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칼럼; 설교원고모음

[스크랩] 재림 신앙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9. 6. 06:36

베드로는 베드로전후서를 통하여

고난을 기꺼이 받아 들이는 심령을 갖도록 권면하고 있으며

아울러 종말론적인 윤리관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에서 그가 말하는 종말론적 신앙, 즉 재림을 사모하는 신앙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고 성도를 미혹하는 사악한 영들을 담대히 물리침 또한 의미하기도 합니다

왜냐면 주님만을 바라보고 말씀만을 붙잡는 사람일수록 말씀과 타협하지 않으며

눈에 보이는 미혹들을 물리칠만한 분별력과 영적능력을 얻기 때문입니다 

 

거짓선지자들이 언뜻 보아서 눈에 띄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의 이름으로 각종 표적과 기사를 보이기 때문인데

분명히 베드로는

거짓 선지자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하는 자들"이라 말하고 있습니다(벧후 2:1)

여기서 예수를 부인한다는 말은 입술로 부인하는 것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

외식되고 거룩하지 않은 삶에서 비롯된 행위적인 부인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저는 이미 거짓 선지자의 특성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으며

오로지 열매로 참선지자의 여부를 알 수 있다는 말씀 또한 드린적이 있는데

그 열매란 주님을 닮고자 하는 거룩한 욕망을 바탕으로 날마다 성화 되어가는 과정속에서 맺어집니다

 

성화(sanctification, 헬, hagios)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거듭난 체험을 시작으로 차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기를 갈망하고 사모하며

날마다 자신을 악으로부터 지켜 정결케 하여

경건함에 있어 진보와 성숙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간다는 말은 존재적 차원에서 "신격화"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화란 결국

부름받고 택함을 입은 자임을 우리 스스로 하나님께 증명해 보이는 것이며

훗날 넉넉히 천국백성이 될만한 증거를 굳게하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외식하고 불법을 행하는 이런 거짓 스승들과 선지자들은

예수의 이름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성화됨을 등한시 할뿐만 아니라 

환난전 휴거라는 것을 가르치며 주의 재림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인(denial)이라는 의미에 대해 좀 더 살펴 볼 필요성이 있는데

.

하나는, 불신자들이 "영원은 없다" 라고 떠들며

재림 그 자체에 대한 무지(ignorance)에서 비롯된 부인과 

소위 그리스도를 안다는 자들이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벧후 3:4) 식으로

말씀을 비웃고 조롱하는, ridicule의 의미에서 오는 부인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무시하고 비웃는다는 것은 그 사람 자체를 부인해서라기 보다는

그 사람의 근본을 무시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는 것처럼

성경의 바탕된 요소들을 무시하는 바로 그런 차원에서의 부인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주님이 오실 것은 알지만

환난 후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고통받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환난전에 오신다 주장하면서 성경적 요소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환난전 휴거를 가르치거나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성경 전체를 왜곡하는 행위를 넘어

환난 통과를 강조하며 순교자적인 신앙을 부추기는 사람들마저 욕하고 비웃음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부인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환난전후가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합니다

비록, 환난후 휴거가 성경적인것을 믿지 않아도 나만은 주님앞에 떳떳한 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만한 모순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환난 통과를 부인하는 사람들의 깊은 내면에는 

주를 위해 받는 고난과 핍박을 두려워하고 그것들을 피해가려는 근성이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성경말씀을 똑바로 한번 연구해 보려 들지도 않겠다는 사람이

주의 이름을 위해 생명까지 위협받는 고통스럽고 힘든 환난 기간동안

주를 배반하지 않을거라 어찌 장담할 수 있겠냐는 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환난후 휴거를 주장하며 외치는 사람들이 

정작 신학적으로 더 해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에 핏대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 순교자 신앙을 다지고 부추기기 위해 그렇다는 점입니다

바른 종말론 신앙관을 확립하여 주 오심을 사모하고

주님의 귀한 신부들로 안팎으로 단장하자는 것이 환난전후 문제를 둘러싼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환난이 좋아 통과하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사모하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주를 버리지 않을 믿음, 담대함을 키우자는 것이 바로 그 목적입니다

 

그렇다고 재림신앙으로 살라고 해서

현재의 내 삶을 등한시하고 감나무 아래 누워 감 떨어지기만 바라라는 것입니까

모든 세상일을 다 내려놓고 시한부 종말론적 신앙으로 주님 오시기만 바라고 살라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재림을 사모하되 주님 내일 오시더라도 떳떳하고 부끄러움 없는 믿음

주만을 위해 충성하고 오직 하늘의 것을 구하며 의를 행하는 신앙

목숨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주님만을 사랑하는 믿음

바로 그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믿음이 있을 때 환난의 고통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오더라도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게 주님 바라시는 일이며

하루하루를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고 충실하게 사는 것이

재림을 사모하는 건강한 종말론적 신앙입니다

 

바로 그런 순교자적 신앙을 키우는 우리가 

거짓 영에 미혹되지 않기 위해 알아야 할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주님 오실때가 가까울수록 불법이 성하게 된다는 것과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는 베드로후서 2:22 말씀처럼

더러운 자들이 더욱 악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요즘 눈에 보이는 거짓 스승들이

음란의 귀신에게 씌여 참과 거짓을 분별 못하는 예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들을 형식적으로는 가르치기를 잘하나

호색하는 것을 좇으며(벧후2:2)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2:10)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2:12)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합니다(2:14)

 

또 하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진리를 기만하고 비웃는 자들이 늘어간다는 것인데

실지로 우리는 이런 자들에 대해 주위에서 보고 듣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작 좇아야 할 말씀은 등한시하면서 눈과 귀에 알량한 것들을 좇아

자기 만족을 채우기 바빠집니다

그 길이 아니라고 가지 말라며 붙잡는 사람들을 오히려 무시합니다

한마디로 노아 홍수때처럼  때를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며 장가 들고 시집 가기 바빴던 것처럼 진리에 귀를 막은 우둔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두고 베드로는 우리에게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3:17)라 권면하며

아울러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같음을 잊지 말라"(3:8) 하면서

주의 강림을 비웃고 조롱하는 자들을 삼가하고

오직 주안에 소망을 두고 날마다 재림을 바라는 신앙으로 나아갈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출처 : JESUS, YOU ARE MY KING, MY LOVE, MY ROCK
글쓴이 : 쥴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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