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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살이] 촌철살인 / 김하수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7. 30. 21:26

[말글살이] 촌철살인 / 김하수

등록 :2018-07-29 20:30수정 :2018-07-29 22:51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한 치밖에 안 되는 작은 쇠붙이 하나로 사람을 죽인다는 꽤 무서운 뜻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는 잘 쓰이지 않고, 말에 대해서 주로 쓰이는 신기한 사자성어가 있다. 바로 ‘촌철살인’이다. 뜻인즉슨 짤막한 말 한마디로 상대방의 약점을 찌르거나, 아니면 큰 감동을 주는 경우를 가리킨다.

반짝이는 촌철살인은 다양한 비유, 의미 모순, 뜻 겹침, 유추, 동음이의어 등에서 나타나는 언어 현상을 바탕으로 구태의연한 표현의 빈틈을 찌르는 언어 사용 전략이다. 강점으로는 기존의 언어적 인습, 상투적 논리 등을 ‘단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문제점도 없지는 않다. 야무진 혀 놀림에 얼떨결에 넘어가버리는 경우다. 근본적으로는 말한 사람의 말과 행동의 일치 여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메마른 이 땅의 진보 정치계에서 대중의 마음을 울렸던 큰 정치인이 세상을 하직했다. 많은 매체가 그의 어록을 언급하며 추모하고 아까워한다. 그는 보통사람들이 자신들의 평범한 말솜씨 가지고도 얼마든지 정치의 정곡을 찌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그가 사용한 단어들은 그리 까다롭거나 추상적이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말에는 주목하면서도 그 말로 이루어내려 한 것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그의 ‘말’만이 아니라 말에서 드러난 그의 ‘태도’이다. 더 나아가 그 말을 통해 하려던 ‘행동의 의미’를 보아야 한다. 언어는 행동의 한 부분이자 국면이기 때문이다. 그의 행동, 곧 실천을 못 보고 그의 말만 되뇐다면 그의 촌철살인은 유쾌한 유머의 수준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의 말에서 나타난 실천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그에게 진 마음의 빚을 제대로 갚는 길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55364.html?_fr=sr1#csidxf83e0edd9facfc89c075572a7afa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