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내일 새벽이 고비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언제 지나갔느냐 싶을 만큼 우리는 또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부부 싸움도 그렇다. 태풍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또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 피해를 남기기는 하지만 결국은 그 태풍도 지나간다는 사실이다. 태풍이 안 오면 좋겠지만 세상일이란 그렇지가 않다. 내 뜻대로 되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 세상일이다.
인생 최고의 복은 인복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인복은 언제나 내가 한 것만큼 내게 돌아오는 법이다. 얼마 전에 아내가 5일 동안 병원에 입원을 했다. 의사는 이석증이라 했다. 그리고 피곤이 겹쳤다고 했다.
입원하기 며칠 전부터 아내는 계속 머리가 어지럽다고 했다.
나는 체했을 것이라 했다. 아내는 평소에 자주 체했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따보라는 말이나 했다. 아내는 소용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에 내 앞에서 휘청했다.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아는 후배가 원장으로 있는 병원으로 갔다.
“왜 그런가?”
“아무래도 이석증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조건 쉬어야 합니다.”
마누라 미우면 식당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아내가 밉지 않은데 식당을 했다. 그리고 개업 이후 지금까지 아내는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왔다. 그것이 참 미안했다. 어찌 보면 못난 남편 만나서 평생 동안 고생만 한 사람이다.
환자복을 입은 아내 손을 잡고 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렇게 잡은 아내 손이 참 따뜻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 손을 잡고 걸어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늘 미안한 사람이고 늘 고마운 사람인데 참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렇게 고생만 시키다가 나중에 이 사람이 많이 아프면 어떻게 하나, 그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오직 나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아내에게 내가 해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무리를 많이 하는 아내가 가끔 아프다는 소리를 할 때마다 나는 그 생각이 자주 들었다.
아내가 기뻐하는 일 하나 정도는 뭔가 해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아내는 말했다. 내가 교회에 나가는 것이라고. 다른 소원을 말하라 했다. 아내는 다른 소원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얼마 전부터 아내와 함께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내 안에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교회에 나가는 것이 그동안 고생만 하고 살아온 아내를 기쁘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매주 아내의 손을 잡고 교회에 간다.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이라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미 아내에게 약속을 했고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하는 것이 남자의 도리다. 처음에는 교회에 갈 시간이 되면 머릿속으로 가지 않아도 될 마땅한 핑계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핑계 댈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일주일에 1시간씩 교양강좌를 다녀온다 생각하며 교회에 간다. 그런데 목사님 말씀이 참 좋다. 사람 살아가는 도리를 자주 말씀하신다. 은혜가 된다.
아내는 요즘 일요일만 되면 싱글벙글이다. 나와 함께 교회에 가는 것이 그렇게 좋은가 보다. 그러다가 지난주에는 이렇게 아내가 좋아하는 일이었으면 진즉 해줄 것인데... 그런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까지의 삶은 아내가 일방적으로 희생만 하고 살아온 삶이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를 더 먹기 전에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조금씩이라도 아내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일요일마다 아내에게 진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교회에 간다. 나이 들어 내가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때 늙은 내 마누라가 내 손을 잡고 “이 웬수가 젊어서도 나를 고생시키더니 끝까지 나를 고생을 시키네.” 하는 말을 내가 누워 듣지 않도록.
by 괜찮은 사람들
박완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