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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해방의 노래! (시 126:1-6)
본문의 표제에 보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노래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올라갈 때마다 해방의 그 날을 회고하면서 부른 노래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래서 이 시편을 '해방의 노래'라고도 부릅니다. ◀제목 소개!▶
내일은 우리나라가 일본 압제에서 자유와 해방이 된지 66년이 되는 날입니다.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생각나는 시가 있습니다. 일제로부터의 민족 해방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격정적이며 직설적으로 노래한 <그 날이 오면>이라는 시입니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 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 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며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이어질 듯하거든/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이 시는 일제 강점기 농촌 계몽운동의 선구자이며 '상록수'의 작가인 심훈이 이 시를 썼는데 그는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6년 9월 16일에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답니다. 아마 조국의 광복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정말 그런 날이 실제로 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죽어 갔을지도 모릅니다. /할/ 한국의 해방은 이스라엘의 해방과 너무 흡사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민족이 바벨론으로부터 70년 만에 해방되던 그 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부터 압제를 받아오다가 해방이 되어 기뻐하는 모습을 나타낸 시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난을 받기 위해 태어난 민족 같이 생각되는 그런 민족입니다. 이 민족은 참 고난을 많이 받은 민족입니다. 우리의 36년은 그들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애굽으로부터는 430년 간의 압제를 받다가 출애굽을 해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가 70년 간의 압제와 고통을 받습니다. 인재들은 모두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때 느헤미야도 잡혀갔습니다. 바벨론이 다시 바사에게 망합니다. 예루살렘은 바사제국이 지배하던 127도 중 한도로 편입되어 지배를 당합니다. 주변의 이방인들로 하여금 괴롭힘과 능욕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찬란했던 예루살렘 도성은 폐허가 되고 성전은 훼파되고 하나님 백성은 초라하게 낮아진 채 환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고난이 얼마입니까? 이 백성들이 자기 나라에서만 압제를 받았어도 덜 할텐데 쓸만한 사람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서 남의 나라에서 압제를 받고 살아갔습니다. 그러니 그 압박이 우리와 비교나 되겠습니까? 그때 상황을 시137:1-3절에 보면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짐승 같은 이방인들이 노래를 시키고 조롱해도 힘이 없어 대항은 못하고 호젓한 강가로 나가 수금을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두 다리 쭉 뻗고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압제는 압박의 역사입니다. 그런 깊은 고난 속에서 시137편과 127편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작품 중 명작은 좋은 환경에서 커피 마시며 콧노래를 부르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향이 짙은 향수는 발칸산맥 최정상 꼭대기에서 새벽 2시에 핀 장미꽃에서 추출한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고열로 보름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 누워있던 중에 작곡한 것이라고 합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도 옥중에서 수난을 당하고 고난을 겪는 중에 만들어졌습니다. 본 시126편도 그렇게 과거의 뼈저린 삶에서 용해된 언어로 표현된 그런 감격의 시입니다. /할/ 이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도 36년 간 그 심정으로 참고 인내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때는 인권이나 자존심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1905년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를 통해 외교권을 박탈했습니다. 대 내외의 모든 일은 일본이 맡는다는 굴욕적인 조약인 '을사호보조약'을 강제로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5년 뒤인 1910년 '한일합방'으로 주권과 자유와 말과 글을 뺏고 남자는 전쟁터로 여자는 정신대로 몰아 몸과 마음과 정신을 송두리째 유린당했습니다. 그때부터 독립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1919년 4월15일 2시 수원근방 제암리에서 '아리타 도시오'라는 일본육군중위가 이끄는 군경이 주민 30명을 제암리 교회에 모아놓고 출입문을 잠근 채 총격을 가했고 그때 교회 안에 갇힌 부인들이 아이들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창 너머로 내 보냈는데 그 아이들까지 무차별로 학살했습니다. 그리고 인근 수촌리 교회와 화수리 교회 그리고 민가 31호에 불을 질러 죽였습니다. 그런 만행을 캐나다에서 온 의료선교사인 스코필드 박사가 사실 그대로를 사진으로 찍어 세계에 알림으로 그 만행이 들통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후에 스코필드 박사가 죽은 뒤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우리나라 국립묘지에 안장을 했습니다. /할/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조국의 독립투쟁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중에도 도산 안창호 같은 분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독립운동 하다가 붙잡혀 일본 젊은 검사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안창호 선생은 '나는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먹고 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답니다. /할/ 이런 애국지사들의 피나는 투쟁으로 마침내 1945년 8월15일 해방이 되었고 3년 후 1948년 5월 31일 날 제 1대 제헌의회가 열리던 날 임시의장이었던 이승만박사는 198명의 초대의원들 앞에서 '오늘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은 광복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얻은 것이니 우리 모두 하나님께 먼저 기도부터 드리자'고 해서 개원 첫날 국회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기도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할/ 오늘 신세대들은 이런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이런 역사를 모르니까 오늘 별 소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난 당하다가 해방되었으니 얼마나 기쁩니까? 그래서 그때부터 행사 때마다 우리는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할/
