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 개인전 ‘세월오월과 촛불’
14년만에 서울 화랑가에 초청
박근혜 ‘허수아비’로 묘사했다가
블랙리스트 부른 ‘세월오월’ 비롯
민화풍 도보다리 회담 ‘통일대원도’
청와대 감싼 촛불 행렬 담아낸
‘화종, 학익진 연작’ 등 한자리에
14년만에 서울 화랑가에 초청
박근혜 ‘허수아비’로 묘사했다가
블랙리스트 부른 ‘세월오월’ 비롯
민화풍 도보다리 회담 ‘통일대원도’
청와대 감싼 촛불 행렬 담아낸
‘화종, 학익진 연작’ 등 한자리에
홍성담 작가가 올해 그린 신작 <화종-학익진2>(부분). 광화문 이순신 동상을 중심으로 촛불의 장강 같은 흐름을 담은 그림이다. 촛불 행렬이 광화문 광장과 위쪽 청와대를 이순신의 전법인 학익진(학의 날개를 펴서 감싸는 진형)모양으로 흘러간다는 상상을 하며 그렸다.
블랙리스트 공작을 부른 ‘닭대가리’는 떼어졌다. 닭 머리 아래 감춰졌던 허수아비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자신을 조종하는 김기춘, 박정희의 얼굴과 함께 얽혀든 박근혜 얼굴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비닐과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가로 길이 12m를 넘는 홍성담 작가의 대작그림 <세월오월>은 그렇게 지난 4년간 겪은 풍상을 내보여주었다. 20일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가나문화재단 주최로 개막하는 작가의 개인전 ‘세월오월과 촛불’에 가면 1층 들머리에서 가장 먼저 관객을 맞는 대표작이다.
<세월오월>에서 ‘허수아비 박근혜’를 풍자한 부분. 닭머리를 덮을 때 붙인 테이프와 이를 덮은 비닐이 덕지덕지 붙어있어 기묘한 인상을 준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덮은 닭머리를 떼어 별도로 전시한다.
<세월오월>은 2014년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 ‘달콤한 이슬’에 출품하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내용이 문제가 됐다. 그래서 박 전대통령 얼굴 위에 닭머리 도상을 붙였지만, 청와대 압력으로 끝내 전시는 무산됐다. 박근혜 청와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공작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는 사실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의 조사로 드러나 이 작품은 미술사를 넘어 한국역사를 움직인 작품으로 남게 됐다.
홍성담 작가는 한국 민중미술의 대표작가중 한명이지만, 사회의 적폐에 대한 날선 비판으로 미술판에서는 변방의 아웃사이더였다. 서울 화랑가 전시도 2004년 학고재 개인전 이래 14년만이다. 가나아트센터 이호재 회장이 뜻밖에도 전시를 덜컥 제안해 이뤄진 자리지만, 세월호 사건과 촛불항쟁 이후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해왔는지를 담은 근작들을 일목요연하게 훑어볼 수 있다는 점이 반갑게 다가온다.
전시는 센터 지하 1층 전시장부터 지상 3층까지 총 4개의 전시장을 사회정치적 이슈에 따라 소주제별로 나눈 얼개를 보여준다. 지하 1층 전시장은 세월호 사건을 다룬 ‘세월호, 4년의 기다림’, 1층 본전시장은 ‘세월오월과 촛불’, 2층 전시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봉선화’ 그리고 3층 전시장은 박정희 정권의 사회정치적 억압을 고발한 ‘간고쿠야스쿠니-고속도로’ 그리고 ‘삶과 죽음의 역사’로 짜여졌다.
이번 개인전에 선보인 홍성담 작가의 신작 <통일대원도>. 지난 4월 남북정상의 판문점 도보다리 회담의 정경을 새들이 깃든 민화풍의 도상과 민중의 기쁨을 표현한 80년대 목판화의 도상과 결합시켜 그렸다.
<세월오월>이나 세월호 참상을 담은 핍진한 군상화들과 더불어 눈길을 끄는 대작은 신작 <통일대원도>다. 지난 4월 남북정상의 판문점 도보다리 회담의 정경을 새들이 깃든 민화풍 도상과 민중의 기쁨을 표현한 80년대 목판화 도상과 결합시켜 그렸다. 두 정상의 물잔에 주둥이를 들이밀고 물을 마시는 두루미의 익살스런 모습과 회담장 외곽에 분단의 슬픔과 통일의 기쁨을 표현하는 민중을 굵은 윤곽선으로 표현한 도상들은 형식적 법고창신의 경지를 모색해가는 작가의 변화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촛불 시위 당시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상을 중심으로 청와대를 감쌌던 촛불의 행렬을 이순신의 학익진 전법에 형상을 빗대 역동적인 구도로 담아낸 <화종(火種), 학익진>연작 3점은 촛불항쟁의 시대적 의미와 광화문 광장의 공간성을 절묘하게 통합한 수작이라 할 만하다.
작가는 “어느때보다 지난 촛불 시위는 촛불이 물처럼 이리저리 흐르는게 특징이었는데 공격적인 느낌이 도드라졌다. 그것을 어떻게 형상화할지 자신이 없어 3점을 같이 놓고 고민하며 그렸다”고 말한다. 전시장에는 그가 2000년대 초반부터 심혈을 기울인 ‘야스쿠니-미망’연작과 봉숭아 연작 등 국가폭력의 실상을 민감하게 포착한 여러 작품들도 함께 내걸렸다. 8월19일까지. 02)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