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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불안 탓 ‘나만 행복’ 추구…서로 존중해야죠”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3. 8. 02:46

“사회적 불안 탓 ‘나만 행복’ 추구…서로 존중해야죠”

등록 :2019-03-05 19:16수정 :2019-03-06 13:32

 

【짬】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 작가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첫 책인 <굿바이, 게으름>(2007년)이 30만 권 팔렸고, 지난해 말 나온 최근작 <관계를 읽는 시간>도 1만5천부가량 나갔다. 그는 5년 전 세계를 여행하기 위해 병원 문을 닫았다. 안식년을 누린 뒤에도 병원 문은 열지 않았다. 대신 2006년 만든 심리훈련 전문 교육기관 ‘정신경영아카데미’를 이끌면서 새로운 심리연구소 개설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심리학을 공부하고 정리하고 있죠. 정신경영아카데미에선 심리학과 자기계발을 통합한 자기실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는 스스로 성장심리학자란 호칭을 쓴다. 심리학이 ‘고통의 치유’를 넘어 ‘마음의 수양’과 ‘삶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뜻에서다. 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문 작가를 만났다.

정신과 의사가 ‘치료’가 아니라 ‘성장’에 관심을? “선배 병원을 물려받아 개원의 생활을 2년 했어요. 약물치료 중심이었죠. 그렇게는 못 살겠더군요. 저의 문제였죠. 너무 변화 없는 생활이었어요. 대안으로 비만 클리닉도 생각했어요. 이런저런 모색을 하다 성장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자기계발과 심리, 정신의학을 통합해보겠다는 마음이었죠.” 의사의 일인 치료보다 치유가 자신을 더 이끌었단다. “임상의는 정신병리에 초점을 맞춰 치료하죠. 전 치유가 더 중요하다고 봐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은 분들도 치유를 통해 성장할 수 있어요. 치료를 통한 원상회복에만 갇히지 않고 아프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폭넓게 성장으로 이끄는 데 관심이 생겼죠.” 2005년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으로 등록해 1년간 ‘한국형 자기계발’이란 주제를 탐구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결과물이 베스트셀러 <굿바이, 게으름>이다.

문요한 작가의 최근작 <관계를 읽는 시간> 표지
문요한 작가의 최근작 <관계를 읽는 시간> 표지


2007년엔 약물 대신 내담자와의 대화에 초점을 두는 상담전문 클리닉을 열었다. “약물치료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단지 저와 잘 맞지 않았죠. 환자도 선택지가 필요해요. 의사 도움을 얻어 스스로 이겨 나가길 원하는 자율적인 사람도 있거든요. 하지만 의학산업 발달로 정신과학의 모든 문제가 뇌과학이 되고 있어요. 생물학적인 원인 강조는 약물치료로 연결됩니다. 환경이나 심리 요인은 빠지고요.” 요즘엔 상담 위주의 병원도 줄고 있단다. “의사도 보험이 되니 여러 사람을 약물치료하는 걸 선호하죠. 상담진료비는 심리적 저항선이 있어 높이 받을 수 없거든요. 의대 정신과 교육 과정에서도 상담 쪽은 줄고 있어요.”

최근작에선 바운더리(영역, 경계)란 심리 개념을 통해 인간관계의 문제와 해법을 살폈다. “바운더리는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는 자아의 경계이자, 관계의 교류가 일어나는 통로이죠. 바운더리가 건강해 ‘나’를 잘 보호하고 ‘나 아닌 것’과 교류가 잘 이뤄지면 행복한 인간관계를 누릴 수 있어요.” 관계를 잘 맺기 위해선 자아와 관계의 균형이 중요하단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땐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지만 따져보면 인간관계가 원인인 경우가 많아요. 자아와 관계의 균형에 혼란이 오면 문제가 생깁니다. 요즘 심리학은 자아를 강조해요. 1998년 외환 위기 뒤 사회적 변화 탓도 있죠. 자아 쪽으로 균형추가 기울면서 ‘나만 행복하면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각자도생이죠. 개인화란 추세를 막을 순 없지만, 나의 개별성과 상대의 개별성을 함께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죠.”

‘어른이 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자신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관계 방식으로 오늘의 관계를 맺고 있어서다.’ 그가 관계를 바라보는 기본 인식틀이다. ‘아이와 어른의 관계’에서 ‘어른과 어른의 관계’로 진화하지 못하는 이들이 관계의 문제를 겪고 있다는 말이다.