①왜 이스라엘이 70년 동안 바벨론에 잡혀가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까? 바로 우상숭배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 설득하고 때로 호소해도 백성들은 들은 척도 안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숭배 행위는 하나님을 떠나는 행위입니다. 선민이라고 자부하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면 정체성이 무너지고 존재의미가 사라집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자 바벨론이 와서 짓밟고 백성들을 잡아간 것입니다. /할/ 우리나라가 일제 때 일본에 먹힌 이유도 똑같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나라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벼슬 몇 자리 놓고 싸움만 치열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힘이 약화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일찍부터 명치유신 혁명을 일으켜 세계화 작업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쇄국정치를 해서 나라의 문을 닫고 눈을 감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그냥 집어먹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개인이나 나라나 민족이나 죄를 지으면 값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진리이고 길이고 도리입니다. 로마가 왜 무너졌습니까? 로마도 말기에 타락했습니다. 매일 밤 연회를 베풀고 먹고 마셨습니다. 한곳에서 실컷 먹고 마시고 약 먹고 토해내고 다른 연회에 가서 또 먹고 마시고 토해냈습니다. 그러니 그 나라가 온전하겠습니까? 그래서 로마는 어느 날 전쟁으로 망한 것 아니고 나라를 지탱할 도덕적 힘이 없어서 나라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본'이 내린 결론입니다. /할/ 그러므로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개인도 국가도 백성도 죄를 지으면 심판을 받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지독하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무섭게 경고를 했지만 백성들은 주신 기회마저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70년 간 바벨론에 의해서 포로생활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믿/
②우리 한국교회가 형성되던 시기는 언제인가? 일제의 침략기였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민족교회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조직은 오직 교회뿐이었습니다. 한국민족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한국교회는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눈물로 기도하면서 이 어려운 난국과 역사의 굴곡을 헤쳐 나왔습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전통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전통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는 국가나 민족을 생각하는 것 보다 개인을 먼저 생각합니다. 이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공공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위기입니다.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라를 위한 기도를 들으십니다. 에스더의 기도를 들으셨고,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셨고, 다니엘과 스룹바벨과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늘 평안만 주시지 않고 환란도 핍박도 고난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고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환란도 고난도 은혜입니다. 한국교회는 고난과 더불어 성장했습니다.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우리나라가 기독교 강국이 된 것도 이 역사 속의 핍박과 고난과 전쟁과 일본 압제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런 고난을 통해서 성장했고, 기도했고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나라로 하여금 기독교 강국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고난과 더불어 부흥되고 강해집니다. /아멘!/ 맞습니다. 한국교회는 지난날 고난을 통해서 기도하는 체질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기도하는 DNA가 있습니다. 우리민족이 아픔이 주어질 때마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일제 침략이 우리나라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민족은 외부로부터 압박과 설움을 받을 때마다 기댈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적으로는 미국을 의지하게 되었고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한국과 미국 그리고 한국과 하나님을 떼어낼 수 없는 관계로 만드는 작용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
