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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의 문학으로] 먼지의 시학

성령충만땅에천국 2019. 4. 21. 19:21

[최재봉의 문학으로] 먼지의 시학

등록 :2019-04-18 16:01수정 :2019-04-18 18:52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김훈이 얼마 전에 낸 산문집 <연필로 쓰기>의 서문과 후기는 각각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일산에서 미세먼지를 마시며 김훈 쓰다.’ ‘일산에서 초미세먼지를 마시며 김훈 쓰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라는 낱말 옆에는 ‘fine dust’와 ‘ultra-fine dust’라는 영어 단어까지 친절하게 병기해 놓았다. 엄살을 가장한 허세로 웃음을 자아내는 서문은 김훈의 책을 읽는 가외의 재미에 속하거니와, 이번 책에서 그가 하필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에 주목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그가 말하는 (초)미세먼지란 물론 현실의 먼지, 표준국어대사전에 “가늘고 보드라운 티끌”이라 풀이된 물질을 우선 가리킬 것이다. 봄철 황사로 대표되던 과거의 먼지 공세와 달리 언제부턴가 계절 불문하고 일상을 위협하는 먼지들에 관해 김훈은 호소하는 것. 그런데 그가 마신다는 (초)미세먼지는 단지 우리 눈을 가리고 숨을 막는 유독물질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탁하고 껄끄러운 먼지의 속성에 세태를 빗댄 ‘홍진’(紅塵)이라는 말에서 보듯, 혼탁한 세상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 서생의 처지를 저 ‘먼지’들은 상징하는 것이겠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의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마지막 연에서 먼지는, 모래와 바람과 풀과 함께, 작은 것들의 대표로서 호출된다. 크기가 작고 무게가 가볍다는 점에서 먼지는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를 대변한다. 그런데 겉보기에 작고 사소한 것들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옛사람들은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었다. <장자> 외편 ‘추수’ 장에는 “천지도 싸라기처럼 작을 수 있고 털끝도 구산(丘山)처럼 클 수도 있다”며 크기의 상대성을 역설한 구절이 나온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순수의 전조’ 앞머리에서도 <장자>의 메아리가 들리는 듯하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찰나 속에서 영원을 붙잡아라.”

바람에 날려서는 흩어져 버리는 덧없는 속성 때문에 먼지는 종종 필멸의 인간 운명을 상징하기도 한다. 미국 밴드 캔자스의 노래 ‘바람 속의 먼지’가 대표적이다. 인간이란 “바람 속의 먼지/ 우린 모두 바람 속의 먼지/ 바람 속의 먼지/ 모두가 바람 속의 먼지”라는 가사가 서늘하다. 이런 생각을 반드시 허무주의라 타매할 일은 아닌 것이, 그 연원은 성경 창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창세기 3장 19절에 일렀으되, “너는 흙이니 너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 되어 있으니 말이다.

죽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한국어 ‘돌아가다’는 심오한 존재론적 통찰로 빛난다. 그 점은 가령 “지나가 버리다” 정도로 새길 법한, 역시 죽음을 뜻하는 영어 숙어 ‘pass away’와 비교해 보아도 뚜렷하다. 흙으로 빚었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성경 말씀이 우화적 가르침에 가깝다면, ‘돌아가다’라는 말에는 천체물리학적 진실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과학자 열세 사람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의 제목은 우주론자 마틴 리스가 한 말에서 왔다. 최초의 빅뱅에서 우주가 비롯되었고, 우주 안의 모든 것은―우리 인간을 포함하여―그 빅뱅의 산물이라는 것, 우리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과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성분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천체물리학은 알려준다. ‘별아저씨’와 ‘바람남편’을 자처하는 시인의 허풍에는 엄연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나는 별아저씨/ 별아 나를 삼촌이라 불러다오/ 별아 나는 너의 삼촌/ 나는 별아저씨// 나는 바람남편/ 바람아 나를 서방이라고 불러다오/ 너와 나는 마음이 아주 잘 맞아/ 나는 바람남편이지”(정현종 ‘나는 별아저씨’ 1·2연)

그러니 칼 세이건의 우주 대서사시 <코스모스>에서 화성의 풍경을 묘사한 이런 대목을 읽을 때 우리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육친과 고향을 만나는 설렘과 그리움 탓이 아니겠는가.

“작은 모래 언덕들, 바람에 흩날려 높이 솟아오른 미세 입자들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먼지들로 덮였다 드러나기를 반복하는 바위덩어리들이 벌판에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코스모스>를 번역한 홍승수 전 교수도 지난 15일 우주의 먼지로 돌아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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