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대체로 사람들은 말과 폭력을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본다. 그래서 싸움을 뜯어말릴 때 말로 하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말과 폭력은 서로 반대되는 면도 있지만 매우 비슷한 면도 가지고 있다. 우리 시대가 물리적 폭력은 억제하고 언어적 활동에는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서로 마주보며 말할 때의 원칙은 주로 ‘주고받기’였다. 내가 한마디 하면 상대도 한마디 하는 식 말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통신기기가 발전한 상태에서는 ‘주고받기’가 아니라 ‘쏟아붓기’가 더 일반적이다. 더구나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언어로 이처럼 잔인하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하는 한탄이 나올 정도로 말이 사납고 아프며, 견디기 어렵다. 물리적 상처는 치료가 가능하나 심리적 상처는 치료 여부가 불확실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또 어떻게 해야 보상이 되는지도 불투명하다.
오늘날 새롭게 사회적 소통을 지배하게 된 컴퓨터나 휴대전화, 유튜브 등은 소통의 도구인 동시에 새로운 갈등의 전파자인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과거에 인쇄물이 주류 매체일 적에는 스스로 통제되고 걸러지던 분노와 짜증이 이제는 매우 생생히 전달된다. 방송의 종류가 많아지면서 갈등의 수습보다는 갈등의 증폭이 잦아졌다. 이제 언어를 ‘평화적 수단’으로만 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몸이 힘들거나 짜증이 날 때 욕설이 나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되는 바가 있지만 공공의 ‘통신 기기’를 이용하여, 집중적으로, 씻기 어려운 치욕과 혐오감을 쏟아붓는 행위가 물리적 폭력보다 이제 더 위험한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 공적인 통신 수단을 사사로운 분노 방출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법적 대응을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언어와 소통 활동을 보호하는 하나의 현실적인 방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