③하나님은 이 민족을 일찍부터 간섭하셨습니다. 그것은 종교 분리로 시작됩니다. 1831년9월9일 로마교황청은 조선을 북경교구에서 독립시켜 조선교구로 설정했습니다. 지난 5천년 동안 한국은 중국의 그늘 아래에서 살아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으로부터 독립해 본 적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이 오로지 종교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이 로마교황청에 엄중 항의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로마교황 '그레고리 16세'는 엄격하게 한국을 중국으로부터 독립시켰습니다. 그리고 1882년3월 미국이 한국과 우호조약을 체결합니다. 그때 중국은 또 항의했습니다. 한국은 중국의 속국인데 중국이 대신 조인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때 미국이 단호하게 거절하고 한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조약을 체결하고 북경의 미국 공사관과 동격으로 서울에 미국 공사관을 설치합니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미국과 연대의식을 강화하여 조선의 근대식 교육을 위해서 1886년 6월에 미국 정부에 훌륭한 교사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그 요청에 미국은 3인을 보내왔는데 그 3인을 모두 신학교 출신자들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한국에 기독교와 기독교 정신이 들어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기독교의 영향이 조용히 이 땅에 들어오면서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기독교가 마침내 우리민족의 대들보로 입지를 굳히게 된 사건이 1895년에 두 가지가 발생했습니다. ▶하나는 청일전쟁 이후 온 나라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사대문 안에 살던 사대부의 지배층들도 전염병으로 가족이 죽어 나갔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밖의 출입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길거리에 그냘 버릴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재앙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시체들이 뒹굴고 있었고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시국이 뒤숭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기독교인들이 십자가 완장을 차고 내다버린 시체들을 정중히 입관하여 장례를 치러 주었습니다. 기독교는 그때나 지금이나 장례 치르는 데는 일가견이 있습니다. 그때도 그리스도인들이 길거리에 버려진 시체들을 수습하였고 또 전염병에 걸려 앓고 있는 환자들을 데려다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환자 308명 중 145명이 살아났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것이 그 당시 기독교가 민족교회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된 한 가지 사건이 되었습니다. /할/ ▶또 한 가지 사건은 명성황후인 민비의 시해사건이었습니다. 명성황후가 시해 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던 날 고종은 분노하기에 앞서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명성황후를 구둣발로 침실까지 들어와 칼로 죽인 일본 군인들이 자신에게 또 무슨 짓을 할지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종은 선교사들을 불러 신변보호 요청을 했습니다. 일국의 왕이 이 땅에 와 있는 외국의 선교사들에게 신변보호를 요청할 지경이 되었다면 그 당시 우리나라 상황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력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때 5명의 선교사가 입궐하여 두려워 떨고 있는 고종을 곁에서 지켜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은 때에 이 나라를 붙잡아 준 것은 기독교뿐이었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지 10년 밖에 안 되는 기독교가 왕을 보호해 주었고 이 민족을 구해 주었습니다. 이 두 사건으로 한국 기독교는 고난 받은 우리민족과 함께 하는 교회로 발전하여 한국은 유일하게 종교가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고 일본으로부터 싸울 용기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이 두 사건을 통해서 한국교회가 이 나라의 임금을 충성스럽게 모시고 고난 받는 이 민족과 함께 한다는 것을 확인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멘!/ ④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절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해방은 갑자기 이루어졌습니다. 바벨론은 너무 강했습니다. 해방은 기대조차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절망 중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너희 나라로 모두 돌아가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날 갑자기 해방이 주어진 것입니다. 자기들이 싸워 이긴 것도 아닙니다.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스라엘 못지 않게 우리민족이, 우리교회들이 일본에게 당한 시련과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일본은 강도처럼 이 땅을 빼앗아 1910년8월22일 합병시킨 후 공출이라는 미명 하에 쌀을 빼앗아갔고, 나이 많은 사람은 보국대로, 젊은 사람은 징용으로 11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끌고 가 탄광과 공장에서 천한 일을 시켰고, 학생들은 학도병으로 끌어가 총알받이가 되게 했고, 여자들은 정신대로 끌어갔고, 중국을 침략하면서 우리나라를 군수기지화 한 것 뿐 아니라 1940년 2월에는 창씨 개명 령을 내려서 이름을 고치지 않으면 학교의 입학과 진학이 거부되었고, 공직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며, 배급에서 제외되고, 징용징집의 우선 대상자가 되었기에 그 해 말까지 한국인의 90%가 창씨개명을 했습니다. 곡성의 유건영 씨는 창씨 개명한 것이 얼마나 억울했던지 일본 총독에게 항의서를 보낸 후 58세의 젊은 나이로 자결을 했고, 고창의 소진영 씨는 자녀들의 퇴학 통고를 받고 그들을 창씨 개명해 학교에 보내고는 자신은 그 날 밤 물에 돌을 안고 투신자살을 한 가슴아픈 일을 비롯하며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역사를 남기고 있습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교회에 대해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를 파괴하였고, 교회 안에 '가미다나'라는 귀신단지를 설치해 놓고 예배 전에 그것에 절하게 함으로 교회를 우상의 장소로 변질 시켰으며, 신사참배에 불응하고 반대하던 목사와 교인들을 수없이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한 맺힌 세월이었고 일본에 대한 감정은 잊어버리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독도가 지네들 땅이라고 웃기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분통이 터집니다. 그러나 참아야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간섭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이스라엘의 해방이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듯이 우리나라 해방도 어느 날 갑자가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바벨론처럼 일본은 너무 강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진주만에 전투기를 띄워 미국을 공격했습니다. 대동아 전쟁을 선포할 정도였습니다. 중국도 아시아 여러 나라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였습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그 중에서도 약하고 힘이 없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일본 천황이 항복 성명서를 낭독하며 해방 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니 해방은 어느 날 갑자기 왔습니다. 함석헌씨는 너무 갑자기 도적같이 해방이 왔다고 해서 '이 해방은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이나 우리의 해방이나 똑같은 모습입니다. /할/
