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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창골산 칼럼 제3681호 / 사랑의 범위와 한계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9. 5. 05:08

창골산 칼럼 제3681호 / 사랑의 범위와 한계


제36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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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범위와 한계 

 

 


 

 

 


 

글쓴이/봉민근



우리는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하는 특징이 있다.

주님은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 질문 하신다.

다른 말로 하면 누가 이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그 말씀은 사랑의 대상을 가려서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잘못을 지적 하시는 말씀 이기도 하다.



사랑할수 있는 범위를 정해 놓고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질책 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책임의 한계를 정해 놓고 사랑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 정도 까지만 사랑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것을 초월한다.

내게 유익이 되든 안되든 사랑하며

심지어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다.


적어도 성도라면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유대인과 사마리안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한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드려 사랑을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사마리아인(미워하는 사람)이 나를 도와 주었다.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 주었는가?



나에게 조금만 섭섭한 말을 해도 용서 하지 못하며

형제간에도 서로 사랑하지 못하며 엉킨 타래를 풀어 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이라면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랑과 용서는 무조건 적이여야 한다.

이유가 필요 없다.

조건이 성립 할 수가 없다.



네가 이렇게 하면 나도 그렇게 하겠다는 식의 사랑이나 용서는 하나님 믿는 자로서 합당한 행동이 아니다.



용서는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서 전혀 다른 성질로 변화 하듯 바뀌는 것이다.

잊었던것 다시 끄집어 내서 이야기 하거나 조건을 삼는 것은 거짓 사랑이요 진실된 용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용서함이 그러하다.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용서가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용서의 모습이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꼭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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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자

봉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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