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칼럼 제3638호 /모방(模倣)의 시대를 잘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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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찬 목사 우리는 유사품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아름다운교회 선교팀이 필리핀 볼리나오에 갔을 때, 진주목걸이 한 셋트에 2만원에 파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몇 년 전 마닐라에서 같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일행이 버스에서 내리자 한 무리의 상인들이 몰려와 한 개에 3만원씩 판매했습니다. 그런데 식사 후 버스를 타고 이동하려 하자 두 셋트를 치켜들고는 “만원, 만원”이라 외쳐댔습니다. 만원에 두 개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필리핀이 양식진주의 나라이긴 하지만 저렇게 싸게 넘기고 남는 게 있을까? 아마도 모조품(imitation)이었을 것입니다. 액세서리(accessory)에서 대표적인 모조품은 다이아몬드의 대용으로 사용하는 지루코니아(Zirconia)가 있는데, 강도나 반짝임이 거의 진짜와 흡사해 전문가가 아니면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음료수엔 포도맛, 복숭아맛 주스 등이 있고, 옷이나 각양 생활용품에도 유사품 혹은 모조품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방이 보편화되어 있는 듯합니다.
음악에서 모방(模倣)은 매우 중요한 음악형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표적인 게 돌림노래이며 카논형식이나 대위화성이 여기에 속합니다. 모방에 대한 찬반(贊反)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가 있습니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화가는 구두 만드는 사람이나 목수, 그리고 다른 장인(匠人)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으면서도 그들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고 하면서, 모방을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방은 “본질”을 담아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희곡은 그 근원에 있어서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두 가지 근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첫째, 모방은 인간의 유아기부터 발현되는 본능이다. 인간은 모방의 본능이 강하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 구별이 된다. 더구나 모방을 통해서 인간은 지식을 얻게 된다. 둘째, 모든 인간은 보편적으로 모방된 대상을 보면서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그래서 현실에 있어서는 혐오스런 짐승이나 끔찍한 시체라고 할지라도 그것의 형상이 세밀하고 충실하게 묘사된 그림을 보면 우리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보고 배우게 되는 것이 유쾌한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마르틴 졸리의 『이미지와 기호』에서) 창작은 모방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모방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경에도 모방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8:43; 대하 6:33) 두 구절은 똑같은 문장으로 되어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이란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모델이며 이방인은 이스라엘을 모방하여(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어야 함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이란 말씀 앞뒤에 나오는 “주의 이름”입니다.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은 주의 이름을 성전에 두신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성전”이 아니라 “주의 이름”입니다. 솔로몬은 “장소”가 아닌 “이름”을 강조함으로 하나님이 결코 특정 장소에 제한당하는 분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유대주의의 특징이 독선과 배타성임을 감안한다면 이방인에 대한 개방 촉구는 매우 주목할 만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원래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님뿐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사야는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11:9-10)고 하셨고, 바울 사도는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롬 3:29)고 했습니다. 이사야나 바울이 모든 민족에게 구원이 열려있음을 말한 것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상을 반대하거나 왜곡하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의 뜻을 올바로 증언하려는 데 있습니다(롬 10:12-13).
바울 사도는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라는 반문을 통해, 그분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창조주이며, 구속주가 되심을 역설(逆說)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출 19:6) 세우심 또한 그들을 통해 이방이 주께 돌아오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이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이란 말씀은 택함 받은 자들이 이방 민족의 모델임을 암시합니다. 확대 해석하면 택함 받은 자들은 누구나 이방인의 역할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자들이며 주님을 모방해야 하는 하나님 의존적 존재입니다. 결국 이방 민족은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택한 자들을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게(말1:11)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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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은 “장소”가 아닌 “이름”을 강조함으로 하나님이 결코 특정 장소에 제한당하는 분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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