▶2-3절에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바벨론으로부터 포로생활을 자그마치 70년을 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해방 령이 떨어져 모두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들이 얼마나 가벼웠겠습니까? 그래서 시인은 '그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였고 혀에는 찬양이 가득 차 있었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해방되던 날 그랬을 것입니다. 지난 월드컵 때 응원만큼이나 거세었을 것입니다. 그때의 기쁨은 최전방에서 근무하던 병사가 집에 휴가 가는 날 아침 기분 같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해방의 날은 환희의 날입니다. 통제생활에서 가장 큰 열망은 자유 함입니다. 자유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잃지 말아야 합니다. 미련한 자는 자유를 오용하다가 그 소중한 자유를 유보 당합니다. 그래서 결국 힘있는 자에 눌려 살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36년 간 그렇게 살다가 해방을 받았습니다. /할/
▶오늘 저는 해방이란 개념보다는 좀더 넓은 관점에서 자유라는 개념에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8.15가 우리에게 준 것은 정치적 자유뿐이었습니다. 이것만으로는 참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보면 인간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 투쟁해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페트릭 헨리'의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외침은 인류의 소망이 바로 참 자유에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 점에서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지금 무엇인가에 얽매여 살 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에 얽매여 살고 있고, 어떤 사람은 직장에 얽매여 살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돈에 얽매여 살고, 또 어떤 사람은 습관에 얽매여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에 얽매여 살고 있습니까? ▶자유란 무엇인가?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이 자유입니다. '내가 남을 제한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에게서도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이 자유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자유입니다. /할/ 그러면 우리의 자유 함을 빼앗는 원수는 누구인가? ⑴사탄 마귀입니다. 요8:44절에 보면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근본적으로 말하면 사탄이 우리의 참 자유를 빼앗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우리를 자기의 종으로 사용하다가 지옥에 떨어뜨리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믿/ ⑵우리의 지은 죄가 우리를 묶고있습니다. 요8:34절에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종의 자리에서 자유 함을 받는 것은 오직 예수님만이 주십니다. 그래서 갈5: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들에게 참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아멘!/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참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까? 요8:32절에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말씀에 무지합니다. 심지어 성도들도 말씀을 잘 모릅니다. 도대체 진리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요14: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통해서 참 자유 함을 받아야 합니다. /할/ ⑶율법이 바로 우리들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다 이루었다고 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자기의 힘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율법으로부터 참 자유 함을 얻어야 합니다. ⑷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망입니다. 죽음이 우리들을 위협하고, 억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어떻게 벗어납니까? 그것은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에 이루어집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참 자유 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 자유 함을 얻는 비결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자유가 옵니다. 요8:36절에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믿/아멘!/ ㈁성령을 받으면 참 자유 함을 얻습니다. 고후3:17절에 말씀했습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느니라' ㈂진리를 깨달으면 자유 함을 받습니다. 요8:31-32절에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할/ ⑸이미 얻은 자유를 우리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먼저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아야 합니다. 갈5:13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내 자유가 남에게 거침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전8:9절에 '그런즉 너희 자유 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갈5:1절에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비결이 있다고 했습니다. 