관계의 상처나 고통은 대부분 가까운 사이에서 생긴다. “상대가 나와 다른 마음을 가진 개별적 존재라는 걸 잊지 않는 게 중요해요. 하지만 가까운 사이에선 그걸 쉽게 망각하죠. 상대가 내 기대대로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게 관계의 소유욕입니다. 이 소유욕이 커질수록 관계의 고통이 커지죠.” 저자는 건강한 바운더리를 세우는 해법으로 ‘내 관계의 역사 이해하기’ ‘멈춤, 자각, 조절, 표현 순으로 이어지는 자기 표현 훈련’ ’작은 것부터 결정권을 찾아오는 ‘아니오’ 연습’ ‘자기 이해에 기반한 자기 세계 만들기’와 같은 방도도 제시했다.

약물치료보다 ‘심리 치유’ 더 끌려
‘한국형 자기계발·성장’ 주제 탐구
2007년 ‘굿바이, 게으름’ 베스트셀러
병원문 닫고 세계일주 ‘안식 여행’도

최근작 ‘관계를 읽는 시간’도 호평
‘관찰자아 찾기’ 심리연구소 열 준비

사람이 변하기 위해선 뭐가 중요할까? 그는 먼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깨달음(자각)을 강조했다. “자각 뒤엔 상담을 통해 자기 문제나 자기감정을 바라볼 수 있는 ‘관찰자아’를 키워야 합니다. 일단 멈추는 것도 중요해요. 거절을 못 하는 사람은 어떤 부탁을 받을 때 습관적으로 ‘예’라고 하죠. 답하기 전에 일단 멈추고 ‘어떤 부탁이에요?’라고 물어야 합니다.”

심리를 다룬 책은 쏟아지지만,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은 늘고 있다. “꽃밭의 일부만 시들면 꽃이 문제죠. 하지만 꽃 대부분이 피우지도 못하고 시든다면 땅의 문제죠. 우리 사회에서 겪는 심리적 문제는 사회적 문제와 불가분입니다.”

그가 우리 시대의 특징적인 정신 징후로 불안을 거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환 위기와 세월호를 겪으며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생존 욕구가 정신을 지배하고 있어요. 건강한 성인은 사회성이나 이성의 뇌가 발달해 이 기능이 커지고 생존의 뇌 기능은 작아집니다. 하지만 사회적 국가적 트라우마를 겪은 성인들은 생존의 뇌가 커요. 우리가 그렇죠.” 덧붙였다. “요즘 사람들은 예민해요. 우리가 원래 조바심치는 민족이 아닙니다. 감정적으로 불안해서 그래요. 사회적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쳤죠. 불안하면 과잉행동을 합니다. 양궁 선수가 시합 전날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연습량을 늘리는 것처럼요. 중요한 건 연습의 양보다 질이잖아요. 자기 방향성으로 이끄는 성찰을 하기가 어렵죠.”

한국 사회와 견주면 북유럽 나라들은 어떨까? “북유럽 나라들의 행복도와 창의성이 높은 것은 개인과 집단주의가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죠.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선을 지향하잖아요.”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김정효 기자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김정효 기자

 
그는 1986년 전남대 의대에 들어갔다. 의대 진학은 부모님의 뜻이었단다. “대학 시절 방황을 많이 했어요. 2년 동안 휴학도 했죠. 이 길이 나의 길인지 질문이 멈추지 않았어요. 내 길이 아니고 내 옷이 아닌 것 같았죠. 본과 3학년 복학 뒤 ‘나는 왜 힘든가’를 생각하면서 날 찾기 위해 정신과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정신과 공부는 제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많이 주었어요.” 안식년 땐 알프스와 안나푸르나, 안데스 등 대자연을 벗 삼아 보냈다. “여행하면서 저도 많이 바뀌었죠. 일터나 거주지와 같은 환경의 변화가 사람을 변화로 이끌 수 있어요. 책을 좋아한다면 독서모임을 하는 것도 방법이죠. 함께 책을 읽으면 상호침투와 교류가 일어납니다.”

지금은 작가로 불리우지만 30대 후반까지만 해도 책과 그리 친하지는 않았단다. “구본형 변화연구소 연구원 활동을 하면서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책 1권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내가 나를 치유한다>를 꼽았다. 독일 출신 미국 여성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1885~1952)의 저술이다. “어릴 적 관계인식이 성인이 되었을 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분석한 책이죠. 유아기의 관계 인식을 이해하고 성인기의 관계 방식을 재구조화하자는 내용이죠. 저도 같은 관점입니다. 성인에겐 경제적 독립 외에도 갈등을 스스로 풀어가는 능력도 필요해요. 갈등적 독립이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84692.html#csidxb14d50d2b5e1c138329323aa818891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