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격려사-60년 된 수학과를 위해 [오승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8. 11. 15. 06:49

격려사-60년 된 수학과를 위해|말씀 산책

은혜 | 조회 16 |추천 0 |2018.11.11. 19:23 http://cafe.daum.net/seungjaeoh/J75F/216 


수학과 60주년 기념 수학인의 밤에 나더러 격려사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 대학의 동문이며 교수로 퇴임했기 때문에 총장님의 축사에 이어 양념으로 격려사를 해 달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대학은 미국 남장로교의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대학입니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처음으로 한국 선교사를 보내기로 정식 결의하고 18927명의 선교사를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에 들어와 교회를 세우고 병원, 학교를 세워 당시 우리에게는 신기한 세계를 보여 주고, 미신을 타파하고, 성경을 읽게 하려고 문맹 퇴치를 시작했습니다. 60 여년이 넘자 이제 한국 기독교인들은 교회 지도자를 기르는 대학을 세워달라고 요청해서 1956년에 세운 것이 대전기독학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식 4년제 대학으로 인가가 난 것은 1959대전대학이었습니다. 그 때 4개 학과가 있었는데 성문(聖文), 영문, 화학, 수물(數物)과였습니다. 교회 지도자를 기르는데 왜 화학이나 수학, 물리가 필요했는가? 그 때 교육선교사로 입국한 인돈(W.A. Linton)은 이 나라는 공업입국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신념에서였습니다. 그 후로 수학과는 문리과대학에 소속했다가, 이과대학으로 소속이 바뀌고 다음 공과대학으로 그리고 지금은 나노 생명과학대학소속으로 옮겨서 연명(?)하고 있습니다. 수학과는 수·물과에서 수학과로 독립한 뒤 입학정원 20명에서 30, 40, 그리고 한 때는 야간까지 합해 80명까지 커졌다가 지금은 57명의 정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수학과를 다니고 있을 때는 서기(西紀)가 아니고 단기(檀紀) 연표를 쓰고 있을 때인데 수·물과 1회 졸업생이 4, 2회가 4, 그리고 3회가 3명이었는데 저는 그 3회 졸업생입니다. 한명은 성적장학생, 1명은 물리 실험조교 장학생, 또 한명은 학교 알바이트생이었습니다. 그 때 수·물과 전임 교수는 5명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은 이렇게 출혈을 해서 과를 유지하고 인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후배인 수학과 학생들을 앞에 두고 무엇을 격려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웃 대학들은 수학과가 자취를 감추었는데 우리대학은 그래도 수학을 필요로 하는 대학에 붙어 연명하고 있으니 그거라도 잘하고 있으라고 격려 하려는 것입니까?

저는 미국에서 학위를 마칠 무렵 정원이 300 여명도 안 되는 그러나 120년도 넘은 역사를 가진 대학의 수학과에서 수학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을 갈 기회가 있어 그곳을 들렸더니 그 대학에는 아직도 수학과가 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학은 공과대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문학, 경영학, 사회과학 등이 있는 대학이었습니다.

수학은 +,-,×,÷ 등 계산기가 하는 것을 가르치는 학문이 아닙니다. 수학은 기초과학의 심장으로 사리를 제대로 판단하고 추리하는 능력을 기르는 학문입니다. input이 무엇인지 알고, 원하는 output이 무엇인지 알 때 input에서 output을 얻는 최적화 과정을 찾아내는 것은 수학입니다. 풀라톤은 철학을 가르치는 아카데미의 문에 기하학을 모르는 사람은 이 문을 들어서지 말라.”라고 썼는데 철학을 하려면 먼저 수리적 추리력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파스칼은 철학자이기 전에 수학자였습니다. 뉴턴, 아인슈타인도 물리학자이기 전에 수학자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학은 왜 장사가 안 된다고 수학과를 없애는 것입니까?

제가 대학에 재직하고 있을 때는 기업체에 학생들을 취직시키기 위해 방문하면 그 기업체의 장은 학생을 보낼 때, 우리 기업체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 보내려고 생각하지 말고, 먼저 인간을 만들어 보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기술은 필요한 기업체에 2,3개월 연수를 보내면 충분합니다. 우리 회사는 인간다운 인간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학은 기술을 익히는 기술자 양성소가 아니고, 기능을 익혀주는 학관이 아닙니다. 대학이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인간이 무엇인가? 깊이 사색하는 철학이 있어야 하고, 정확한 역사관을 가져야 하고, 사리를 정확히 판단하고 추리하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철학과나, 사학과나, 수학과는 장사가 안 된다고 도태 당하고, 한시적으로 인기가 있고 장사가 되는 학과만 살아남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장래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사회에 나가 일하는 젊은이들에 의해 결정됩니다. 광장에서 군중들이 큰 아우성만 치면 행정이고 입법이고 사법이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젊은이가 많아지는 것은 대학이 인간다운 인간을 기르지 못하고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드리는 격려사는 기다리십시오. 반드시 대학이 제 기능을 회복할 때가 올 것입니다.”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 길을 잃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른 판단을 하고 바른 말을 하십시오.”라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축 성탄  (0) 2018.12.28
Christmas 2018   (0) 2018.12.28
박 교수와 김삼순 선교사  (0) 2018.10.17
다락방과 가정예배  (0) 2018.09.17
얌체(소설)   (0) 2018.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