먼저 굳세게 서야 합니다. 세상에는 모래 위에 서는 사람이 있고, 반석 위에 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만세 반석 되신 예수 님 위에 우리의 인생을 건축해야 합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멍에란 말은 짐승의 목에 얹어놓은 나무틀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종의 생활이나 포로로서의 속박을 말합니다. 첫째는 죄를 짓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회개하지 않는 삶을 말합니다. 셋째는 그리스도를 떠난 삶을 말합니다. /할/ 지금 우리는 참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자유 함을 받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신학자 '몰트만'은 '신앙은 속박이 아닌 해방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아는 순간 자유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아는 순간부터 정신의 자유 함, 육신의 자유 함, 영적인 자유 함이 한꺼번에 주어집니다. 그래서 진정 자유로운 인생은 그리스도인의 인생입니다.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운명의 문제나 내세의 문제까지도 우리는 자유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를 떠나면 당장 그 자유를 빼앗기게 됩니다. 자유를 빼앗기면 당장 멍에를 메게 됩니다. 또한 죄의 멍에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죄를 짓게 되면 가장 먼저 자유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래서 죄인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간다고 했습니다. 죄인은 언제나 마음이 불안합니다. 그래서 죄인은 밝은 곳을 싫어합니다.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있으면 불안해집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혼자서 어두운 곳으로, 숨어서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혼자 있으면 자유한가? 아닙니다, 혼자 있어도 마음의 불안함, 정신적인 불안과 갈등이 언제나 나를 구속합니다. 그것이 멍에이고 속박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죄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현재 일도 장래 일도 운명의 문제도 다 예수 안에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 진정으로 자유해지는 것입니다. 요15:15절에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않고 너희를 친구라 하리라' /할/
▶자유와 해방이 얼마나 귀하기에 이 날을 '여호와께서 대사를 행하신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진정 인류에게 해방의 날이 있다면 그것은 죄로 인해 점령당했던 우리 마음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할/ 대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해방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점령한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느브갓네살의 바벨론 제국은 주전 537년경에 메대와 파사에게 망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메대 왕 다리오가 바벨론을 다스렸고, 다음에는 위대한 제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다스렸습니다. 여기 메대와 파사의 연합군이 승리했다는 것은 당시 최강대국 바벨론 제국이 무너졌다는 것이며 이스라엘이 압박자의 잔인한 권세에서 해방을 받게 됐다는 말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으로 독일의 히틀러군에 침략을 받아 점령되었던 덴마크, 화란, 벨기에, 노르웨이, 프랑스 등 몇 나라들에게도 민족적으로 가장 기쁜 날이 있었는데 그것은 1945년 봄 '연합군이 승리했다'는 놀라운 소식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의 장자로부터 시작하여 그 나라의 모든 동물의 초태생이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고센 땅의 이스라엘이게는 저 역사적인 민족해방의 거사인 출애굽이 이루어 졌습니다. 이렇듯 고레스 왕이 바벨론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은 이스라엘의 해방을 전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다'는 이 소식은 죄 아래 팔려 신음하는 우리들이 '죄에서 자유와 해방을 받는다는 소식'입니다. 요19:30절에 '내가 다 이루었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언이 있은 후 무수한 인류는 죄와 사망의 감옥에서 자유와 해방을 받았습니다. /아멘!/ 롬7장을 보면 죄와 사망의 포로가 된 사도바울은 13절에서 '죄가 자기를 속인다'고 했고, 15절에서는 '자기의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한다'고 했고, 20절에서는 '그 죄가 자기 몸 속에 거한다'고 했고, 24절에서는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절규하며 다급히 구원자, 해방 자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8:1-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하며 감격해 하고 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대사'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나라를 다시 찾는 자유, 잃어버린 땅을 다시 찾는 자유, 잃어버린 주권을 다시 찾는 자유, 잃어버린 백성을 다시 찾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자신들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었던 자유이었기에 본문의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는 감격적인 기쁨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고 있습니다. 바벨론으로부터 해방을 받아 고국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무엇을 했습니까? 먼저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즉, 신앙 부흥입니다. 고레스 왕의 해방 명령을 받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고국에 돌아와 즉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착수했고, 그 후에 돌아온 에스라도 이 일에 가담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더더욱 신앙 운동, 그리고 국가 부흥에 힘썼습니다. /할/
