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아카바 사막에서 아랍 전통 복장으로 낙타를 타고 있는 로렌스.
[토요판] 혼수래 혼수거
17.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1888~1935)
‘아라비아의 로렌스’ 그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한 안드로이드가 빼닮고자 한 인물이다. 인간들이 창조자를 찾아 외계로 떠난다는 내용의 영화 <프로메테우스>(2012년)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한다. 우주 여행에 나선 인간들이 2년간의 동면에 들어 있을 때, 혼자 깨어 우주선을 관리하던 안드로이드 데이빗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년)를 반복해서 보며 주인공 로렌스의 말투와 외양을 똑같이 따라한다. 영화 속 로렌스는 비록 배우 피터 오툴이 연기한 모습이긴 했지만, 이 인조인간은 왜 하필 19세기말 인물인 영국의 고고학자, 작가, 군인인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를 모방하려 했을까.
‘사막의 영웅’ 로렌스는 20세기 역사상 가장 논쟁적 인물이다. 1914년 세계1차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독일 편에 선 오스만 제국(터키)의 힘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아랍의 반란을 부추겼다. 로렌스는 당시 영국군이 아라비아 반도로 파견한 정보장교 중 한명이었다. 옥스퍼드대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던 로렌스는 21살 처음 고대 문명 발굴을 위해 메소포타미아를 방문한 뒤, 26살 군에 입대하며 20대의 대부분을 아라비아에서 보내게 된다. 1916년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파견된 그는 아랍 쪽 지도자인 파이살 이븐 후세인과 함께 독립전쟁에 참여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순한 조언자를 넘어 전우로서 아랍인들을 사랑했고, 그들의 독립을 진정 바랐다. 그는 기꺼이 영국 군복을 벗어던지고 아랍인의 복장을 입었다. 때문에 아카바 사막에서 아랍 전통 복장을 하고 낙타 위에서 전선을 이끌고 있는 사진 속 그의 모습은 묘한 매혹과 감동을 선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렌스는 극단적인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1918년 전쟁은 승리로 끝났지만 아랍인들이 그토록 바라던 독립국가는 세워지지 않았다. 대신 영국과 프랑스는 은밀히 맺은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따라 입맛대로 중동의 국경선을 정해버렸다. 로렌스가 순수하게 아랍의 독립을 바랐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는 영국 제국주의의 척후병에 지나지 않았다. “아랍의 일은 세계 어느 나라도 간섭하지 말자”고 주장했지만 당연히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때 영국이 맺은 ‘3중 속임수 외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비롯한 현재까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끊임없는 분쟁의 씨앗이 됐다.
영국으로 돌아온 로렌스는 깊은 환멸감과 ‘전쟁 신경증’에 시달렸다. 조지 5세의 훈장도 반납하고,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허울 좋은 명성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평생 술 담배도 멀리했고, 딱히 연인도 없었던 이 금욕주의자는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대부분의 친구들과도 거리를 둔 채 은거했다.
그는 고뇌하는 모순적 영웅이었다. 로렌스의 회고록 <지혜의 일곱 기둥>의 어떤 부분은 ‘승리의 기록’이라기보다 차라리 반성문 같다. 그는 머리말에서 “만약 내가 아랍인들에게 참으로 진정한 조언자였다면, 나는 그들에게 이런 아무런 소용도 없는 싸움에 휘말려서 소중한 목숨을 잃지 말고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 또한 헛된 희망의 노예였다”고 적었다. 영국 제국의 이익을 위해 아랍인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동시에 그들의 친구가 되어 혁명을 이루겠다는 이율배반적 이상을 꿈꿨던 몽상가 로렌스에게 가장 걸맞은 평가가 있다면 아마도 그건 ‘몹시 인간적인’ 인물이란 평일 것이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