 진리를 설명해 주며, 엄숙한 경고와 훈계를 나타내고 있고, 지금까지도 성취되고 있는 놀라운 예언들을 그려주는 창조에 관해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의 참된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중심되심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된 모든 물질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요 1:3-10; 골 1:16), 주님 안에서 목표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모든 창조물(골 1:16), 그리고 주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유지하신다는(골 1:17; 히 1:3) 말씀에 의해 증명되었습니다. 성경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향은 주님께서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라고 말씀하시므로,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직후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사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눅 24:27) 말씀하시므로 주 예수님 스스로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에덴 동산에서 약속된 여자의 후손이며, 그의 안에서 모든 세계가 복을 받게될 아브라함의 자손이십니다. 주님은 요셉이나 모세와 같은 사람들의 고난과 영광의 모형이시며, 이스라엘의 대 제사장과 성막과 성전의 의식적인 제사가 의미하는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여호수아 앞에 나타나셨던 여호와의 군대장관이시며(수 5:15), 욥이 바라던 판결자이십니다(욥 9:33).


당신은 구약의 내용에 들어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속 사역에 대한 수많은 아름다운 구절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무엘하 9장에 기록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베푼 다윗의 친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을 설명하는 그림과 같은 수많은 특징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왕들이 행하는 것처럼 판결을 한다면 사울의 가족들은 모두 죽임을 당해야 했지만 다윗은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을 적용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벌을 선언하시기에 합당하시지만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고, 하나님의 보좌는 이제 주 예수님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자비의 보좌입니다. 그리고 요나단의 아들이 다른 사람의 손에서 떨어져서 절름발이가 된 것은 아담의 죄에 대한 결과로 사람의 도울 자 없고 소망이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이 므비보셋을 찾는 것은 주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을 쓰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반복되었습니다. 당신이 성경을 읽을 때, 비록 그 이야기들이 처음에는 아무 것도 의미하는 것이 없어 보일지라도,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에 대해 나타내고 있는 많은 구절들로 인해 놀라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며 그의 사악한 계획의 목표입니다. 처음부터 주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여자의 후손"(그리스도)이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을 약속하셨고(창 3:15), 마귀의 음모에 대한 초점은 주 예수님께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구약성경 내내 마귀는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계획을 방해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사자들을 통해 사람들을 사악하게 만들어 하나님께서 참지 못하시고 그 모든 인종을 멸하시도록 애썼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예비하셨으며, 그 뒤에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습니다. 그래서 마귀의 사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나시게 될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의 가족을 공격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태어나시자 마귀는 헤롯을 움직여 베들레헴에 사는 두 살 아래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도록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내내 사단은 필사적으로 주님을 죄에 빠뜨리도록 이끌었으나 실패하자 주님께서 십자가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유혹하였습니다.


당신이 이러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주님의 속죄 사역에 대항하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깨닫는다면 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당신의 삶에서 실제적인 의미를 얻게될 것입니다.
나는 이 성경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향에 대한 주제가 나의 아버지가 말한 것보다 휠씬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는 "비록 아주 무미건조한 역사적인 구절이며, 일반적으로 회피하는 계보에서도,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항상 넘어가 버리고 아주 빨리 지나쳐 버리는 그들의 어려운 이름들에서도 종종 아주 훌륭하고 고상한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그분에 대한 계시가 들어있습니다. 성경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성령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십니다.


우리의 주님은 평범한 인간의 언어로는 그분의 미덕과, 속성들, 그리고 은혜로우심을 완전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사랑스러우시며, 가장 아름답고, 무한히 완벽하신 분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사랑하심에 대한 그림과 모형과 예표를 위해 창조물의 모든 세계를 샅샅이 뒤지십니다. 수 백 가지의 이름이 구주께 적용되었으며 각각의 기술된 명칭들은 주님의 무한한 아름다움에 대한 새롭고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창문과 같이 사용되었습니 다.
"성령님은 그리스도를 둘째 사람, 마지막 아담, 하나님의 아들, 인자, 아버지의 독생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우리 구원의 주, 교회의 머리, 이스라엘의 메시야, 유대인의 왕으로 제시해 주십니다. 이사야는 주님의 이름을 기모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은유적인 표현으로 성령님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 양과 유다 지파의 사자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건축분야에서 성령님은 주 예수님을 더 온전한 장막으로, 하나님의 제단으로, 손으로 짓지 아니한 장막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토목분야에서는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반석으로, 모퉁이의 머릿돌로. 그리고 기초석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에서 주님은 의의 태양과 광명한 새벽별입니다. 주님은 선지자로, 제사장으로, 왕으로, 주의 사자로, 생명의 떡으로, 문으로, 생명수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하고 위대하신 목자장으로 불리워집니다. 끝이 있을까요?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처음과 나중이시고, 시작과 끝이시며, 그렇게 주님은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이제 나는 당신이 성경에 있는 모든 것과,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가리키는 모든 그림들을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진리가 당신을 붙잡을 때 당신의 모든 삶은 그리스도 중심적이 될 것이며 당신은 주님을 어디서나 종일 갈망할 것이며 주님의 얼굴은 당신이 일할 때든, 놀 때든, 예배할 때든, 그리고 쉴 때에도 항상 당신 앞에 계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당신에게 성경을 공부하도록 촉구합니다. 결코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아가며, 신뢰할 만하고 경건한 사람의 도움을 구하며, 문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시대를 깨닫고, 훈계에 순종하며, 약속을 믿으며,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당신의 경험이 증가하도록 성령님께 구하십시오. 나는 당신이 영적인 만족감을 누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당신은 죄와 싸워 이길 것이며, 당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헛되게 구하고 있는 기쁨과 평안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아주 유용한 증거자가 될 것이며, 당신의 삶을 변화시키시고 당신에게 소망을 주신 그분께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직 영접하지 않았다면 성경은 당신에게 봉해진 책이 될 것입니다. 주님을 믿으시고 그분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당신의 죄를 깨달으시고, 주님께서 당신을 위해 죽으신 것을 믿으시며, 주 예수님께 당신의 마음으로 들어오시기를 구하십시오. 주님은 당신을 구하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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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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