▶4절에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그들이 비록 바벨론에서 구원받았으나 많은 사람들이 아직 바벨론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고 그들이 돌아와서 해야 할 일은 많았습니다. 그래서 꿈만 같은 해방을 기뻐하면서도 아직 성취되지 못한 일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새로 번역된 성경에는 '주님 남방의 시내들에 다시 물이 흐르듯이 포로로 사로잡힌 우리가 다시 한 번 번영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공동 번역에는 '여호와여, 저 남방 강바닥에 물길이 돌아오듯이 우리의 포로들을 다시 데려 오소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종합하면 아직도 미완성의 해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두 가지 기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시온의 해방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포로는 반밖에 돌아오지 않았으니 그 남은 자가 마저 돌아오게 해 달라'는 기원입니다. 이 기도대로 제 1차 귀환, 2차 귀환 이 이루어진 줄 믿습니다. /할/ 또 하나는 '전쟁으로 인하여 무너진 성전과 파괴된 도성과 처절한 민생의 생활을 회복케 해 달라는 기원'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남방의 시내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의 사막과 같이 늘 말라 있는 상태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은혜의 늦은 비를 내리 사, 남방 시내에 물이 흐르듯이, 시온의 포로들에게 '영과 육이 아울러 윤택한 축복의 단비를 내려 주옵소서' 하는 기원입니다. /할/ 이 기원이 우리의 기원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5-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해방과 구원은 전혀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우리의 '번영'과 '부흥'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눈물을 흘려야 하겠습니까? ⑴우리가 가장 먼저 흘려야 할 눈물은 바로 회개의 눈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고 행하지 못한 일에 대하여 철저히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바른 예배 자로 살지 못한 죄, 깨어 기도하지 못한 죄,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한 죄, 내 이웃의 영혼을 사랑하지 못해서 전도하지 못한 죄까지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아멘!/ 유명한 스펄전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른눈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윗도 시34:18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할/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눈물에 약하십니다. 히스기야가 눈물로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즉시 그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은혜의 눈물, 회개의 눈물, 감동의 눈물은 영적으로도 성숙한 신앙으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매우 좋습니다. 이런 눈물을 실컷 흘리고 나면 우리 영혼이 깨끗해집니다. 죄의 독소가 제거되는 겁니다. 실제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생리학자가 눈물의 성분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실컷 울고 난 후 흘린 눈물의 성분을 조사해 보니까 체내의 독소가 다량 검출되었다는 겁니다. 눈물을 통해 유해 독소가 배출된 겁니다. 그러니까 눈물을 많이 흘리면 몸과 마음이 치유된다는 겁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장수하는 그 원인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여자가 남자보다 눈물을 더 많이 흘려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눈물을 많이 흘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한 가지 유의 사항은 양파 껍질 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무효랍니다. 신기하게도 마음속의 감정을 실어 흘리는 눈물만 독소를 제거하는 작용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믿/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영혼이 깨끗해집니다. 마치 비가 온 후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나면 영혼에 영롱한 무지개가 뜹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삶에 놀라운 회복과 치유, 그리고 축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할/ ⑵그리고 울기만 할 것이 아니라, 씨를 뿌리러 나가라고 명하십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 6절을 원어를 살려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뿌릴 씨를 짊어지고 울면서 나가는 자는, 기뻐 외치며 그들의 단을 짊어지고 돌아오리라' /할/ 그러니까 6절은 5절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선 떠날 때는 '뿌릴 씨를 짊어지고' 나갑니다. 그런데 돌아 올 때는 '단을 짊어지고' 옵니다. '씨를 짊어지고' 가서 '단을 짊어지고' 옵니다. 무엇이 바뀌었습니까? 씨가 단으로 바뀝니다. 작은 씨가 바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로 바뀌고, 그런 결실을 안고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인가?/할/ ⑶우리는 영적으로 어떤 씨를 뿌려야 하겠습니까? '기도의 씨를 뿌려야 하고, 말씀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전도의 씨를 뿌려야 하고, 십일조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소망의 씨를 뿌려야 하고,인내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사랑의 씨를 뿌려야 하고, 봉사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할/ 이러한 씨를 뿌리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혈기가 나는데 참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싫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체면을 구기고 전도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또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시험도 오고 손해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울며 씨를 뿌려 봅시다. 그리하면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믿/아멘!/ (2011년 8월 14일 대예배설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