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칼럼; 설교원고모음

[스크랩] 종말론적인 신앙의자세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9. 6. 06:37
 

종말론적인 신앙의 자세





   “또 약속한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2-25)





    그림자인 율법과 성막 제사장 그리고 언약을 실제이신 그리스도로 바꾸시고 그 분의 약속을 따라 그 분과 한 떡과 한 몸으로 한 영이 된 사람들은 그 분의 친구가 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약속과 비밀을 다 말하신 친구라고 하셨듯이 진리의 영 안에서 그 분과 조직과 성분이 같아지면 그 분의 친구가 된다(요15:15) 미국과 한국은 전쟁이 나면 자동개입이 되는 동맹을 맺었고, 중국과 북한도 그러한 관계이다. 성령은 우리 신앙의 동기의 에너지이며 책임을 지시는 에너지이시다. 그래서 그 분이 진리를 알게 하시면 진리의 영이시며 생명을 공급하시면 생명의 성령이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나서 거룩하게 되어 그 분의 영 안에서 그 분을 따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그 분과 같은 운명이 되고 같은 수한이 된다(사65:22)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 때 부턴 그 분이 기쁘면 나도 기쁘고, 그 분이 바쁘면 나도 바빠진다. 그리고 그 분이 미쁘시면 나도 신실해 진다. 머리와 지체의 관계이다. 자동으로 실시간 서로 맞닿아 함께 움직인다. 동맹관계보다 더 밀접하다. 이런 사람은 종말론적으로 산다. 그 날에 천국에서 개털모자 밖에 없을까 두려워 조심하는 게 아니라 그 분 앞에 서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아간다. 아니 그 분 앞에 못 서면 너무 억울할 것 같은 소망으로 산다.  그리고 그 길을 가는 동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위로하고 격려한다. 무인지경의 먼 길을 걸어봤는가? 길동무가 그렇게 귀할 수가 없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똑 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를 향해 부지런히 나아가는 사람을 본다는 것은 행복 중에 행복이다. 땅에 있는 모든 성도가 자신의 즐거움이라는 고백을 하는 다윗의 마음을 알게 된다(시16:3) 자신을 미워하며 겸손히 주의 임하심과 다스림을 조용히 내비춰 보이며 사는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은 환희와 감격의 극치이다. 오랫동안 떠날 수 없어 밤을 새고 대화를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진다. 이런 동무를 돌아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현대교회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 되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이 너무 많다. 인간의 죄성은 하나님이라면 도망하는 것이 상책으로 안다. 그리고 든든한 사람이 대신 축복해 주고 기도해 준다면 그 사람 밑에 들어가서 종노릇하길 원한다.





    그러다가 안 되면 돈으로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대신 때운다. 이런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그만 둬야한다. 포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에 방해가 되는 나쁜 관습이 많다. 얼마나 많은 불법집회가 열리고 있으며 그 곳에 수천수만이 모여 영혼이 몰살을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만약 교회당 건물이 진리를 따라 그리스도 안에 모이는 것이 방해가 되면 없애야 한다. 목사가 방해가 되면 조용히 사라져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에 장애가 되는 것은 다 없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방해한 아말렉의 최후를 보라. 그리고 세례 요한이라 할지라도 ‘당신이 맞습니까? 아닙니까?’하고 흔들리므로 백성들에게 혼란을 줄 기미가 보이는 순간에 그의 임무는 끝이 났다. 우리의 구원을 두고 맹세하며 약속하신 그 분은 충성과 진실 그 자체이시다. 그 분이 가신 신작로가 아스라이 보이지 않는가? 그 분은 틀림없는 분이시다. 이 길에 대해 우리가 확신 있게 고백하는 것처럼 그 소망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내가 그곳에 앉았음을 그리고 장차 내가 그 분과 같이 될 것임을 아는 것만큼 굳게 붙잡아야 한다. 이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함께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이 일에 방해되는 잘못된 관습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확신하기는 이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종말론적인 신앙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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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신도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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